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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여산의 마지막 밤, 모택동의 글씨를 찾아서

by 깜쌤 2015. 4. 30.

 

내눈에는 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모택동여산시사원'이라고 보입니다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아도 나오는 자료는 없었습니다. 모택동의 글을 모아둔 정원이라는 말이겠지요.

 

 

여산박물관과는 바로 지척의 거리에 있습니다. 고령진으로 돌아가는 길목이기도 하고요.

 

 

붉은 지붕이 보이는 건물 오른쪽이 노림호입니다. 차 두대가 서있는 곳 왼쪽이 모택동동지구거가 되는 것이죠.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래된 건물은 아닌듯 합니다. 시멘트로 만든 정자 같은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보기가 흉했습니다.

 

 

계단을 올라갑니다. 두개의 돌기둥 사이에 서있는 동상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왼쪽이 모택동이고, 오른쪽은 주은래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직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때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발언해서 나라를 들쑤셔놓았던 것이 어제일 같습니다. 남북분단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도 따지고보면 한국전쟁참전을 결정한 모택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중국인들은 모택동의 공()이 7할이라면 과()는 3할이라는 식으로 평가를 하면서 건국 공로자를 인정하고 기리는 분위기를 만들어갑니다만 우리나라는 건국대통령부터 무조건 깎아내리고보는 풍조를 만든 것은 누구때문일까요?

 

 

확실히 여산 가운데가 움푹하다는 말은 진실인것 같습니다. 그동안 중국을 아홉번 돌아다니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보았습니다. 역사가 무엇인지를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를 깨달았다는 것이 중국 여행의 교훈이라면 교훈이었습니다.

 

 

중국역사는 우리나라 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국민과 지도자가 현명하게 판단을 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기둥에 새겨진 글은 한눈에 봐도 모택동의 작품입니다.

 

 

나는 회랑을 따라 걸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글이 남아있더군요.

 

 

주덕의 글입니다. 주덕! 중국공산혁명 과정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죠. 오른쪽의 시는 여산이 자랑하는 운무차에 관한 감상을 쓴듯 합니다.

 

 

회랑 높은 곳으로 갈수록 모택동의 작품으로 채웠습니다.

 

 

이제 중국인들에게 모택동은 신으로 비추어지는듯 합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관우는 이미 중국인들이 숭상하는 신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사원 제일 높은 곳에는 짐작대로 모택동의 작품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강택민의 글씨도 남아있습니다. 모택동의 작품 뒷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모택동의 글씨 속에는 확실히 호방한 기운이 흘러넘칩니다. 제 느낌에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가고 글씨가 남았습니다.

 

 

여산에 이런곳도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장개석과 모택동이 여산을 그만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회랑을 둘러보고 도로로 나갔습니다.

 

 

그늘이 진하게 내린 이면도로를 따라 걷다가 우리는 다시 마을길로 들어갔습니다.

 

 

해가 넘어가면서 추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군데군데 좋은 집들이 남아있더군요.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고령진 마을이 일반인들이 머물어사는 곳이라면 이쪽은 고위층들의 별장이 몰려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건물은 호텔로 쓰는듯 했습니다.

 

 

마을을 통과하다가 나는 섭영진원수 옛집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흔적을 여기서 만나다니........ 한국전쟁때 중국군 참모장으로 활동했던 인물이기도 하며 중국인들이 꼽는 개국 10대원수 가운데 한명이었죠.

 

 

우리는 다시 고령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보아두었던 차이나포스트 건물에 들어가서 한국으로 엽서 한장을 보냈습니다. 한국으로 보내는 엽서 한장당 6원을 받더군요. 나는 버스정류장을 찾아나섰습니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집을 지나다가 "九江行巴士"라고 쓴 종이를 보여주었더니 정류장 방향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경덕진으로 이동해야하니 버스출발점을 확인해두고 시간표도 알아두어야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친절한 아줌마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구강으로 내려가는 버스 시간표도 확인했습니다. 여산에서 황산과 무원으로 가는 버스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무원! 무원으로 가는 차는 아침 7시 50분 발입니다. 무원은 중국인들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시골마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우리들은 나중에 무원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무원 중에서도 가장 인기높은 이갱마을에서 이틀씩이나 묵는 호사를 누리게 되죠.  

 

 

버스가 한대 서있었고 아줌마 한사람이 손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버스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촬영하자 그녀는 친절하게도 다가와서 동절기 시간표는 다르다며 종이에 시간표를 적어주었습니다. 다음에 여산여행을 가실 분들을 위해 정리해드리겠습니다. 

 

 

 

      2015년 현재 동절기 구강행 버스시간표(여산 고령진마을에서 출발할 경우)

 

       1) 08 : 20

       2) 10 : 30

       3) 13 : 40

       4) 15 : 30

       5) 16 : 30

 

 

 

 

버스정류장 부근에는 호텔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이틀동안 여산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으니 내일에는 떠나야합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경덕진입니다.

 

 

여산을 기억속에 담아두기 위해 정류장부근의 풍광을 다시 한번 더 살펴두었습니다.

 

 

저녁을 먹을 음식점을 찾아야지요.

 

 

중국인들이 물고기 말리는 것을 자주 보았으니 이번에는 그런 것을 한번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맛일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해발 천미터가 넘는 산중에서 물고기 요리를 찾는 우리도 어쩌면 조금은 이상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골목에는 손님들의 호기심을 끄는 재미있는 가게들이 여기저기 숨어있었습니다.

 

 

제법 깔끔해보이는 음식점을 찾아서 들어가보았습니다.

 

 

우리가 시킨 요리들입니다. 물고기 한접시와.....

 

 

뜨뜻한 탕 한그릇......

 

 

두부 한 그릇과......

 

 

그리고 밥 한 양푼입니다.

 

 

생선요리는 약간 빈약해보여도 26원짜리입니다.

 

 

생선맛은 아주 독특했습니다. 향료냄새가 진한듯 하면서도 훈제한듯한 느낌이 스며들어있는 기묘한 맛이었습니다. 살을 씹을때면 꼬들꼬들하면서도 약간은 뻐덕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보았더니 이집 처마밑에도 돼지고기가 달려있더군요. 하루종일 걸었으니 몸이 파김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날이 밝았습니다. 이제 경덕진으로 떠나야합니다. 오늘은 하루 내내 이동하다가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구강버스터미널에서 경덕진으로 가는 고속버스시간표까지 미리 조사를 해두었으니 잘만하면 한낮에는 경덕진에 도착할지도 모릅니다. 희망을 가져야지요. 다음 글에 계속하겠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