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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귤주에서 귤을 찾았지만......

by 깜쌤 2015. 3. 26.

 

귤주의 허리를 가로질러 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강 밑바닥으로는 지하철이 통과하고 있으니 참 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섬 이름이 귤주이니 귤나무가 자라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가 갔을때 귤이 달린 나무를 직접보지는 못했으니 들은것처럼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귤주는 섬은 섬이로되 민물 강속에 뜬 섬입니다. 섬치고는 길이도 엄청 길어서 5킬로미터쯤 된다고 하니 장사의 명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길래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그들을 위한 전동차까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걸어서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겨울철인데다가 보슬비가 슬슬 뿌리고 있으니 날씨가 춥게 느껴집니다만 그래도 여기가 남쪽지방이니 그런대로 견딜만 했습니다.

 

 

1월인데도 동백이 빨갛게 피어있었습니다.

 

 

섬 양쪽으로는 강물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장사시내를 흐르는 이 강의 이름은 상강입니다.

 

 

겨울이지만 수양버들도 휘늘어졌으니 운치가 제법입니다.

 

 

섬속에 이리저리 나있는 도로들은 모두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상강 물위로 화물선이 이동해가고 있었습니다. 상강물은 양자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상강속에 항공모함처럼 떠있는 이 섬이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모택동때문입니다. 모택동은 젊었던 날 장사에서 공부를 했고 한때는 장사의 사범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귤주에 와서 한번씩은 수영도 즐기고 사색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시가지쪽 강안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합니다. 섬에서 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이유는 다 따로 있는 법입니다.

 

 

고층아파트들의 벽면이 밤에는 거대한 광고판으로 변하더군요. 어제 저녁에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놀이시설도 있더군요.

 

 

가족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표를 사서 들어가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그런 시설을 외면하고 걸었습니다.

 

 

강변 정자에 잠시 쉬면서 양쪽을 살폈습니다.

 

 

섬속에는 아기자기한 시설들이 많았습니다.

 

 

커피가게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몸을 데울 수 있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가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귤주에는 푸른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바깥에서 보면 커다란 숲처럼 보인다는 식으로 표현하는가 봅니다.

 

 

누가봐도 공을 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합니다.

 

 

맑은 봄날, 햇살이 가득할때 찾아가서 보면 느낌이 또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살아온 인생길의 애환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여행하게 된 분은 교회에서 평소에 알고지냈던 분입니다.

 

 

인성이 좋고 품성이 훌륭한데다가 남에게 존경을 받는 그런 분이니 쉽게 말이 통했습니다.

 

 

어찌보면 여기가 유럽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깔끔하게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정갈함이 좋습니다. 벤치 양쪽끝의 조각이 귀엽기만 합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앓이를 하게됩니다. 내가 사는 경주와 비교해보면 여기가 훨씬 더 깨끗합니다. 나는 이제 우리의 시민의식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몰라도 경주에서는 많은 실망감만 가득 느꼈습니다. 

 

 

사람사는 곳을 더럽게 하고 지저분하게 만들고 여기저기 꽁초를 던지고 침을 뱉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이 아직도 그렇다고 여기면 이제는 곤란합니다.

 

 

고급스런 시민의식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이제는 천민의식만 남은듯 합니다.

 

 

여기만해도 작은 쓰레기하나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방이 정갈하니 살맛이 납니다. 문제는 공기가 너무 더럽다는 것인데요......

 

 

바위에 새겨놓은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오길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글씨체로 보아 모택동의 필적입니다. 모택동은 <심원춘, 장사>라는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1925년의 일이라고 전해집니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모택동의 행적은 이제 전설이 된듯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를 닦은 이승만대통령을 깎아내리기에 정신이 없습니다만...... 

 

 

남을 깎아내려야만 자기 자신이 올라가는 듯한 착각을 하는 정치가들의 편가르기 짓거리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놀아나는 일부 우리 백성들이 불쌍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나도 그런 불쌍한 사람가운데 한명이겠지요.

 

 

그 큰섬을 대충 한바퀴 돌았더니 슬슬 다리가 아파옵니다.  

 

 

귤주공원의 아름다움은 그리 만만한게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여인들도 이젠 세련된 감각을 자랑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확실히 장강의 규모는 어마어마한가 봅니다. 장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인 상강에 이런 정도의 화물선이 뜰 정도니까요.

 

 

길을 따라 걷다가 나는 유럽풍의 건물을 만났습니다.

 

 

푸른 잔디와 붉은 벽돌집, 그리고 플라타너스 나무......

 

 

어찌 이런 풍경을 두고 중국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어느덧 우리는 다리밑에까지 와 있었습니다. 이제 돌아가기로 합니다.

 

 

다리에서 밑으로 바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았습니다.

 

 

다리 부근에 지하철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갔습니다. 저녁때가 되었길래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이 가는 분식집에 가서 아주 간단하게 볶음밥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6원이나 7원정도밖에 들지 않습니다. 우리 돈으로 1,300원 정도라는 말이됩니다. 밥이 너무 고슬고슬하고 푸석푸석해서 불면 날아갈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민항대주점에 가서 짐을 찾은 뒤 우리는 새로운 호텔을 찾아나섰습니다. 부근에서 우리가 새로 구한 호텔은 2인실이 169원이었습니다. 한사람당 75원이라는 것인데 대신 아침밥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좋았는데 나중에 옆방에 사람들이 들어오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말소리가 그대로 다 들리기 시작한 것이죠. 방음설비가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냉방기의 온도를 올려두고 잠을 청했습니다. 오늘도 길고 긴 하루였습니다. 이제 달랑 둘만 남은 우리 팀은 허전함을 달래며 애써 눈을 붙였습니다. 한분이 조기귀국해버려서 그런지 허전함이 가득 밀려왔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