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여산박물관(모택동 동지 구거)에서

by 깜쌤 2015. 4. 29.

우리는 노림호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택해서 내려갔습니다. 아름다운 집들이 서서히 낡아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내려가는 돌길은 포장상태가 조금 거칠었습니다. 여산 돌길의 처음 상태는 어쩌면 이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내려가자 노림호가 나타났습니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노림대교입니다. 여름에 가뭄이 들면 한번씩 완전히 마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치수(治水)로 유명한 임금이 여산과 구강에 와서 홍수때 물길의 방향을 살피면서 치수의 방법을 강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도 여산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세밀하게 몇번을 읽었으면서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그런 부분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이 여산에 올라와서  "내가 남쪽으로 여산에 올라, 우임금이 구강을 다스린 곳을 보았다(余南登廬山 觀禹疏九江)"고 했다는군요. 

 

 

그런 식으로 파악해보면 여산의 역사성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산박물관을 찾으러 가는중입니다만 길을 잘못들어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중국의 고서 가운데 하나인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여산을 두고 천자도(天子都), 천자장(天子障), 남장산(南障山)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천자란 여산의 높고 웅장한 모습을 가리키고, 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산세가 병풍을 두른듯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합니다. 

 

 

여산을 두고 어떤 이들은 광산(匡山) 혹은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오로봉에서 우리들은 파양호를 보았습니다만 여산은 파양호를 둘러싼 평야에 불쑥 솟아오른 모습이 마치 초가집()같아서 여산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령진의 모습과 오로봉과 한양봉 사이의 골짜기를 보면 알겠지만 사방은 높은데 가운데 부분이 우묵하게 들어갔기에 광주리를 닮았다고 해서 광주리를 의미하는 광(筐)이라는 한자를 써서 한때는 광산이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모택동구거를 찾아다니다가 못찾고 결국 다시 노림호가 보이는 호숫가로 나왔습니다. 지도를 다시 자세하게 살핀 결과 우리가 그동안 엉뚱한 장소를 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산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신선사상과 연관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때 살았다고 전해지는 광속(匡俗)이란 사람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기를 원해 여산에 들어갔습니다. 

 

나라에서는 그에 관한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광속을 불렀지만 그는 더욱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광속이 몸을 감춘 이 신비한 산을 두고 광산(匡山) 혹은 광려(匡廬)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마침내 우리들은 여산박물관 정문앞에 도착했습니다. 여산박물관을 두고 다른 말로는 모택동 동지구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문의 간판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모택동동지구거라는 글씨가 선명합니다. 평등을 지향한다는 공산주의지만 동지동무는 엄연히 다릅니다. 모택동 동무가 아니라 동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정원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됩니다. 모택동이 여산에 올 경우 여기서 머무르기도했기에 '모택동 동지 구거'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명나라 가정 2년, 그러니까 서기 1523년에 만들었다는 옛 천문의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재료는 쇠입니다. 이 기구를 가지고 별의 움직임과 일월의 움직임을 관찰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건물이 가까워집니다. 사실 건물은 입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호수를 앞에 둔 산자락에 자리잡아서 그런지 공기가 맑았습니다.

 

 

 이제 건물 현관으로 들어갑니다. 단층으로 지은 평범한 집이지만 기품은 있습니다.

 

 

입구 왼쪽에는 글씨를 써주는 노인장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달필인 모양입니다. 

 

 

 현관을 들어섭니다. 중국 대륙에서 번자체를 보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잘 다듬은 분재 한그루가 손님을 환영해주었습니다.

 

 

현관 부근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그림속에 광려라는 글자가 등장합니다. 광려가 무엇인지는 아까 위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산풍경을 찍은 사진도 걸려있었습니다.

 

 

 모택동의 글씨도 빠질 수가 없겠지요.

 

 

 건물이 제법 컸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모택동이 사용하던 접견실인가 봅니다. 녹색 카펫이 아주 묵직해보입니다. 한눈에 봐도 고급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여산에서 나오는 돌을 전시해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산의 지질학적인 면을 살펴보자는 차원에서 전시한 것이지 싶습니다.

 

 

 사실 건물안에는 여산의 지질학적인 구조를 설명한 곳도 있습니다. 명색이 여산박물관 아닙니까?

 

 

 그런가하면 귀중한 도자기도 보입니다.

 

 

 옥공예품도 빠질 수가 없겠지요.

 

 

 예전 여산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도 보였습니다.

 

 

 1897년에 건립했다는 예배당사진도 보입니다만 우리들은 실제 건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게 약간의 아쉬움이 되었습니다.

 

 

 여산과 관련있는 시화첩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청나라시대의 고급가구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정교하고 화려합니다.

 

 

한쪽 벽면에는 여산과 관련있는 인물들에 대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강유위가 먼저 등장하네요.

 

 

강유위(康有爲, 캉유웨이) - 청나라때의 정치가이며 사상가

 

 

 

그 다음에는 서하객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여행가죠.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왕수인이 등장합니다. 한분 한분 자세히 소개하려면 한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인물만 소개하고 넘어갈까합니다.

 

 

명태조 주원장이죠. 주원장의 흔적이 여산에 제법 많이 남아있습니다.

 

 

주원장이 나왔으니 천지사는 당연히 등장할테고요.

 

 

조맹부입니다. 송설체(어떤 이는 조체라고도 합니다)라는 서체를 만들어낸 서예가며 화가이며 정치가였지요.

 

 

학자였던 주희도 여산과 깊은 관련을 맺었습니다.

 

 

육유입니다. 애국시인이며 정치가였던 분이죠. 육유와 당완에 얽힌 슬픈 사랑은 뭇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글 제목을 클릭해보기 바랍니다.

 

 

 

 

 중국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악비가 등장합니다. 악비가 충신의 표본이라면 그의 숙적이었던 진회는 매국노의 표본이 됩니다. 악비와 여산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요? 악비는 남송시대의 명장입니다. 충신 악비는 구강 일대에 진을 치고 남하하는 금나라 세력을 막았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악비의 어머니와 부인묘소도 여산에 있다고 하더군요.

 

 

황정견이 나타나고.......

 

 

동파 소식이 등장하는가하면......

 

 

주돈이 선생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백거이입니다.

 

 

여산에 이백이 빠질 수 있나요?

 

 

귀거래사를 읊은 도연명은 워낙 유명하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서예의 대가 왕희지도 여산과 관련이 있는 인물입니다.

 

 

강택민, 이붕도 등장하네요.

 

 

이붕의 모습입니다. 그는 주은래의 양자로도 유명합니다.

 

 

 천안문사태때 강경진압의 주도적인 인물로 등소평과 함께 유명한 인물이죠.

 

 

여산 이야기를 꺼낼때는 모택동도 절대로 빠질 수 없겠지요.

 

 

그도 여산을 꽤나 사랑했던가 봅니다.

 

 

나는 다시 한번 모택동의 거처를 보고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산박물관 바로 부근에는 모택동의 시를 모아놓은 정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거길 가야지요. 다음 글에 계속하겠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