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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아버지와 아들이 앞뒤로 누웠다

by 깜쌤 2014. 10. 14.

 

무열왕릉 정문 앞으로는 4번 국도가 지나간다. 도로 맞은편에는 규모가 큰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서쪽으로 두개의 무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약 4번 국도가 한가운데로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 지역은 무열왕릉을 포함한 서악 고분군과 같은 묶음에 속해서 유적지로 개방되었을 것이다. 주차장 남쪽 앞으로는 중앙선 철도가 지나간다.  

 

 

주차장 한켠에 서악동귀부가 보이고 귀부 뒤로 무덤이 있는 것이다. 누구의 무덤일 것 같은가? 귀부에 관해서는 앞글에서 이야기를 했으니 새로 반복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귀부를 보관한 비각앞에 서서 북쪽을 보면 선도산이 보인다. 9월 말에 내가 갔을땐 아직 배롱나무 꽃이 지지않고 있었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기와지붕 뒤 숲안에 무열왕릉이 숨어있다.

 

 

저기다. 무열왕릉이 있는 서악고분군 입구가 보인다. 입구뒤에 보이는 능이 무열왕릉인 것이다. 앞에 보이는 능이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 영면하고 있는 곳이다.  

 

 

태종 무열왈의 첫째아들은 누구일까?

 

 

아버지가 왕이었으니 아들도 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첫째 아들이 바로 신라왕조 30대 임금인 문무왕이다. 문무왕은 양북면 봉길리의 대왕암에 잠들어있다.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묘 부근에 서악리 귀부가 있다.

 

 

무열왕릉비 앞에 있던 귀부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일 수도 있겠다.

 

 

김인문의 묘와 무열왕릉 사이에 낀 무덤은 신라 하대의 정치가였던 김양의 묘다.

 

 

비석의 받침대로 거북을 택한 것에는 어떤 연유가 있을 것이다.

 

 

조각 수법이 상당히 정교하지 않은가?

 

 

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무덤과 산이 만들어내는 곡선미가 산뜻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앞쪽으로는 철길이, 뒤쪽으로는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니 편히 잠들기가 쉽지는 않을터이다.

 

 

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가 편한지 편치않은지 우리가 알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항상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사리를 판단한다.

 

 

그게 인간세상의 모순이다. 나는 심각한 모순 덩어리를 안은채로 발길을 돌렸다. 시내를 향하여.....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