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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무열왕릉 인근을 산책해보자

by 깜쌤 2014. 10. 13.

 

태종무열왕릉은 서악에 있다. 경주 시내에서 볼 경우 형산강 건너편 선도산 밑에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당신이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면 앞에 보이는 형산강너머 그 산밑에 있다는 뜻이 되므로 위치파악을 하기 쉬울 것이다.

 

 

걸어가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면 금방이고 시내버스를 탈 경우 건천방면으로 가는 버스는 거의 다 그 앞을 통과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건천방면 버스라고해도 충효동으로 거쳐가는 버스는 타면 안된다.

 

 

무열왕릉을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거북이 몸체에 조각을 이고 있는 조형물이 보일 터인데 꼭 보고 가야한다. 무열왕릉비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비의 몸체가 있었을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대신 귀부이수(螭首)부분이 남아있다. 이수(螭首)의 높이는 약 1.1미터라고 한다. 이()라는 것은 뿔이 없는 용을 말한다. 거북이를 한자로 구(혹은 귀)라고 하므로 거북이 몸체를 귀부(龜趺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열왕릉비의 귀부와 이수가 남아있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입구 바로 앞에 있으므로 꼭 보고 지나쳐야한다. 물론 돌아나올때 봐도 된다. 출입구를 안에서 본 모습이다. 이 사진에서는 왼쪽에 무열왕릉비가 살짝 보인다.

 

 

이수 중앙에는 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이 썼다고 전하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전서(篆書)로 양각되어 있단다. 내 눈이 너무 나빠서 그런지 나는 그 글자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수에는 여섯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단다.

 

 

아주 정교한 조각이어서 국보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겠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아주 흐릿한 무열왕릉비 사진 한장이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비를 보고 나오면 송림에 둘러싸여 제일 앞에서 맞이해주는 고분이 바로 무열왕릉이다.  

 

 

아는 분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신라임금들의 무덤 가운데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무덤은 태종 무열왕릉 하나 뿐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물론 비석에 남겨진 기록때문이다.

 

 

나머지 왕릉들은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와 역사서에 나오는 지명을 근거로 하여 판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신라 왕궁의 위치가 반월성이었으니 여기까지는 십리정도의 거리밖에 안되었을 것이다. 무열왕릉은 그리 먼곳에 자리잡은 무덤은 아닌 것이다.

 

 

나는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야외체험학습을 나온 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좋은 시절이다.

 

 

나는 아이들을 피해서 걸었다. 산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다른 무덤을 향해 슬슬 걸었던 것이다.

 

 

왜 무덤 주위에 자라는 소나무들은 왕릉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듯한 자세를 가지는지 모르겠다.

 

 

무열왕릉 뒤쪽으로 4기의 무덤이 더 있다.

 

 

왕릉 담장밖으로 선도산이 보였다.

 

 

아이들 소리로부터 멀어지자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담장밖에는 제법 깔끔한 주택이 몇채 숨어있다.

 

 

정원들도 손질을 잘 해두어서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게 다듬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끝까지 올라가보기가 괜히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분군 허리께를 가로질러서 건너편으로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잘 가꾸어둔 무덤은 놀이터나 마찬가지다.

 

 

무덤 부근에서 보면 보문쪽의 경치가 환하게 나타나보인다. 남산쪽도 잘 보인다.

 

 

앞쪽이 남산이다.

 

 

뒤는 선도산이고.....

 

 

이만하면 명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풍수지리설 같은 것은 절대로 믿지 않으니 그런 것을 따질 일도 없지만 어쨌거나간에 여기 이곳은 후손들이 모여와서 쉬기에도 멋진 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기가 동네아이들의 놀이터였으리라.

 

 

가을햇살이 따가웠지만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가는 구름속으로 한번씩은 해가 숨어주었기 때문이다.

 

 

배롱나무꽃이 그때까지 남아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멋진 장소다.

 

 

확실히 잔디밭에서 느끼는 공간의 탁트임은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출구쪽을 향해 걸었다.

 

 

오랫만에 와본 곳이다.

 

 

사진속 풍경이 약간 기울어져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씩은 뒤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솔숲에 자리잡은 무열왕릉이 다시 다가왔다.  

 

 

 나는 이런 글 속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으로 장광설을 뱉어내고 싶지는 않다.

 

 

 쓰레기같은 일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지역감정에 의해, 역사적인 인물들의 업적이 희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대는 지도자와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정치인들은 인간으로 여기고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길래 일부 인물들의 업적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식으로 소개하지 않는 것이다.

 

 

 지역감정에 입각한 역사교육은 더러운 것이다.

 

 

 역사기록과 역사평가와 역사교육은 공정해야 하건만 요즘 이나라에는 편향된 이념을 가진 자들이 외치는 것만 옳은 교육이 된듯한 느낌이 든다. 

 

 

 극성스럽게 설쳐대는 일부 위선적인 정치교육자들도 그래서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출구까지 다왔다.

 

 

 나는 다시 한번 더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