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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역사는 항상 승리자의 것입니다 - 우화대 열사능원

by 깜쌤 2015. 2. 6.

 

우화대라는 곳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근대사에 밝아야합니다. 그래야 무슨 장소인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기념탑을 구경하기 위해 계단을 걸어올라갔습니다. 남경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낮은 야산위에 거대한 탑이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요?  이 언덕위에 우화대라는 곳이 만들어진 것에는 깊은 연유가 존재합니다.

 

 

만주족이 세웠던 나라가 완전히 멸망한 것은 1912년의 일입니다. 청나라의 뒤를 이어 대륙에 들어선 나라가 삼민주의를 부르짖은 손문(쑨원)이 이끌었던 국민당이 주도한 중화민국입니다. 어느 나라 역사든 하나의 체제가 무너지면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는 반동세력이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1912년 2월, 2천년간이나 대륙을 지배했던 절대주의 군주체제가 무너지고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체제가 들어섰습니다만 이런 흐름을 무시하고 구시대의 산물인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고 획책했던 인물이 바로 원세개(위안 스카이)라는 인물입니다. 손문은 원세개에게 중화민국 대총통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섭니다. 말이 양보이지 쉽게 말하면 세력투쟁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세개는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만 한바탕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의 어리석은 행위는 중국대륙에 거대한 돌풍을 몰고 옵니다. 중앙정부의 무능은 전국에서 군벌의 발호를 가져왔습니다. 재벌이라는 말을 우리가 다 알고있듯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무력집단을 우리는 군벌이라고 합니다.

 

  

국민당의 세력에 대항하여 중국대륙에서 새로 치고 올라온 세력이 바로 중국 공산당입니다. 1924년, 손문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쳐 군벌타도에 나서게 되는데 우리는 그렇게 힘을 합친 사건을 제1차 국공합작이라고 부릅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오른쪽을 살펴보았더니 공산당의 지도자였던 모택동의 유물을 전시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습니다.

 

 

1차 국공합작은 손문의 사후에 국민당을 장악한 장개석에 의하여 파탄납니다. 손문은 1925년에 죽습니다. 지금 우리가 돌아다니고 있는 남경을 수도로 삼고 쿠데타를 통해 중화민국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등장한 장개석은 본격적으로 공산당 탄압에 나서는 것이죠.

 

 

실권을 잡은 장개석은 공산당원이나 공산당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색출하여 처형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여기인 것이죠.

 

 

지금 우리가 서있는 우화대에서 수많은 공산당원들이 처형당했던 것입니다. 공산당원들은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반역자들이지만 공산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혁명열사들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1949년 공산당과의 세력투쟁에서 패배하고 대만으로 밀려난 국민당정부는 역사기록에서도 패배자로 남고 맙니다. 국민당이 물러가고 난 뒤 여기 우화대는 공산당에 의해 성역화되었습니다.

 

 

처형당한 이들을 기리는 탑이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저 앞에 혁명열사 기념관 건물이 보였습니다.

 

 

탑 앞에는 장명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불입니다.

 

 

한쪽에서는 비둘기를 기르는 사람이 비둘기를 가지고 기념촬영을 해주며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손에 든 저 아이는 여기서 처형당한 인물들을 한명이라도 알고 기억해줄 수 있을까요?

 

 

모택동 유물전시관 입장이 공짜라고 해서 들어갔다가 우리는 탑꼭대기에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탑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은 결공짜가 아닙니다.

 

 

나는 이런 것에서 중국인들의 놀라운 상술을 배웁니다. 레드카펫 좌우로 포인세티아가 곱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탑꼭대기에 올라갔더니 창문은 닫혀있고 사방은 흐릿했습니다.

 

 

괜히 올라왔다싶어 실망을 했는데 탑꼭대기의 좁은 공간에 자리잡고 있던 관리인 아주머니는 눈치도 빠르게 잽싸게 일어나서는 창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면서 바깥경치가 환하게 다가왔습니다.

 

 

탑밑을 포함하는 남경시내 남쪽 경관이 빠르게 밀려들었습니다.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쪽의 모습입니다. 짙은 숲속에 자리잡은 탑이 우화탑입니다.

 

 

경이라는 도시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까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곳의 모습입니다.

 

 

관리인 아주머니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손사래를 쳤습니다. 테이블에 있는 쌍안경으로 시내를 살피는 것은 무료입니다.

 

 

우리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이제는 우화대밖으로 나갈 차례입니다.

 

 

중국의 관광지를 다녀본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그들은 돌아나가는 길도 결코 단순하게 만들어놓지 않습니다.

 

 

교묘하게 구경거리를 들러가도록 길을 만들어둡니다.

 

 

너무 교묘해서 일반인들이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해둡니다.

 

 

우화정에 갔다가 뒤로 보이는 탑을 기억해냈습니다.

 

 

이 부근 어디엔가 올라가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우화탑으로 가는 길은 부근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탑에 올라가려고 했더니 입장료를 내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일을 보던 아가씨 한명이 나오더니 60세 이상이라면 입장료가 반액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더군요. 상술에서 우러나온 친절인지 진심에서 우러나온 친절인지 알 수 없지만 괜히 흐뭇했습니다.

 

 

우리는 정문으로 돌아나왔습니다.

 

 

입구 플래카드에 들어선 그림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다가가서 일부러 찍었습니다. 저런 곳에 가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낙 너른 곳이니 중국 어디엔가는 저런 풍경이 반드시 숨어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습니다.

 

 

우리는 다시 중화문역으로 갔습니다.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삼산가역으로 갈 생각입니다.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한군데를 보았으니 다음에는 삼산가에 가서 부자묘를 볼 생각입니다.

 

 

남경에서 부자묘를 못가보았다면 핵심을 빠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묘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부자묘의 야경은 워낙 환상적이어서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우리는 삼산가 지하철역 부근에서 금릉에서 유명하다는 육선면을 먹었습니다. 금릉은 남경의 옛 이름입니다. 육선면은 여섯가지 신선한 재료를 넣었다는 국수인데 소면을 넣어서 요리를 했더군요.

 

 

 

이제는 중국에도 단품만을 취급하는 깔끔한 음식점들이 제법 많이 생겼더군요.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부자묘로 갈 차례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할께요. 중국에서 국수를 먹으려면 10원에서 15원 정도만 주면 됩니다. 그러면 별부담없이 한끼를 떼울 수 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