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중국 4대정원 가운데 하나인 유원에 가보았습니다 - 1

by 깜쌤 2015. 6. 20.

 

소주에는 정원들이 많습니다. 귀에 익은 익숙한 이름들만 대라고 해도 졸정원, 유원, 사자림, 창랑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정원들이 소주의 4대정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그중 두개를 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졸정원과 유원이죠. 이제 우리들은 소주의 4대정원 가운데 하나인 유원으로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4대정원중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졸정원과 유원, 그리고 사자림입니다.  

 

 

내부가 어떤 모습으로 되어있을지를 상상하면서 은근히 기대를 해봅니다. 사실 중국식 정원을 서너번 정도는 살펴본 경험이 있으므로 대강의 모습은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죠. 

 

 

유원으로 들어가는 건물 입구부근에 놓은 쓰레기통조차도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세상에!  쓰레기통이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영어까지 떡하니 들어가있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일단 전체배치도를 살펴보았습니다. 대강 보긴 보았습니다만 막상 안에 들어가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니 그게 큰문제입니다. 일단은 정사각형 모양이라는 사실 정도만 기억했습니다.

 

 

앞에서 소주4대정원을 꼽아보았습니다만 중국대륙 전체에 널리 알려진 중국4대정원이라는게 또 있습니다. 뭐든지 추려내서 순서를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북경의 이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 그리고 소주의 졸정원유원을 중국4대정원이라고 말합니다. 

 

 

입구를 들어가서 복도를 통과하자 마침내 유원의 맨얼굴이 그 첫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호수와 태호석, 그리고 나무와 건물이 어우러진 그런 모습입니다.

 

 

개인이 이 정도의 정원을 가잘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도시가 부유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사실 소주는 옛날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돈이 많이 모여드는 부자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산업화나 정보화가 잘 된 도시가 아무래도 부자도시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예전에는 곡식과 옷감, 그리고 철과 소금이 모여드는 곳이 부자도시가 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조건을 골고루 갖추었던 도시가 소주였던 것이죠.

 

 

못에는 금붕어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중국4대정원이야기를 꺼내다 말았습니다만 위치상으로 구별을 하자면 북쪽에 두개가 있고 남쪽에 두개가 있는 셈이 됩니다.

 

 

누가 만들었느냐라는 것으로 구별을 하자면 이화원과 피서산장은 청나라 황실에서 만들었으니 황가(皇家)정원이 되는 것이고 졸정원과 유원은 민간에서 만들었으니 민가(民家)정원이라고 해야겠지요.

 

 

황실에서 만드는 것이야 국가재정을 가지고 만들었을 것이니 경제적으로는 큰 부담이 안되었겠지만 민간인이 이런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부자가 아니고서는 시도하지 못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기사 이화원을 만든 서태후북양함대를 재건할 국가예산을 빼내서 황실정원을 만드는 바람에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이 즐기기 위한 정원을 만들려다가  나라를 망친 셈이 된 것이죠.    

 

 

온 사방에 가득한 돌은 태호석입니다. 소주 서쪽에는 중국에서 세번째로 큰 담수호수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태호죠. 태호는 엄청 큰 호수여서 시시한 저수지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서울시보다 크다고 여기면 되니까요. 태호 인근의 언덕에서 캐내거나 호수에서 건져올린 멋진 돌들을 태호석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물가에 바짝 다가선 지붕이 만들어내는 추녀곡선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끕니다. 

 

 

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가지가 물쪽으로 휘늘어지게 했습니다.

 

 

우리는 마음내키는대로 걸었습니다. 곳곳에 명석(名石)이요 아담한 건물들이니 길을 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원 여기저기에 건물들이 흩어져 있다고는 해도 혼란스러움을 느낄 정도로 함부로 배치는 된 것은 아닙니다.

 

 

꼭 있어야할 자리에 자리잡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적당하게 배치를 했습니다.

 

 

이 정도의 돌을 모았다는 것은 예사 재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정원을 조성한 이의 재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로 바닥을 장식한 돌그림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사슴일까요?

 

 

다른 쪽에서 본 연못의 모습입니다. 겨울이어서 한가닥의 연줄기조차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여름에 찍은 사진을 보니까 수련꽃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어떤 이들은 이런 정원을 볼때 서민들의 피를 빨았다는 식으로 비분강개를 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굳이 꼭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이 태호석의 이름이 단하봉인가 봅니다. 이름난 돌에는 거기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두었습니다. 유원을 대표하는 태호석의 이름은 관운봉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관운봉은 정원의 더 안쪽 깊은 곳 그 어디엔가 숨어있겠지요.

 

 

나는 회랑을 따라 걸었습니다. 회랑바닥을 장식한 벽돌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옵니다. 회랑이 굽어도는 곳에 심어진 대나무줄기들이 멋진 운치를 불러일으킵니다. 

 

 

대나무 뿌리의 확산성은 놀라울 정도일텐데 어떻게 저런 식으로 몇줄기만 자라오르도록 제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원의 아름다움을 창에서 찾기도 합니다만 그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시와 사군자의 조화가 문속에 숨었습니다. 그 앞을 장식한 상과 멋진 분재 한그루!

 

 

나는 회랑을 따라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퉁이를 돌아봅니다.

 

 

그랬더니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마당 한가운데를 장식한 반송 두그루가 멋진 조화를 만들어줍니다. 반송 뒤로 자리잡은 건물은 앞이 탁트여서 주인과 손님이 돌탁자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도록 시도한듯 합니다.

 

 

또다른 담장밑에는 대나무를 배치해서 문인의 기상을 나타내듯 합니다.

 

 

한쪽으로 눈을 돌리자 땅에서 갑자기 우뚝 솟아오른듯한 태호석 하나가 나그네의 눈길을 확 끌어당겼습니다. 

 

 

나는 명품태호석으로 다가가기 전에 주위를 먼저 살폈습니다.

 

 

문이 열려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스타일의 문은 졸정원에도 분명히 존재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돌이 유원의 상징이기도 한 관운봉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사자나 호랑이에 비유하기도 하더군요.

 

 

태호석 가운데는 가장 크기가 큰 돌로도 명성이 자자합니다. 높이가 6.5 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관운봉 앞쪽으로는 작은 못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물고기가 살더군요. 비단잉어는 아닌듯

하고 금붕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어찌보면 여기가 유원의 가장 비밀스런 공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신록이 움트는 계절에 왔더라면 좋을뻔 했습니다.

 

 

관운봉이라는 명석이 있는 맞은편에 찻집이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차를 즐기고 있더군요. 만약 커피를 팔았더라면 틀림없이 한잔 마셨을 것입니다.

 

 

기념품 판매점도 있고 화장실도 부근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돌아나가기로 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