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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중국 3대 누각이라는 등왕각에 올랐습니다 1

by 깜쌤 2015. 3. 30.

등왕각부근에 오자 거리 모습조차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줄근하고 꾀죄죄하던 거리가 조금은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던 것이죠. 강변에 있는 대형호텔의 주차요원에게 등왕각의 위치를 묻자 그는 친절하게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아가씨가 입은 옷이 특이했었습니다.

 

 

"웅주무열"이라는 현판이 붙은 곳!  여기가 바로 등왕각의 입구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여기를 못찾아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곳으로 들어갈뻔 했습니다.  

 

 

입장료는 거금 50원이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치자면 9,000원이라는 말이 됩니다. 과연 그만한 값어치를 할지 그게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에도 엉터리 한글 안내판이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너른 공간이 등장했습니다. 중국의 관광명소들은 하나같이 거대합니다.

 

 

A자가 4개가 붙은 관광지이니 제법 등급이 높은 편입니다. A자가 5개 붙은 곳이면 최고급 관광지라는 말이 됩니다. 5A급 관광지는 그리 흔한게 아니었습니다.

 

 

정면에 등왕각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등왕각 앞 마당은 모두 돌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알고보면 남창에도 제법 준수한 관광지가 수두룩합니다만 우리에게는 그런 소소한 장소까지 다 돌아볼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남창까지 찾아온 이유는 등왕각이라는 건물과 남창봉기현장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주변은 모두 고층건물로 둘러싸여 있더군요.

 

 

중국을 대표하는 3개의 누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지요?

 

 

강서성 남창등왕각과 호북성(湖北省) 무한(武汉)의 황학루(黃鶴樓)와 호남성(湖南省) 악양(岳阳)의 악양루(岳阳樓)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3대 누각중의 하나라는 등왕각에 와있는 것이니 어찌보면 어마무시한 현장에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누각앞을 지키는 사자의 모습이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의 조형물 제작 솜씨도 상당한 경지에 이른듯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톱을 쓰다듬었는지 반질반질했습니다.

 

 

이 녀석은 또 뭐라고 부르는 동물인지 궁금합니다.

 

 

기단에는 굉장한 길이의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마 왕발이라는 시인묵객이 써서 그렇게 유명해졌다는 등왕각서라는 글일 것입니다.

 

 

내가 지닌 한자실력이 너무 부족하니 읽어보지도 못하고 계단을 올랐습니다.

 

 

어찌되었거나 간에 시인 왕발과 등왕각서라는 이름만은 기억해둡시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반드시 꺼내야 되니까요.

 

 

별별 녀석들이 다 등장해서 등왕각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거북과 용을 합친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 괴수의 뒷모습에서는 엄청난 기가 느껴집니다.

 

 

다시 계단 한가운데는 코끼리가 등장했습니다.

 

 

무섭다고 생각되는 녀석들이 총동원된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조형물들도 세월이 흐르면 문화재가 되겠지요.

 

 

현판의 초서는 무슨 글자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제 실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죠.

 

 

향로뒤에 보이는 글씨는 등왕각입니다.

 

 

높은 곳에 오르니 아래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주위를 둘러싼 고층건물들이 등왕각의 분위기를 깨뜨립니다.

 

 

이 조각을 이해하려면 등왕각서라는 명문을 남긴 왕발에 읽힌 사연을 알아야합니다.  라는 분이 만든 대작 부조입니다.

 

 

 

제목은 시래풍송등왕각입니다. 규격이 사진속에 드러나 있으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등왕각은 당나라를 건국한 당고조 이연(李淵)의 막내아들 이원영(元嬰)이 홍주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남창현(南昌縣)에 만든 전각(殿閣)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자사라면 오늘날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고위관직이지만 당시에 이원영은 등왕이라는 자리에 봉해져 있기도 했었습니다. 왕자의 신분으로 황제보다는 낮은 왕이라는 자리에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홍주는 오늘날의 남창을 의미합니다.

 

 

 

드디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엄청나게 화려한 보좌가 나타납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등왕이 만든 전각이니 등왕각이 되는 것이죠.

 

 

 

왕발이 교지라는 곳으로 좌천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꿈속에서 노인이 나타나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내일 등왕각 낙성식이 있으니 꼭 그자리에 참석해서 글을 지어라

문제는 왕발이 머물고 있는 곳이 남창에서 7백리나 떨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홍주까지는 7백 리인데  어떻게 하룻밤만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랬더니 노인은 자기가 때맞추어 바람을 불어주겠다고 하더랍니다. 

 

 

 

노인의 도움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순풍을 만난 배는 하룻밤만에 칠백리를 달렸고 왕발은 시간맞추어 등왕각에 이르러 등왕각서라는 명문(名文)을 지어 문명(文名)을 날린 것입니다. 서기 675년의 일로 전해집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1983년에 복원을 시작해서 1985년에 완공했다고 전해집니다. 위치도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옮겨졌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유명하다는 구절이 엄청 전해집니다만 저가 처음부터 몰랐던 것이니 여기다가 아는척하고 옮길 필요는 없을 것같습니다. 다음 글에 계속하겠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