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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여산 깊은 곳에 신비로운 꾸링마을이 있었습니다

by 깜쌤 2015. 4. 6.

 

여산의 최고봉은 1,500여미터에 육박하는데다가 양자강과 파양호 주변에 넓게 펼쳐진 평야 가운데 갑자기 우뚝 솟아오른 산이어서 보통 산들보다 훨씬 높게 보이는 산이라고 합니다. 여산을 두고 명산(名山)이라고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여산을 다녀갔습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1,500여명의 시인묵객들이 여산을 다녀가면서 1만 6천여수 정도의 글을 남겼다는 산이기에 명성이 자자한 것이죠.

 

 

그런데 해발고도 1,100미터 되는 곳에는 눈이 번쩍 떠질만큼 아름다운 서양풍의 도시가 만들어져있으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산꼭대기 계곡 양쪽으로 번듯한 서양풍의 도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별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건물들입니다. 전통적인 중국양식의 건물들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도시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가던 버스는 종점이라고 생각되는 정류장에서 많은 승객을 내려놓더니 다시 더 앞으로 나아가다가 제법 화려해보이는호텔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었으니 오늘 묵을 호텔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버스기사가 의도적으로 차를 갖다댄 호텔은 요금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두말없이 돌아나와 다른 호텔을 찾아나섰습니다. 겨울철 비수기여서 그런지 몇몇 호텔은 썰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손님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가격은 엄청 쌌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찾아간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이 넘는 금수성세주점이었습니다. 카운터에 근무하고 있던 아가씨는 영어가 되는데다가 슬그머니 곁에 다가온 어떤 양반이 엄청난 할인가격을 제시하기에 묵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야 원래부터 하는 일이 잘되는 팀이니 최고급 호텔을 싼값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철 성수기라면 도저히 그가격에 묵을 수없는 그런 고급호텔이었습니다. 하룻밤에 120원을 주고 묵기로 했던 것이죠. 한사람이 부담해야하는 금액은 60원이었으니 우리돈으로 치자면 1만 천원정도였습니다. 호텔을 구해두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서 마을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카운터의 아가씨에게 간단한 지도 두장을 구했습니다.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유스호스텔이 있다기에, 그리고 중국유학생이 싼값에 묵어보았다며 추천해준 대자연유스호스텔이 부근에 있다가에 구경이라도 한번 해볼까 싶어서 제일 먼저 거기부터 가보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금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고금로가 여산 꼭대기 마을의 중심가인듯 합니다. 도로는 꽤나 넓었고 양쪽으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습니다.

 

 

작은 길마다 이름이 다 붙어있어서 길찾기가 쉬웠습니다.

 

 

부근에는 시장도 있었습니다. 가파른 언덕에다가 교묘하게 집을 짓고 여러가지 편의 시설을 만들어둔 것입니다.

 

 

계곡을 따라가며 가게들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이 산중 마을에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여산꼭대기의 꾸링마을은 서양인 선교사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든 마을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초등학교까지 있었던 것이죠.

 

 

여기에 사는 아이들은 자기들이 별천지에 산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요?

 

 

중국 곳곳을 다녀보았지만 여기같은 마을은 처음 만나보았습니다.

 

 

복건성 하문에 있는 섬마을 고랑서도 서양풍의 마을로서 이국적이고 신기하긴 했지만 거기는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아주 쉽고 편리한 섬이었습니다.

 

 

여기는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이 다릅니다. 더구나 중국 대륙 한가운데 있는 높은 고산인데다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명산 꼭대기부근에 자리잡았으니 더더욱 신기한 동네임에 틀림없습니다.

 

 

광장이나 마을길 모두를 거의 돌로 포장해두었습니다.

 

 

이런 정도로 꾸미려면 엄청난 자재를 산밑에서부터 운반해왔다는 말이 되는데요......

 

 

우리나라에도 서양인 선교사들이 지리산 어디에 피서를 목적으로 한 마을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던가요?

 

 

가만히 살펴보니 마을 전체가 숙박시설같았습니다.

 

 

피서철인 여름에는 워낙많은 인파들이 몰려들기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꾸링마을에서 잠자리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숙박시설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뛴다고 합니다.

 

 

그런 엄청난 곳에 온 우리들은 비수기이기에 거의 공짜로 묵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겁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여산은 중국 공산당 역사에도 엄청난 기여를 했던 곳이더군요.

 

 

우리는 호북로를 따라 가며 길 양쪽으로 늘어선 집들을 구경했습니다.

 

 

번듯한 건물들 가운데 지붕을 함석으로 이은 집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어떤 건물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너무 낡아버린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듯 했습니다.

 

 

집집마다 돼지고기를 매달아 건조시키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숲이 우거진 고지대여서 그런지 매연이 적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이 골짜기에 저수지가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우리는 저 반대편 골짜기에서 걸어온 것입니다.

 

 

버려진 집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우리들은 대자연 유스호스텔 건물을 찾아냈습니다.

 

 

청년여사라는 말이 들어간 건물이 바로 유스호스텔인 것이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겨울철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돌아나왔습니다. 우리가 묵는 호텔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아서 말이죠.

 

 

여산꼭대기 마을을 순회하는 버스노선도가 길가에 세워져있길래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11월부터 6월까지가 비수기라고 써두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고금로쪽으로 걸어나왔습니다.

 

 

마을 전체를 머리속에 입력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렸던 버스정류장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도로 양쪽가로는 아름다운 집들이 이어져있었습니다.

 

 

이 산중에 경찰서도 있습니다.

 

 

깔끔하게 차린 레스토랑들도 많았습니다.

 

 

상가건물들도 아주 반듯했습니다.

 

 

이 정도면 유럽의 시골마을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곳은 비지니스호텔인듯 합니다.

 

 

버스종점 맞은편은 제법 너른 광장이었습니다.

 

 

끝머리에 서서 보면 마을 전체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나는 끝머리를 향해 슬슬 다가가 보았습니다.

 

 

이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요? 그게 궁금하시지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곳은 위쪽은 공원이지만 아래는 주차장으로 되어 있더군요. 산비탈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만들어놓은 멋진 곳입니다.

 

 

버스 종점쪽의 모습입니다.

 

 

자, 이제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하면 됩니다.

 

 

서쪽으로 해가 슬슬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골짜기 모습은 다음 글에서 소개해드려야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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