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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한산사에서 2

by 깜쌤 2015. 6. 25.

 

장계라는 시인이 살았습니다. 당나라 현종이 통치할때의 사람인데 태어나고 죽은 해가 정확하게 기록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활동시기를 가지고 분별해 볼 때 지금부터 약 1300여년전의 사람이라고 짐작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관리로 출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고위직 관리를 뽑는 고시에 합격하든지 아니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장계도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세번째 시험에 실패한뒤 장안(오늘날의 서안)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소주성밖 풍교라는 다리 부근에서 배를 대고 하룻밤을 묵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새벽녘에 그는 한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과거시험에 실패하여 곤궁한 처지에 몰린 자신의 서글픈 심정을 담은 시를 쓰게 되었는데 그게 불후의 명작시가 되어버렸습니다. 서기 756년쯤에 벌어진 일인가 봅니다.

 

 

이 노란색 2층건물이 한산사의 종을 매달았던 종루입니다. 새벽에 스님들을 깨우는 종소리를 듣고 장계가 쓴 시의 제목이 풍교야박(楓橋夜泊)입니다. 풍()이라는 글자는 단풍나무를 나타냅니다. 단풍나무가 우거진 곳에 다리가 있었던 모양이지요. 박()은 배를 댄다는 뜻이니 장계는 밤에 풍교부근에 배를 대고 하룻밤을 지새웠던 것 같습니다.

 

 

 

      풍교야박(楓橋夜泊)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달이 지자 까마귀 우는데 하늘엔 서리가 가득하고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강가 단풍나무 숲과 어부의 불빛이 잠못이루게 하누나.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오늘날의 소주) 밖 한산사에서  
夜半鍾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깊은 밤에 울리는 종소리가  나그네 탄 배에 들려오누나. 

 

 

제가 가진 한문 실력도 형편없거니와 옛날 학창시절에 배웠던 시의 원문을 다 기억할 수 없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가져왔습니다.

 

 

사람은 가고 오랜 세월이 흐른뒤에는 이름과 시만 남았습니다. 물론 절도 남았고 다리도 남았습니다만 예전 모습은 아니고 모두 새로 만들거나 중수한 것들입니다.

 

 

장계는 이 한편의 시로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을 포함하는 동양삼국에서 유명인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한산사의 종소리에 매료되는바가 큰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청나라 말기에 한산사의 종을 일본으로 약탈해갔겠지요.

 

 

관광산업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한산사같은 절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가 드나드는 일반적인 절에 종이 없습니까, 중이 없습니까? 어느 절에나 종이 있고 중이 있지만 한산사에는 한산습득이라는 스님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풍교야박같은 시들이 전해내려오기 때문에 일류관광지가 도어버린 것이죠. 이게 문학의 힘이고 스토리텔링입니다. 우리는 그런 면에 너무 소홀히 여긴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한습천이라는 샘이 법당 앞에 있습니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샘이려니 하고 여기고 지나칠 수 있겠지만 알고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산과 습득이라는 스님들 때문에 붙은 이릉미라고 합니다.

 

 

한산사라는 절 이름은 한산자라는 스님이 이 절에 살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풍교야박이라는 시에 벌써 한산사라는 이름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한산자의 생몰연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무식이 철철 넘치는 나는 이번 소주 여행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풍교가 한산사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거기를 빠뜨려먹은 것이죠.

 

 

대신 엉뚱하게 절구경만 하고 다녔습니다.

 

 

절구경을 하면서는 삼장법사의 영정을 놓쳤습니다.

 

 

이러니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겠지요.

 

 

아래층은 흰색이고 위층이 노란 특이한 건물도 있더군요. 어떤 이들은 황제가 다녀간 절은 노란색으로 칠한다고 말하던데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이런 건물은 반은 희고 반은 노란색으로 칠해졌을까요?

 

 

재미있는 곳입니다.

 

 

곳곳에 정원이고 곳곳에 건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절에 비해서 확실히 화려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나의 뇌리에는 노란색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한산사 경내에는 벌써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봄은 여자들에게 먼저 눈에 띄는가 봅니다.

 

 

경내에는 참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워낙 다양한 건물이 있으니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수많은 글귀가운데 그 유명한 <풍교야박> 하나도 못건졌으니 남사스러울 정도입니다. 

 

 

 우리는 다시 종루 부근으로 돌아왔습니다.

 

 

2층에 올라가서 돈을 내고 종을 쳐볼 수도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포기했습니다.

 

 

마침내 출구를 찾은 우리는 한산사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풍교를 못본 것이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다음을 기약해야지요. 소주는 워낙 유명한 곳이니 어쩌면 한번 더 갈 수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란색 담장에 써놓은 싯귀들......

 

 

그게 한산사의 매력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절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이제는 시내로 다시 돌아가야지요. 버스를 기다리기에 지친 우리들은 결국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소주의 최대번화가인 관전가가 가깝기에 그쪽으로 가보았습니다.

 

 

우리 눈앞에 엄청나게 화려하고 사람으로 바글바글 들끓는 거리가 나타났습니다. 거기가 관전가였습니다.

 

 

중국에도 이런 거리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거리였습니다.

 

 

여기가 천하의 소주라는 사실을 내가 깜빡했던 것이죠.

 

 

우리는 음식백화점 비슷한 곳을 찾아갔습니다. 건물 2층에 있더군요.

 

 

입구 계산대에서 카드를 구입했습니다.

 

 

최저 50원, 최고 500원까지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더군요. 

 

 

카드를 구입한 뒤에는 아무 음식점이나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음식종류도 다양하더군요.

 

 

시설도 깨끗했습니다.

 

 

나는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을 선택했습니다.

 

 

하루종일 걸었으니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음식이 입에 짝짝 붙을 정도로 맛있더군요.

 

 

 

내일은 소주 인근 주장마을에 가볼 생각입니다.

 

 

동방의 베니스라는 소주에 왔으니물의 고장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시골 마을 한군데 정도는 찾아가봐야지요.

 

 

소주의 밤거리는 정말 화려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