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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백범 김구선생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by 깜쌤 2015. 3. 2.

 

악록산 공원입구부근까지 다시 나온 우리들은 백범김구선생의 유적을 찾기 위해 길을 올랐습니다.

 

 

악록서원의 안내판에는 앙운정 부근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 앙운정을 찾아야했지만 우리 눈앞에는 백학천이 나타나있었습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보면 녹산사와 백학천도 같이 나타나있어서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했더라면 이 부근에서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도로가에는 백학천이라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우물이죠.

 

 

중국인들은 우물 하나도 돌로 단장을 해두었습니다. 산동성에 있는 태산 꼭대기에 이르는 산길까지도 돌을 가지고 계단을 만들어두어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 중국인들이니 말로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길을 탐색했습니다.

 

 

결과는 더 헛갈렸던 것 뿐입니다. 산중에 워낙 많은 길이 나있고 군데군데 시설물들이 널렸으니 어디가 어디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돌로 포장된 산길로 들어섰다가 채악의 무덤을 만났습니다. 우리들은 최악을 상황을 맞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보고싶은 김구선생의 유적지는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간곳이 없고 엉뚱한 사람들의 무덤만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은근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채악'이라는 인물은 요즘 말로 하자면 육군사관학교 교장정도의 경력을 지녔던 인물입니다. 중국 근대사에서 한몫을 하는 분이죠.

 

 

우리는 소로로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스팔트나 돌로 포장된 길만 다니다가 포장도 안된 오솔길로 접어들었던 것이죠. 그래도 우리는 유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았더니 우리 처지가 목적지를 곁에 두고 이리저리 헤매는 몰골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에게 김구선생의 유적지를 물었더니 그는 글로 써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자기는 음식(죽)을 파는 사람이니 돈으로 보상을 해주면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행상을 하는 그의  입장에서 결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약간은 괘씸하면서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솔길을 통해 내려왔습니다. 분명히 이 부근 어디엔가 있을 것인데 찾을 수가 없으니 속이 탔습니다.

 

 

악록산에는 혁명열사들의 무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내려가려다가 부근에서 마침내 앙운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앙운정을 찾았으니 김구선생의 휴양지는 이부근에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자세히보니 여기는 녹산사 부근이었던 것입니다.

 

 

악록서원에서 보았던 안내판의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앙운정은 다른 말로 북벌열사정이라고도 한다네요.

 

 

앙운정에서 위쪽을 보면 위로 향하는단이 보입니다. 계단 왼쪽에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김구선생 휴양처 옛터라는 것인데요.....

 

 

계단 위에 자리잡은 건물인듯 합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갔더니 작은 집이 한채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제법 그럴듯한 집이지만 문이 잠겨있으니 어쩔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백범일지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해보아야했습니다. 김구선생은 1938년 5월 6일, 이운한의 총에 피격된 것으로 나오더군요. 범인 이운한은 조선혁명당원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김구는 병원에 옮겨졌는데 거의 죽은 것으로 판명이 되어 의사도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가 총상을 입은지 4시간이 지나도록 숨이 끊어지지 않아 비로소 치료에 들어갔다고 전합니다. 김구선생이 입원했던 병원은 상아의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계단 부근에 있는 안내판의 내용을 보면 상아의원이라는 이름도 등장하지만 백범일지에는 악록산에서 휴양을 했다는 부분은 없더군요. 오랫동안 휴양을 했다는 내용은 분명히 나옵니다만.... 백범 김구 선생이 장사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한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건물을 구경할 수 있을까 싶어 부근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았습니다만 안으로 들어가볼 길은 없었습니다.

 

 

결국 포기하고 앙운정 부근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중국측에서 세워둔 증거기록물이니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일이겠지만 연구자들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이든지 확실한 연구결과나 증거가 있어야 믿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우린 녹산사앞으로 나왔습니다. 앙운정이나 녹산사나 백학천은 모두 돌레돌레 모여 있습니다.

 

 

고녹산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이 절은 어찌보면 힌두교적인 냄새가 풍긴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불교가 힌두교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니 양자 사이에 전혀 연관성이 없다면 이상한 말이 됩니다.

 

 

입구부근을 잘 보면 호남불학원이라는 현판이 함께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교육기관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절인듯 합니다.

 

 

우리는 녹산사 앞을 지나 악록산공원의 정문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고녹산사부근에 앙운정이 있고 김구선생의 휴양처도 바로 부근에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백범선생의 유적지를 찾아 헤매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입구겸 출구를 통해 공원밖으로 나갔습니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30분이 넘어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공원입구 부근의 아파트를 슬쩍 둘러보고는 다시 큰길을 따라 모택동의 상()이 있는 곳을 향해 걸었습니다.

 

 

아침식사 시간에는 가볍게 죽을 먹었으니 국수나 밥을 먹어두어야 했습니다.

 

 

나는 우육면과 공기밥을 주문해서 먹고.....

 

 

일행 두분은 볶음밥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걸어나갔습니다.

 

 

큰길까지 내려간 우리들은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여()1번 버스를 타야합니다. 버스정류장이 깨끗해서 좋았습니다.

 

 

장사역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탈 생각이었습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시내에 있는 호남성박물관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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