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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부자묘의 야경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by 깜쌤 2015. 2. 17.

강남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부와 특권의 상징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돌아다니는 이 곳이 바로 중국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에게도 강남은 예로부터 풍요와 문화의 아이콘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양자강 남쪽은 황화유역과는 다르게 기후도 온화하여 사람살기에 좋았을뿐만 아니라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소성은 예로부터 쌀과 물고기의 고장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가게의 역사는 일백년이 넘어가는가 봅니다.

 

 

진회하로 유람선이 한척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리위에서 아래로 지나가는 배를 살폈습니다. 

 

 

내가 서있는 다리위로 인력거가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인력거 뒤로 내 눈길을 따라보냈습니다. 멀리 강남공원이 보입니다.

 

 

저번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원(貢院)은 과거시험장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각 성의 중심도시에는 과거시험을 보는 공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자기의 운을 시험했을까요? 그나마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행운을 잡은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권력을 잡아 입신양명하는 수단으로는 과거를 보는게 빠르고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하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때 나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 가운데는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를 합격한 친구들이 너댓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들의 삶을 보며 나는 고시합격의 엄청난 위력을 절감했습니다. 젊었던 날 법학관련 학문을 공부해서 고시를 쳐보는 것이 작은 꿈이기도 했습니다만 어려웠던 가정형편때문에 모든 꿈을 다 접어야했습니다.

 

 

부자묘 거리를 빠져나오자 큰 도로가 나왔습니다. 진회하 건너편으로 비슷한 색깔들의 건물들이 도로양쪽으로 이어지기에 그쪽으로 발길을 옮겨보았습니다.

 

 

안내판을 보았더니 부자묘를 중심으로 꽤나 큰 구역이 옛거리로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리 부근에서 나는 유스호스텔을 발견했습니다. 국제청년여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경부자묘 유스호스텔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여행정보수집을 하는데 유스호스텔만한 곳이 있었던가 싶어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혹시 빈방이 있는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영어로 말이 통한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진회하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창가 바로 옆으로 배가 지나가는 곳이니 분위기는 말로 자세히 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 싶습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습니다. 한잔에 12원입니다. 가격부담은 없어서 좋았지만 뜨겁지가 않아서 약간은 실망했습니다. 그 동안의 경험을 대입하여 볼 때 중국인들은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커피 한잔에 얼었던 몸과 마음을 녹이는 것은 겨울 여행의 큰 즐거움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즐거움을 반쯤은 날려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한참동안 앉아쉬면서 피로를 풀었습니다.

 

 

한참동안 앉아 쉬다가 밖으로 나와보았더니 해가 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 같이 동행한 한분에게 해가 넘어가니 일몰사진을 놓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한분이 먼저 떠나고 난 뒤 나는 천천히 걸었습니다. 진회하 건너편 거리를 걷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경험입니다. 그쪽에도 많은 호텔들이 보였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묵을 수 있는 호텔에 관한 제한이 없다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이제는 중국정부에서 그런 제한은 풀어주어야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지면 기온도 함께 급강하할 것입니다.

 

 

어둠이 살짝 밀려들자 가게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남경에서는 우화석이니 우화대우화차니 하는 말들이 많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가 봅니다. 남경우화차는 명차로도 이름이 높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우화(雨花)는 어떤 스님의 행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만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확실히 잘 모르니 섣불리 이야기를 꺼낼 단계가 아닙니다.

 

 

멋진 다구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남경부근에는 정산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멋진 다구들이 많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가게마다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거리 자체가 낮보다는 훨씬 화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에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깔끔한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야경 구경하기에 바빠서 저녁먹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남경부자묘의 야경이 그리 유명하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뒤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자묘앞이 한눈에 환히 드러나는 지점에 이르자 나는 눈앞에 펼쳐진 멋진 장관에 순간적으로 할말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낮 풍광도 좋았지만 야경은 한수 위였습니다.

 

 

다리에도 조명이 들어오면서 낮과는 확연히 달라진 또다른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잔잔한 수면에 비친 야경이 만들어낸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부자묘앞에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것을 보면 야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일부러 숙소로 돌아가지 않은듯 했습니다.

 

 

물길 양쪽으로 조명이 켜진 진회하를 따라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흘러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물길 하나가 만들어내는 운치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사실을 내가 사는 도시의 위정자들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물길을 시내 안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안목은 아무나 가지는게 아닌듯 합니다.

 

 

수백년전, 천여년전부터 이런 안목을 터득한 사람들은 선구자라고 할만 합니다.

 

 

여의주를 두고 서로 다투는듯한 용모습이 대단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풍경은 있는대로 즐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부자묘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