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패자와 승자 - 미려별서와 주은래기념관

by 깜쌤 2015. 4. 21.

 

우리는 미려별서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마당 한켠은 산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원에는 대나무 숲이 있더군요.

 

 

야외풀장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만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습니다.

 

 

풀장 바로 옆 산봉우리 초입에 비밀 방공호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방공호속에서 밖을 본 모습입니다. 아마 일본군의 공습을 대비했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지요.

 

 

미려별서에는 역사의 패자가 되어버린 장개석과 그의 아내의 슬픔이 스며들어 있는듯 합니다. 그러나 한구석에서는 그들의 교만과 오만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미려라는 글씨가 뚜렷합니다. 바위돌에 말입니다.

 

 

역사의 승자와 패자는 이런 데서도 구별되는가 봅니다.

 

 

우리는 출구를 향해 걸어나갔습니다.

 

 

미려별서에서 맞은편 개울을 건너편 주은래기념관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승자의 기념관을 향해 가봐야지요.

 

 

패자인 장개석의 부인이름을 딴 수퍼 건너편에 승자인 주은래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1934년부터 1948년까지 이 별장의 주인공은 장개석부부였습니다. 그 후에는 주인이 바뀌게 되지요.

 

 

건너편에 보이는 저 집이 주은래기념관입니다.

 

 

미려별서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으면 주은래기념관은 그냥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려별서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아무런 제제없이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만 처음에는 관리인의 초등학생 아들과 티켓문제때문에 뜻이 잘 통하지 않아서 약간 애를 먹었습니다.

 

 

미려별서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저 위에 보이는 붉은 지붕을 가진 집입니다.

 

 

검박한 생활을 했던 주은래의 성품답게 기념관도 수수하기만 했습니다.

 

 

주은래! 삼국지연의로 치자면 제갈량과 같은 역할을 했던 그는 모택동의 친구이자 혁명동지이자 부하이면서 충성을 다한 조력자였습니다.

 

 

실내 사진촬영은 금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워낙 귀한 사진 자료가 많았기에 여자관리인의 눈을 피해 찍어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귀한 장면을 찍어둔 사진들이 즐비하더군요. 하단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주은래입니다. 

 

 

우리가 아까 거쳐온 여산 삼보수 앞에서 양상곤과 양상규가 함께 찍은 사진도 보였습니다. 양상곤은 중국 군부의 실세였던 인물입니다. 그의 동생이 양백빙이었습니다.

 

 

모택동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이네요.

 

 

주은래만큼 중국 인민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은 인물도 드물지 싶습니다.

 

 

그는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침실입니다.

 

 

옆에는 주은래의 부인이었던 등영초의 침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여성이 등영초입니다. 1970년 여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속에 깜쌤의 모습이 비쳐버렸습니다.

 

 

셔터 소리에 관리인 여자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주은래의 서재입니다. 모든 것이 간결했습니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절강성 소흥을 여행했던 기록에서 약간 소개해드린 바가 있습니다. 아래 글 주소를 눌러보면 주은래의 일생을 간략하게 알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yessir/15867250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주은래는 그런 삶을 살고 갔습니다.

 

 

어느 정도 그의 흔적을 살핀 뒤 우리는 주은래기념관을 나왔습니다.

 

 

마당의 장식도 수수하기만 했습니다. 

 

 

주은래기념관을 나와서는 고령진을 향해 걸었습니다. 아주 작은 언덕 하나만을 넘으면 고령마을입니다.

 

 

여산 도서관 맞은편 길을 따라가면 고령진이 됩니다.

 

 

어제 저녁에 만두국을 먹었던 곳은 저 골목안에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서서 보았던 공원전망대에 다시 선 우리들은 밑에 자리잡은 계곡마을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지금 걸어보지 않으면 골목탐방을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골목에 있는 집들의 지붕은 거의 함석으로 되었더군요. 하지만 골목길은 모두 돌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골목에도 많은 여관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시장도 있습니다. 있을 것은 다 있다는 말이지요.

 

 

골짜기 안은 제법 널찍했습니다.

 

 

골목에도 돼지고기를 말려두는 집이 많았습니다. 시장안에도 돼지고기만 파는 집이 따로 있더군요.

 

 

 이런 것은 아무리 보아도 순대같습니다. 중국식 소시지일지도 모릅니다.

 

 

음식문화에 관해서는 중국인들을 이겨낼 재주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골목 여기저기에는 휴식할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해가 지면서 골목에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런식으로 간단히 골목 탐방을 한 뒤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엄청나게 많이 걸었던 하루였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우리들은 호텔앞에 있는 이슬람교도식당(=청진식당) 에 가서 볶음밥과 만두국을 시켰습니다. 밤날씨가 차가웠기에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하루종일 걸었으니 음식맛이 꿀맛이었습니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따라 뱃속으로 내려가자 조금 살만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들은 이내 잠에 취해 곯아떨어져야했지만 습관이라는게 정말 무서운 것이어서 나는 눈꺼풀의 무게를 끝까지 버텨내며 일기장을 꺼내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