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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굉촌(=宏村 홍춘)이 괜히 굉촌입니까? 6

by 깜쌤 2015. 6. 11.

 

그럼 이쯤에서 굉촌마을을 위성사진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1번 - 우리가 식사를 했던 마두장객잔의 대강위치

2번 - 월소, 부근에 왕씨종사가 있음

3번 - 화교남호의 위치

4번 - 남호서원

5번 - 굉촌입구의 주차장 

 

그림지도를 자세히 보면 마을앞에 조성된 남호와 그 앞을 흐로고 있는 개천의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지도를 보겠습니다. 아래 지도는 중국 바이두지도를 가공한 것입니다.

 

 

 

 지도의 왼쪽 아래를 보면 축척이 나타나있으므로 마을의 크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왼쪽 제일 아래의 빨간색 점이 황산시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도착하는 주차장이고 1번과 4번 사이의 빨간색 점은 아치형식으로 생긴 화교(畵橋)의 위치를 나타냅니다. 자세히 보려면 지도를 클릭해서 확대한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도 한가운데 찍힌 빨간점은 월소의 위치입니다. 파란색 선은 우리가 움직인 동선이지만 생략된 곳도 있으므로 완전하게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연한 회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굉촌마을의 범위를 나타낸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마을 뒷산은 아주 낮은 언덕처럼 생겼습니다. 나무들이 많아서 올라가도 마을 전체를 살피기에는 역부족일게 뻔해서 이 정도만 보고 돌아섰습니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뚜렷해서 올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래도 올라가볼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다시 골목 탐방길에 나섰습니다. 그게 그것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현지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훑어보는 것은 여행의 중요한 목적가운데 하나이기에 나는 기어이 살펴보기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대문에 붙어있는 이런 형상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무서운 느낌이 들도록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집안으로 침입하고자 하는 나쁜 기운과 잡귀신들을 물리치고자한다는 희망을 담고있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발걸음이 향하는대로 아무 곳이나 가보았습니다. 그래도 가봐야하는 곳은 거의 다 들러본듯 합니다. 

 

 

 나는 이 마을 집집마다 흘러드는 수로의 정밀함을 보고 거듭거듭 감탄했습니다. 대문간에 판매용 음식을 내어두기도 했습니다. 저 통 속에 어떤 음식이 들어있을까하는 호기심은 잠시 접어두고 열러진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일단 맞은 편 골목의 정경도 확인해둡니다.

 

 

개방해둔 집 안으로 들어가야지요. 규모가 장대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항아리들의 용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입구를 지나면 안에 또다른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인당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서기 1862년에 건립된 건물이라니까 약 150여년전의 건물입니다.

 

 

수인당이라는 현판 밑에는 대청겸 응접실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자리잡았습니다. 거의 모든 집마다 저런 공간이 반드시 있는데요, 앞에 놓여진 물건들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거의 예외없이 거울이나 시계같은 것이 꼭 있더군요. 그런 물건들도 순서가 있어서 정해진 차례대로 배열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가장 원하는 장수와 발복(發福)같은 덕목들과 연관시켜 발음이 비슷한 물건들을 놓아둔 것이더군요.

 

 

수인당으로 들어가는 내부공간 앞에는 여러가지 물건들을 전시해두고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전통가옥에 사용하는 문살 문양과 너무도 똑같이 생긴 문짝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목의 또다른 어떤 집은 공사중이었습니다.

 

 

이집의 문살도 우리나라 것과 닮았더군요.

 

 

안으로 슬며시 들어가보았는데 객잔으로 쓰고자 하는것 같았습니다.

 

 

구조가 객잔처럼 생겼더군요.

 

 

우리는 그집을 나섭니다. 어느 집을 살펴봐도 하나같이 작은 요새처럼 느껴집니다. 공사중인 그 집도 입구는 이런 식으로 자그만합니다.

 

 

아까 궁금해했던 통속의 음식을 확인할 차례입니다. 통속에는 전병종류가 들어있더군요.

 

 

이건 무슨 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따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데우고 있는것 같습니다.  

 

 

골목으로 흘러들고 있는 물의 흐름은 느리지가 않았습니다. 이 정도 물의 흐름이라면 경사도를 멋지게 이용할 줄 알았다는 말이 됩니다.   

 

 

골목은 그렇게 너른 편이 아니었습니다만 두사람이 불편없이 비켜다닐 수는 있었습니다.

 

 

사백여년전에 마을을 대대적으로 손보면서 물길을 집집마다 거쳐가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이 물을 이용해서 세수도 하고 채소도 씻고 빨래도 했던 모양입니다. 마을 공동규약을 통해 빨래시간을 정해서 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채소같은 것을 씻는데 문제가 없으니까요. 

 

 

마을 안에는 유스호스텔에 해당하는 건물도 있더군요.송학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 맞은편입니다.

유스호스텔이라면 안들어갈 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안으로 들어섰더니 침대시트들이 널려있었습니다. 호스텔 냄새가 나는군요.

 

 

입구로 쓰는 문도 운치가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아주 작은 규모지만 못도 있습니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이웃집과는 완벽하게 차단된 구조입니다.

 

 

손님용 방은 주로 이층에 있는듯 합니다.

 

 

숭지당이라는 현판밑에는 시서화가 실내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데서 하루쯤 묵어봐야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대강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골목에는 거선당객잔이라는 간판이 우리를 환영해주었습니다. 굉촌(=홍춘)에 머물 경우 객실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그런 현상은 별로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거선당 입구에는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평가한 증서와, 이 집과 관계있는 여러 단체를 새긴 구리판이 많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바틱천으로 장식한 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두번째 입구에는 돌사자라고 생각되는 석상 두마리가 턱 버티고 앉아 눈을 부라리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프론트인가 봅니다. 우리가 들어가도 스태프들은 자기들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그들과 이야기도 한번 나누지 못하고 돌아나왔습니다,

 

 

우린 다시 입구쪽으로 돌아나왔고.......

 

 

다시 앞으로 골목을 따라 걸어나아갔습니다. 

 

 

이제 골목이 끝나가는듯 합니다.

 

 

이집은 찻집인가 봅니다. 다른 글을 읽다보니까 이집 안에 있는 작은 정원이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그땐 그걸 몰랐습니다.

 

 

물이 흐르는 도랑 중간에 작은 다리를 만들었네요.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둑길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을 옆을 흐르는 개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계라고 부르는 하천인가 봅니다.

 

 

개울을 가로막은 보가 보였습니다. 보의 높이가 제법 높습니다. 보를 만들면서 갇힌 물이 둑밑을 지나 마을로 이어지는 물길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물의 공급처가 여기였던 것입니다. 월소같은 곳은 원래 샘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런 물을 공급받음으로서 수량이 더 풍부하게 된 것이겠지요.

 

 

개울 건너 저 멀리 산들이 보였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밑으로 하얀 집들이 보였습니다.

 

 

황산 주위로 참으로 많은 아름다운 마을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는 것이죠.

 

 

보에다가 모래를 채운 주머니를 덧올려 수면의 높이를 올렸더군요. 멀리 보이는 산들의 높이가 있으니 골짜기도 깊기에 이정도의 수량이 유지되는가 봅니다.  

 

 

굉촌바깥의 풍경도 꽤나 평화로웠습니다. 우리들의 농촌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마을을 이루는 집들의 색깔만은 확연히 구별되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