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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무량전을 거쳐 영곡탑에서 아래를 살폈습니다

by 깜쌤 2015. 8. 3.

 

대의대인이라는 글귀가 우뚝 솟은 패방 한가운데 새겨져있었습니다. 

 

 

멋진 글귀때문이었을까요? 이 패방은 공산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살아남았습니다. 大仁大義 한자글씨 양쪽의 꽃과 글자 위의 태양은 타이완섬으로 쫒겨나간 국민당정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아니던가요?

 

 

패방을 지나 안으로 걸어가면 커다란 벽돌건물이 등장합니다.

 

 

그 건물이 무량전입니다. 오른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아주 조금만 걸으면 멋진 돌거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저기에 숨어있습니다. 석거부기라고 잘못 쓴 글씨가 자잘한 웃음을 만들어줍니다.

 

 

녀석의 덩치는 거대합니다. 거북등에 짊어지고 있던 비석을 어디에서 흘려버리고 몸뚱아리만 여기서 웅크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몸체만 해도 길이가 5.3 미터에다가 높이가 2 미터나 되는 어머어마한 녀석이죠.

 

 

녀석은 무량전 오른쪽 앞에 버티고 앉아있습니다.

 

 

서기 1381년 명태조 주원장은 자기 무덤을 만들면서 여기에 원래있던 개선사라는 절을 옮겨버립니다.

 

 

절은 사라졌지만 무량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축물 하나는 남았습니다.

 

 

없을 무()에다가 대블보를 의미하는 량()을 썼으니 대들보가 없이 지은 건물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이제 이 건물은 신해혁명때 희생당한 열사들을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공산당 정권을 탄압하고 핍박했던 국민당이 만든 기념관을 공산당이 그대로 쓴다는 것이죠.

 

 

1931년에 국민당 정부는 이 건물을 수리하여 신해혁명때 희생당한 열사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국민혁명열사지령위"라는 정면에 새겨진 글자가 이런 사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무량전은 벽돌로만 이루어진 대들보없는 건물입니다. 옆으로 기다란 건물이지만 원래는 절 건물이었으니 부처를 모셨던 곳이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중국혁명사에 빛나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추근! 그녀의 흔적은 항주와 소흥에 골고루 남아있더군요.

 

 

중국근대사에 나름대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더군요. 이 장면 속에도 황흥, 손문, 송교인같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입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그런 전시물들이 가득합니다. 

 

 

장면 하나하나를 다 소개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사이버 공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으니 적당한 선에서 끊어야할 것 같습니다. 

 

 

황포군관학교와 관련있는 인물들도 소개되어 있더군요.

 

 

벽면에 새겨진 이 가사는 1930년대 당시의 중화민국국가입니다. 삼민주의에 근거하여 나라를 만들었으니 한마음으로 충성하자는 말이겠지요.

 

 

나는 중국근대사속의 역사적인 장면들을 하나씩 훑어보았습니다.

 

 

무량전을 나온 나는 영곡탑에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에는 금릉계화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무 한그루가 우뚝 솟아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영곡사영곡탑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뒷쪽으로 가면 송풍각으로 가는 길로 이어집니다.

 

 

1931년에 국민혁명열사기념관으로 지은 것이죠. 옛날 영곡사의 법당이 있던 자리에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돌로 만든 세 발 조형물의 아름다움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위로 더 나아가면 영곡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9층 8각탑입니다.

 

 

송풍각과 영곡탑은 일직선상에 있는 셈이죠.

 

 

1930년대의 건축물입니다. 미국인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계단 한가운데 새겨진 조각속에는 중화민국을 상징하는 청천백일(靑天白日)이 나타나있습니다.

 

 

탑의 제일 아래층 사면에는 정충보국이라는 네글자가 새겨져있는데 장개석총통의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충()!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위로 오르는 계단통로 바닥에도 글씨를 넣어두었더군요.

 

 

그렇게 기둥을 가운데두고 감아오르다보면 어는덧 꼭대기층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서 밖으로 나가 살펴보는 경치가 일품이었습니다.

 

 

방금 우리가 지나온 길이 나타납니다. 무량전, 송풍각같은 건물이 발 아래 있습니다. 숲너머 남경시내가 환하게 드러납니다.

 

 

남경시내는 연무에 휩싸여있었습니다.

 

 

산기슭쪽으로는 중산능도 보입니다.

 

 

무량전과 송풍각의 모습입니다. 이 정도만 보아도 영곡탑에 오른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려가야지요.

 

 

밖으로 나와 탑을 돌면서 벽면에 새겨놓은 장개석의 친필을 감상했습니다.

 

 

대륙을 공산당에게 넘기고 대만섬으로 쫒겨나간 장개석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밑으로 내려온 우리는 영곡사로 갔습니다.

 

 

노란색 벽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빨간색으로 장식한 기둥과 정문! 중국 절은 이렇게 화려한 것일까요?

 

 

정문 앞 숲속에는 아담한 찻집과 국수집이 숨어있었습니다.

 

 

영곡사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습니다.

 

 

밖에서 본 영곡사는 제법 컸습니다.

 

 

화장실을 함께 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절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노란색담과 담벼락을 기어오른 담쟁이가 더 인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절 안은 화려했습니다.

 

 

깔끔했지만 너무 인위적인 화려함이 강했습니다.

 

 

복받기를 원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향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출구쪽은 어김없이 기념품 판매대였습니다.

 

 

영곡사를 나온 우리들은 손문선생이 영면하고 있는 중산릉을 향해 걸었습니다.

 

 

한 십여분 정도 걸었을까요? 중산릉 입구의 거대한 광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