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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중국 4대 명정 가운데 하나라는 애만정을 찾아갔습니다

by 깜쌤 2015. 2. 26.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정도쯤 내려왔으면 호남대학교 캠퍼스와 아주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대학캠퍼스가 바로 옆이고 밑에 있었던 것이죠.

 

 

 밖으로 나가버리면 다시 입장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되돌아섰습니다. 

 

 

이제부터 새로 구경한다는 입장에 서서 다시 훑어보기로 했습니다.

 

 

중요한 핵심지대는 다 훑었으니까 곁가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될것 같았습니다.

 

 

오른쪽 옆으로 보이는 쪽문으로 들어갔더니 공자의 상이 나타났습니다.  

 

 

공자가 가르침을 베푼 모습을 만들어두었습니다.

 

 

이름하여 <공자행교상>입니다.

 

 

예전부터 흘러오던 자료를 인용하여 대에 새겨넣은듯 합니다.

 

 

공자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맞은편은 공사중이었습니다.

 

 

절강성 무이산의 천유봉 부근에 있는 무이서원(=무이정사)과 비교하면 악록서원의 규모가 훨씬 광대합니다.

 

 

장사는 예로부터 초나라 땅이었습니다. 초의 우수한 인재들이 악록서원에서 많이 양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문간에 그런 내용을 담은 글씨가 주련으로 붙어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죠.

 

 

우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위로 올라가며 구경을 했습니다. 

 

 

서원내부 마당은 모두 돌로 바닥을 깔았습니다.

 

 

나라가 커서 그런지 물자가 풍부했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서원들은 마당에 맨흙이 그냥 드러나는데 말이죠.

 

 

시간이 없어서 임원안으로는 들어가보지 않았습니다.

 

 

강당을 지나서 다시 후문쪽에 있는 정원으로 갔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후문이 나올 것입니다.

 

 

지붕위의 치미들 모양이 독특합니다.

 

 

저 문을 나서면 후문앞 공간이 될 것입니다.

 

 

후문으로 나오면 곧 이어서 주차장입니다.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애만정이 될 것입니다. 

 

 

애만정! 중국의 4대명정이라고 소문난 곳입니다. 어떤 유래로 그렇게 뽑혔는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자세히 읽어보면 애만정의 유래가 적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많이 몰려서 그런지 이 부근에서는 와이파이에 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나는 이 근처에서 스마트폰으로 김구선생의 휴양처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악록서원 안내도에 등장하는 자료를 근거로 하여 악록산 어딘가에 숨어있는 건물을 찾아야하니 참으로 답답하게 생겼습니다. 

 

 

작은 골짜기 속에 보이는 저 정자가 애만정입니다. 별것 같지 않아보입니다만 중국 4대 명정(名亭) 가운데 하나라고 하니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명성이 자자한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 지식이 얕다는 것이지만요.

 

 

그림을 그리는 젊은이가 보였습니다. 제법 그럴듯 합니다.

 

 

나는 그의 곁에 붙어서서 미완성 작품을 슬며시 감상했습니다.

 

 

애만정 밑에는 작은 못이 있었습니다. 이 부근의 숲은 가을이면 멋진 단풍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애만정의 위치나 모양이 제법 그럴듯 합니다.

 

 

형식은 2층이되 2층이 아닌 그런 정자입니다.

 

 

청나라 건륭제 57년에 만들었다니 서기 1792년에 건축한 것이죠.

 

 

당나라때의 시인이었던 두목의 시구에서 애풍(愛楓)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홍엽(紅葉亭)이었다가 나중에는 한때 애풍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애만정이지만 말입니다. 밑에서 본 안내석에 그렇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참고로 그런 유래가 나온 두목의 시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停車坐愛楓, 霜於二月花 (정차좌애풍림만 상엽홍어이월화) 

 

 

 

현판에는 모택동의 필체로 애만정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 눈에도 모택동의 필체가 거의 눈에 익었습니다. 자주보게 되니 눈에 익어진 것이죠. 1952년에 중수할 때 모택동이 현판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애만정을 4대 명정에 넣어 사랑하는가 봅니다.

 

 

나는 정자 속에 들어가서 천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제법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김구선생요양처를 찾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검색해보았지만 애만정에서 똑바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악록산이 작은 봉우리 한개로 이루어진 산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록산 공원 입구로 다시 돌아나가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악록서원이 이번에는 왼쪽 밑으로 나타납니다. 김구선생휴양처를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난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