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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호젓한 솔숲 사이 성덕왕릉을 가보다

by 깜쌤 2015. 5. 30.

 

경주에 40여년을 살았으면서도 성덕왕릉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앞을 지나다가 한번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7번 국도에서 동해남부선 철길쪽으로 가서 철길을 건넜습니다.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예전의 내동초등학교(현재는 영상박물관)를 지나자마다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한적한 분위기입니다.

 

 

철길을 건너면 곧 솔밭이 나옵니다. 

 

 

왼쪽으로 커다란 봉분만 남은 무덤이 등장하는데요,

 

 

그게 효소왕릉입니다. 다섯살의 나이로 신라의 32대 왕이 되어 십여년쯤 다스리다가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29대 무열왕, 30대 문무왕, 31대 신문왕.... 이런 식으로 이어집니다. 

 

 

무덤하나만 덩그라니 남아있기에 찬찬히 둘러볼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효소왕릉 입구에서 남쪽을 보면 논벌 가운데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면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서남쪽으로는 동해남부선 철로가 지나갑니다.

 

 

나는 다시 동쪽 안으로 걸어가봅니다. 거의 바로 옆에 또하나의 무덤이 등장하는데요, 

 

 

그게 성덕왕릉입니다. 성덕왕은 효소왕의 친동생으로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성덕왕릉에는 봉분 주위로 난간석과 석물들이 등장합니다.

 

 

돌사자들이 보입니다.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형체만 남아있습니다.

 

 

문인같기도 한데 모습이 흐릿합니다. 문인인지 무인인지 구별이 안됩니다. 신라시대에는 문인무인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지않다는 견해도 있더군요.

 

 

봉분을 둘러싼 둘레석이 단정하게 보입니다.

 

 

양쪽으로 석인상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한나라를 통치했던 왕의 무덤치고는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석상은 말없이 천년 세월을 지켜왔습니다.

 

 

석인상의 뒷모습을 보면 그는 갑옷을 입고있는듯 합니다.

 

 

그렇게 천년세월을 버텨온 것이겠지요.

 

 

나는 무덤쪽으로 가보았습니다.

 

 

무덤 앞에는 상석이 있습니다.

 

 

난간석 안쪽으로는 회랑을 만들고 판석을 깔았습니다.

 

 

그리고는 십이지신상을 배치했습니다.

 

 

십이지신상은 하나같이 목 윗부분이 떨어져나갔습니다.

 

 

놓여진 위치도 고르지 못합니다.

 

 

나는 뒤쪽으로 가보았습니다.

 

 

돌사자 네마리가 한쪽 방향씩을 맡아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신라인들은 사자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호랑이는 익숙했겠지만 사자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다시 무덤앞쪽으로 돌아나왔습니다.

 

 

동해남부선을 따라 기차가 경주역쪽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논벌 가운데 있는 바위를 향해 걸었습니다. 소나무사이로 형체가 보입니다.  

 

 

어쩌면 귀부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형체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나는 참배도를 따라 가보았습니다.

 

 

바위를 깎아만든 거북의 형체가 드러납니다. 오른쪽 뒷발쪽이 갈라져 내려앉은듯 합니다.

 

 

발가락 조각이 뚜렸합니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요?

 

 

왜 효소왕릉에는 이런 것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거북 등에 세워져있었던 비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효소왕과 성덕왕은 형제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제는 가고없는데 그들이 누렸던 봄을 우리도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동해남부선 철길을 건넜습니다. 이 철길도 나중에는 없어지겠지요.

 

 

내가 방금 돌아나온 길을 어떤 부부가 되밟고 있었습니다.  

 

 

그날, 불국사 기차역부근 방형분 근처에는 이팝나무꽃이 한창 만발했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