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백거이와 주원장, 그리고 여동빈

by 깜쌤 2015. 4. 13.

 

백거이는 당나라시대의 사람입니다.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라면 아무래도 이백두보와 백거이같은 사람들이겠지요. 우리나라 역사와 견주자면 통일신라시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것입니다.

 

 

백거이의 자는 낙천이고 호는 향산거사였습니다. 그는 낙양부근에서 태어났습니다. 낙양사람이어서 그런지 용문 동쪽에 있는 동산(東山)을 좋아했습니다. 거기에 향산사라는 절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무덤은 낙양 외곽에 있습니다. 용문석굴로 유명한 낙양말입니다. 삼국지에도 등장하는 중국의 유서깊은 역사적인 고도가 바로 낙양아니겠습니까? 용문석굴 맞은 편 동산에 향산사라는 절이 있고 그 언저리 어디쯤에 백거이의 무덤이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찾아갔기에 필름 사진 몇장 남은 것이 전부입니다.

 

 

백거이는 쉬운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자의 운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가 남긴 시가 쉬운 것인지 어려운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문학평론가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양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현학적인 표현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작품을 그리 탐탁지않게 여기는 것이 나같은 무식쟁이의 특징인가봅니다.

 

 

1930년대에 누가 이 정자 부근에서 돌바닥에 새겨진 "화경"이라는 글씨를 찾아냈습니다. 오랜 연구작업과 고증끝에 백거이가 남긴 글씨라는 것이 인정되어 그 자리위에 예쁜 지붕을 가진 작은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화경정입니다. 안내판에 보이는 시가 너무나 유명한 대림사도화라는 시입니다.

 

 

화경이라고 했으니 꽃길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멍청하게도 바닥에 있는 글자를 사진찍어둔다는 사실을 깜박하고는 그만 놓치고 말았네요.

 

 

화경정 옆 바위에는 시한수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림사도화라는 시입니다. 저 위 안내판에 나왔던 시죠. 전문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제 실력으로는 쉽게 읽어낼 수가 없어서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大林寺桃花(대림사도화)

 

人間四月芳菲盡 (인간사월방비진)   인간 세상 사월에는 꽃이 다 졌는데

山寺桃花始盛開 (산사도화시성개)  산사엔 복숭아꽃이 성대히 피었네

長恨春歸無覔處 (장한춘귀무멱처)   봄이 돌아가 찾을 곳 없음을 길이 한탄했더니

不知轉入此中來 (부지전입차중래)   이 산중가운데 들어왔음을 알지 못했네

 

 

 

 

화경정을 보고 나서 밑으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곧이어 백거이초당이 나타났습니다.

 

 

안개속에 모습을 드러낸 초당은 한폭의 산수화같습니다.

 

 

대나무와 침엽수 사이에 자리잡은 단정한 초옥한채! 산수화의 풍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색하는 자세를 지닌 시인의 모습이 초옥의 분위기를 한결 정감있게 만들어줍니다.

 

 

제법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은 정치가로서의 백거이보다 시인으로서의 백거이를 돋보이게 만들어줍니다.

 

 

중앙정계의 거물이던 백거이가 강주사마로 좌천되어 울분에 젖어있을때 쓴 시가 유명한 <비파행>이라는 시라고 합니다.

 

 

그가 남긴 시로는 <장한가>도 있습니다. 당 현종과 양귀비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읊은 유명한 작품이죠.

 

 

초당안의 분위기는 별것 아니지만 그가 남긴 비파행이라는 시는 더 가슴깊이 다가왔습니다. 구구절절 가슴아픈 사연만이 가득한 시이기 때문입니다.

 

 

백거이의 유품은 여기에 그리 많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낙양사람이니 무덤이 있는 곳에 더 나은 기념관이 있어야할 터이고 그 속에 그의 유품이 보관되어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백거이의 초상인가 봅니다.

 

 

서기 815년부터 819년까지 그가 강주사마로 부임해서 근무했다는 기록이 뚜렷합니다.

 

 

우리는 천천히 둘러보고 난 뒤 초당을 벗어났습니다.

 

 

한사람의 시인이 여산을 얼마나 유명하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따지고보면 백거이 혼자서만이 여산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동파도  이백도, 심지어는 도연명도 이 여산과 관련이 깊은 인물들입니다.

 

 

근대에 오면 모택동, 장개석, 송미령, 주은래같은 인물이 이 산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초당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위치를 파악해보고나서 선인동을 보기 위해 도로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서 여금호를 찾아본 뒤 선인동으로 갈 생각이라면 우리들처럼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지 말고 화경 입구 부근에서 선인동으로 가는 산길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그게 훨씬 빠릅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우리들은 약 1킬로미터쯤 내려가서 입구를 찾았던 것이죠.

 

 

선인동 입구에는 주차장이 있습니다.

 

 

셔틀버스라고 생각되는 버스가 자주 도착하고 출발하기에 물어보았더니 여산 입장권만으로는 안되고 셔틀버스 이용권을 사서 타야한다고 그럽디다. 80원짜리 셔틀버스 이용권을 사면 7일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셔틀버스 이용권 사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걸어다니는 오히려 낫더군요.

 

 

입구 오른편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모택동주석의 글씨였습니다.

 

 

안내판을 잘 보면 출구의 위치가 화경부근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화경 부근에서 들어가서 선인동으로 나가도 된다는 말입니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산입장권이 있으니 입장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입장하면서 오른쪽 길로 곧바로 가면 선인동이 나오고 왼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어비정이 나옵니다.

 

 

우리는 어비정부터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어비정은 명태조 주원장과 관련이 있는 유적입니다.

 

 

어비정 끝머리에 서서보니 파양호에서 솟아오른 안개가 산비탈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일년에 200일 이상 안개가 끼는 곳이 여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산과 안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죠. 건너편으로 선인동 흔적이 조금 보였습니다.

 

 

어비정 속에는 비석이 서있습니다.

 

 

명태조 주원장이 직접 쓴 것인지 아니면 그의 행적을 기록해둔 후대의 작품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어비정 뒤에는 관람대가 마련되어 있어서 한번쯤은 서서 아래를 굽어볼만 합니다.

 

 

어비정을 보고 난 뒤 우리는 선인동을 향했습니다.

 

 

선인동으로 가는 길에 서서보면 어비정 밑에 절벽쪽으로 삐져나온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의 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수암(佛手巖)이라고 부릅니다. 여산을 향해 솟아오르는 파양호의 안개를 보기에는 아주 멋진 명소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절벽을 끼고 만들어둔 계단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한 백여미터쯤 갔을까요? 도교사원 비슷한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누가 봐도 도교사원인것 같습니다.

 

 

현판에 태상노군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도관맞습니다.

 

 

도교와 불교는 엄연히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선이나 선녀같은 말은 도교에서 나온 말입니다.

 

 

비석의 모양도 다르지 않습니까?

 

 

거북의 등에 용머리라.....

 

 

태상노군전이라는 현판 글씨가 뚜렸합니다.

 

 

그러니 도관이라 할만하지요.

 

 

바로 옆에는 선인동이라는 동굴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누가 모셔져 있을까요?

 

 

선인동 속에는 등에 검을 맨 도사가 앉아있었습니다.

 

 

도사를 호위하는 괴수의 표정이 험상궂기 그지없습니다.

 

 

검을 멘 도사! 그가 바로 여동빈입니다. 여동빈! 우리에게는 낯설은 인물이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제법 친숙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