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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선인동, 담판대, 호운석. 천교.... 모두 환상적인 경치였습니다

by 깜쌤 2015. 4. 14.

 

동굴앞에 놓여있는 향로에는 선인동도원(仙人洞道院)이라는 글자가 선명합니다. 그러니 여기는 도교와 관련있는 유적이 더더욱 확실한 것이죠. 문제는 황금색으로 만들어놓은 수염시커먼 도사입니다. 저 양반이 누구일까요?

 

 

그가 중국인들 민간신앙에 전설적인 존재인 여동빈입니다. 중국 당나라때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 쉰(50)에 선인이 되었다는 사람이죠. 실존인물로서 서기 796년 산서성 영락현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성은 여()씨, 이름은 암(巖, 岩), 자는 동빈(洞賓), 호는 순양자(純陽子)입니다. 도를 닦아 몸과 마음의 모든 음기가 빠져나가고 맑디맑은 양기만 남았기에 순양자라고 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도사가 등에 칼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때문일까하고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는 46세때 과거에 낙방하고 실의에 빠져 술집에 들어갔다가 종리권이라는 사람을 만나 수련의 길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승이 종리권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성이 종리, 이름이 권입니다.

 

 

여동빈이 도를 닦는 과정에서 여산에 들렀다가 화룡진인(火龍眞人)이라는 도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전수받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선인동은 여동빈이 도를 닦고 은둔생활을 했던 곳이라고 여기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만히 보면 동굴이 위치한 장소가 기가 막힐 정도로 기묘한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는 멋진 길을 만들어두었으니 접근하기가 쉽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확실합니다. 앞은 천길 절벽이요 뒤로는 가파른 산비탈이니 다가서기가 쉬운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깊이가 10여미터가 되는 천연동굴이 있고 더더욱 신기하게도 동굴속에 맑은 물이 샘솟는 샘이 있다는 것이죠. 동굴에 앉아서 내려다보면 앞이 탁 트였는데 멀리 파양호가 보이고 민가가 산아래 까마득하게 점점이 박혀있으니 수련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동빈은 구제와 적선에 힘을 쓴 선인(仙人)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 도를 닦을때는 요즘 말로하자면 연금술을 배웠던 모양인데 삶이 고달픈 서민들에게 홀연히 나타나 많은 금전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니 중국인들에게 영웅 비슷한 대접을 받는것이죠. 중국 도교에서는 여덟명의 위대한 도사급 인물로 팔선(八仙)을 꼽는다는데 당연히 여동빈이 그 가운데 한명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가장 많은 일화를 남긴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보면 선인동이라는 곳이 너무 흥미로워지는 것이죠. 여동빈상 바닥에는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태극사상이 어디에서부터 유래했는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니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선인동을 나와 가던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선인동 부근에서 매점을 만났습니다만 군것질도 하지 않고 그냥 걸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을 못먹은 것 같았습니다. 삶은 계란이나 컵라면이 군침을 돌게 했습니다만 참았습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선인동 부근에는 화장실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워낙 많은 중국인들이 몰리는 곳이니 저 정도의 시설은 기본이겠지요.

 

 

산비탈을 따라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봅니다. 돌아설까 하다가 이 길 속에 멋진 장소들이 즐비하기에 돌아서서 입구로 그냥 나가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산길에는 호젓함이 가득 묻어있었습니다. 주원장과 관련이 있다는 어비정을 지나친 뒤 불수암을 본 후 선인동을 지나서 걷는 것이죠. 여산에 가는 분이라면 꼭 한번 걸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길입니다. 그냥 오면 반드시 후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금 가다가 보니 돌로 만든 관묘정이라는 정자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아래를 보는 경치가 환상적입니다. 오죽했으면 여산안개를 두고 여산운해라고 불렀을까요? 아래 세상에서 보면 안개겠지만 산위에서 보면 구름이 되는 것이니 밑에서 보는 경치도 분명 남다를 것입니다. 반드시 멈추어서서 아래를 보기 바랍니다.

 

 

부근에는 죽림사의 흔적이 슬며시 남아 있습니다.

 

 

맑은 물이 샘솟아오르는 바위가 있기도 하고요.....

 

 

중국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위를 깎아 참한 샘으로 다듬어놓았습니다. 동전을 던져 안으로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는 소문을 내두었을테고 이를 들은 나그네는 한두푼 장난삼아 던져볼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슬며시 나타나 동전을 거두어가는 그 누가 또 존재하겠지요.

 

 

담판대 옛터 부근 바위에는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멋진 말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자'는 것이니 그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겠습니까? 거기에도 작은 매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멋진 풍경이 나타납니다. 중국 복건성 무이산은 계림과 함께 비경중의 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이산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점입가경입니다.

 

 

여산도 그렇습니다. 여산의 진면목(眞面目)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진면목이라는 말도 여산을 두고 읊은 시구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계시지요? 처음 듣는 말이라고요? 동파선생 소식이 여산에 올랐다가 시를 지었습니다.

 

橫看成嶺側成峰 (횡간성령측성봉)   이리보니 고개요, 저리보면 봉우리니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멀고 가까움과 높낮이에 따라 각각 모양이 다르네.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진면목(眞面目)을 알 수 없었음은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다만 내 몸이 이 산중에 들어있기 때문일터....
 

 

 

 

'담판대구지'라는 현판이 붙은 장소 부근에도 어김없이 매점이 있습니다. 여산의 장사치들은 점잖아서그런지 호객행위를 심하게 하지 않아서 더 좋았습니다.

 

 

담판대와 관련이 있는 인물은 미국의 마샬원수와 국민당정부의 장개석총통입니다. 1946년 7월부터 9월까지 모두 여덟번이나 함께 여산에 올라 국민당과 공산당에 대한 합작건으로 담판을 벌였다는 장소라는 말이겠지요. marshal이라는 성 그 자체가 이미 원수라는 말이니 발음으로 장난을 치면 더더욱 재미있습니다.

 

 

중국대륙을 통치하는 정권을 오로지하겠다는 일념에 불타있었던 장개석은 공산당과의 합작을 거부하고 결국 내전에 들어갔지만 결국은 비참한 패배로 막을 내렸습니다.

 

 

장게석정부는 결국 대만으로 퇴각하였고 패배자가 되었음은 역사가 증명해주는 사실입니다. 그러고보니 앞에서 보았던 동주공제라는 말이 어쩌면 장개석의 심중에 뼈저리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의 교훈을 모르는 부류들이 어디 한두명입니까? 진보와 보수로 이름붙인뒤 패가름하며 싸우는 우리 정치인들은 무엇을 배우며 사는 인간들일까요? 거기에다가 지역감정까지 교묘하게 덧씌운뒤 선거철마다 감정을 부추기는 썩어빠진 것들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런 인간들을 두고 영웅입네어쩌네하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까지 사이버공간에 넘쳐나니 그저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파양호에서 솟아오른 안개가 여산 금수곡을 휘감아싸고 있었습니다.

 

 

더럽고 추한 현실을 덮어버리는 안개와 눈이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가봅니다.

 

 

길을 산비탈 절벽을 따라 이리로 감아돌다가 저리로 휘어져있었습니다.

 

 

전망대가 나타나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오르락내리락 해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가 어찌 그리도 큰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여산의 진면목인지도 모릅니다.

 

 

동행자와 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해가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어떨땐 우뚝 솟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길은 교묘하게 이어져나갑니다.

 

 

한번 걸어보고 싶지 않습니까?

 

 

저 바위는 무엇처럼 보입니까? 중국인들은 서유기속에 등장하는 저팔계를 떠올리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안개는 더욱 짙어져 갔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까지 휘감아 덮은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고해야 할까요?

 

 

이 깊은 산중에 웬 자물쇠가 저리도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맹세요? 다 헛것입니다.

 

 

변함없이 버티고 서있을것처럼 보이는 저런 절벽도 무너져 내리는데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글픈 희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길은 가느다란 실처럼 계속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에 홀린듯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돌아서기엔 입구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지요.

 

 

여산이 왜 명산인지는......

 

 

저런 바위들이 웅변으로 증명해줍니다.

 

 

그렇게 걸어나가다가 호운석을 만났습니다.

 

 

만지거나 보거나하면 운이 좋아진다는 바위라니 사람들이 멈추어 설 수밖에 없습니다.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이 모녀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좋은 운 만나기를 빌어봅니다.

 

 

마침내 우리들은 여금호가 있는 부근까지 걸어나왔습니다.

 

 

이 부근에 여산의 절경가운데 하나인 천교가 있습니다.

 

 

주원장과 관련이 있다는 하늘다리 천교입니다.

 

 

천교부근에는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여깁니다. 안내판의 사진과 흡사한 곳 아니던가요?

 

 

모두들 기념사진 한장 남기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다 헛것이죠.

 

 

이렇게 찍으면 아주 웅장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찍으면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건너편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압권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됩니다.

 

 

우리는 천교를 벗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수곡에 숨어있는 명소들을 지나온 것이지요.

 

 

출구를 나오면 거기가 바로 여금호입니다.

 

 

저번 글에서 소개해드렸던 정자가 보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안개덕을 단단히 보았습니다.

 

 

여산 안개가 만들어내는 진면목을 골고루 보았으니까요.

 

 

다시 선인동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백거이초당으로 들어가는 화경입구가 눈앞에 있습니다.

 

 

글씨를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아는 중국인들의 감각이 부럽습니다.

 

 

우리는 다시 선인동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던 것이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