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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오자서 3

by 깜쌤 2015. 7. 29.

 

<오상사 내부 정원 속에 있는 사당>

 

오왕 부차는 사람을 보내 촉루라는 칼을 내리고 일렀습니다.  

 

"그대는 이 칼로 죽으라."

 

이 말을 들은 오자서는 깊은 탄식을 하며 말을 합니다.

 

"슬프다! 간신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려 하다니....  나는 너의 아버지 합려를 패자(覇者)로 만들었고, 부차 네가 어렸을 때 여러 왕자들이 태자가 되려고 경쟁할 때 죽음을 각오하고 다투어 너를 태자로 정하게 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는 태자가 되지 못하였으리라. 네가 태자가 되어 오나라를 나누어 주려고 했을 때도 나는 감히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나를 죽이려는 것이냐?"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오상사 내부 정원>

 

그리고는 자기가 데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일렀습니다. 

"반드시 내 무덤위에 가래나무를 심어서 그릇(여기서 그릇이라 함은 오왕 부차의 관을 의미함)을 만들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 내 눈알을 뽑아내어 서울 동문(지금의 봉문)위에 걸어두어라. 월나라 군대가 쳐들어와서 오나라를 없애버리는 모습을 보리라."

 

마침내 오자서는 칼로 자기 목을 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왕 부차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오자서의 시신을 담아서 강물에 던져버리게 했습니다. 오나라 사람들이 오자서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강수 기슭에 사당을 세우고 그 산 이름을 서산(胥山)이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소주성을 쌓은 내력을 기록해둔 안내문 - 소주성을 처음 건설한 이가 바로 오자서입니다.>

 

오왕은 오자서를 죽이고 난 뒤 제나라를 쳤지만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2년후 부차는 황지(黃池)에서 제후들과 회맹을 가진뒤 패자처럼 굴며 설쳐댔습니다. 부차가 오나라를 벗어난 것을 안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공격해서 태자를 죽이고 오나라 군사까지 쳐부수게 되자 부차는 급히 돌아와서 후한 선물을 주고 사화했습니다.

 

그로부터 9년 뒤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킨 것이죠. 오왕 부차는 뒤늦게 후회하며 자살을 하게 되고 백비는 월나라 군사에게 잡혀 처형당했습니다. 자기가 섬기는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기원전 473년의 일입니다. 초나라 태자 건의 아들 승은 나중에 초나라로 돌아가 백공(白公)이 되어 살다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자살하고 맙니다.    

 

 

 

사당 건물 안에는 오자서의 상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충신의 표본으로 여기는 분이죠. 그의 일생은 비장미로 넘친다는 느낌을 줍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도 오자서의 일생을 두고 '비장한 일'이라고 평했습니다.

 

 

오자서의 일생을 간략하게 설명한 안내판이 보입니다.

 

 

옆에는 춘추전국시대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무구들을 정리해두었더군요.

 

 

나는 오상사를 나와 반문경구안에 이어진 통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중국인들의 용 사랑도 보통이 넘는다고 봅니다. 

 

 

우리는 반문경구의 정문을 빠져나갔습니다.

 

 

되돌아보았더니 서봉탑이 우리를 지긋이 내려보고 있는듯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가다가 관전가 끝에서 내린 우리는 거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현묘관 앞을 지나 호텔로 향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소주를 떠나 남경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남경으로 돌아갈 때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차표를 파는 건물이 인민대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건물을 찾아가며 걸었습니다.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벽에 기차시간표가 있길래 세밀하게 살펴본 뒤 아침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소주에서 남경가는 기차표를 쉽게 살 수 있었습니다. 수수료는 5원이었습니다.

 

 

부근 국수집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른 가게주인은 중국에서 보기 어려운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가게에서 콜라를 샀습니다.

 

 

아침에 봐둔 통닭집에 가서 통닭도 샀습니다. 포도도 한송이 구했습니다.

 

 

호텔 방에 돌아온 우리는 통닭파티를 시작했습니다.

 

 

콜라와 통닭과 포도.....

 

 

통닭파티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저녁을 국수로 가볍게 먹었던 것이죠.  

 

 

겨울에 먹는 포도가 왜 그리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작은 파티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