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의 주인어른께는 참으로 죄송한 이야기지만 담장 모퉁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밖으로 나가는 길이 보였길래 그곳으로 빠져나가기로 했다.
탑부근을 정비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부근 언덕을 약간 파헤쳐놓은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한쪽 언덕비탈이 모조리 국화밭이었다. 노란 국화가 이제 제법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안동특산물인 국화차를 떠올렸다.
서당위치가 절묘하지 않은가?
담장바깥으로 나가서 본 서당의 모습이다.
나는 슬금슬금 걸어서 탑가까이로 걸어갔다.
삼층탑이다. 일본식으로 하면 삼중탑이 되리라.
소나무 사이로 옛무덤들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스님 한분이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무슨 허허로운 일이 있길래 머리깎고 중이 되었을까 싶었다.
이 탑의 정식 명칭은 경주 서악동 3층석탑이다.
스님과 눈인사를 나눈뒤 나는 홀로 벤치에 앉아 가져온 김밥을 꺼냈다.
스님은 나와 눈인사만 나눈뒤 산밑으로 내려갔고 나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에서 김밥으로 시장기를 속였다.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산 사람끼리 상가(喪家)에서 밥을 먹는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서당을 발밑에 남겨두고 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았다.
안내도는 건성으로 살피고 느낌으로 길을 잡았다.
원래는 사진속에서 보는 것처럼 고분군 옆으로 나있는 길을 택해야 등산로를 따라 쉽게 산에 오를 수 있지만 그 길은 내려올때 쓰기로 했다.
그렇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길은 한가지밖에 없다.
몇년전에 산불이 나서 폐허가 되어버린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는 길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능선으로 이어지는 왼쪽 길을 택했다. 이 고분들 위에 집이 한채 숨어있다. 그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바로 저집이다. 저 집앞에서 왼쪽을 보면 작은 길이 하나 숨어있다. 그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길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으므로 누구든지 쉽게 선도산에 오를 수 있다.
이 집 주인은 선도산이 자기 정원이라고 여기면 되겠다.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솔길로 들어섰더니 초가을을 장식하는 칡꽃이 벌써 많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맨살을 드러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갔더니 무덤이 나타났다.
무덤 부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악동네가 보인다. 그리 많이 올라온것 같지 않은데도 조망이 좋아졌다.
경주시가지 동쪽에 명활산이 있다면 서쪽은 선도산이 중심이다. 남쪽은 누가 뭐래도 남산이고 북쪽으로도 산이 막혀있어서 분지형식을 띄지만 사방으로 틈사이가 묘하게 터져있어서 완전한 분지는 아닌 것이다.
산에 올라가서 보면 경주시가지 주위의 평야가 제법 넓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동쪽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토함산이다.
울창했던 소나무숲이 화재로 인해 사라지고나서부터는 햇살을 가려줄 수 있는 큰나무가 없으니 쏟아지는 가을햇빛을 고스란히 안고 걸어야했다.
이마도 땀에 젖고 등은 아예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산불에 죽어버린 소나무 등걸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 더 오르자 이내 앞이 탁 터지며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도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꼭대기부근에는 절이 숨어있다. 숲이 사라지고나자 정상밑에 숨어있는 절이 쉽게 드러났다.
소나무는 산불에 아주 약하다. 불기가 조금만 스치고 지나가도 이내 죽어버린다. 수명대로 다 살지못하고 일찍 죽어버린 가녀린 나무줄기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이 산중에도 무덤을 써두었다.
어느 정도 올랐으니 이제 시가지 외곽의 서쪽 산줄기가 슬슬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를 굽어보면 더 멋지다.
구절초인지 산국인지 개미취인지조차 구별이 안되는 꽃들이 애절한 자태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자잘한 야생화들도 척박한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처절한 사투를 벌였으리라.
이 보라색 꽃은 무엇이던가? 어찌보면 잔대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그저 가물가물하기만하다. 늙는다는 것이 이런데서 서글픔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산이 예전처럼 복구되려면 또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게 아깝고 허무한 것이다.
나는 마침내 등산로부근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아까보다 훨씬 더 시야가 트였다.
등산로를 만났지만.....
편한 길을 놓아두고 다시 오솔길을 택해 걸었다.
등산로 주위에는 코스모스들이 따스한 햇살아래 졸고 있는듯 했다.
시가지의 상당부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자락 바로밑에 있는 충효동의 아파트군들도 형상을 나타내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보문호 일부분도 아스라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산과 토함산은 말할 것도 없다.
산은 이 재미로 오르는 것이다.
언양(울산광역시)쪽의 산봉우리들이 열병식에 나선 옛날 군인들마냥 머리를 조아리고 서있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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