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유년시절의 추억은 소중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유년시절이란 출생에서부터 초등학교 졸업하기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싶다.
이곳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엄밀히 따지자면 고향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곳 산골짜기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알게되고 사귀었던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소중한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돌하나 바위하나하나마다 물길과 오솔길 곳곳마다 추억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지만 이젠 수몰예정지구가 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물속에 가라앉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두려는 것이다.
터널 위 산으로 낸 도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기차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찻길은 강을 따라가며 지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차역 부근의 공터와 철길과 강변은 나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장난감과 컴퓨터가 없던 시대였으니 사방에 펼쳐진 자연이 곧바로 시골 아이들의 놀이터였으며 삶의 터전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강에서 여뀌잎으로 물고기를 잡았고 강아지풀로 가재를 잡았으며 돌틈에 물 속 돌을 들어 숨어사는 징거미를 잡고 살았다. 여뀌는 모래톱에 지천으로 자라났다.
내성천을 따라 늘어선 왕버들 뿌리속에는 물고기들이 숨어 살았다. 갈겨니도 있었고 드물게 붕어도 있었으며 쉬리도 살았다.
강바닥에 깔린 모래밑에는 모래무지가 숨어살았다. 강바닥을 걷다가 모래무지를 밟는 일도 흔했다.
물새알을 찾기 위해 얼마나 쏘다녔던가? 긴다리물떼새는 그 가냘픈 다리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내달으며 자갈구덩이 속에 숨겨둔 새끼를 찾아가서 먹이를 먹였다.
회색날개를 지난 물새는 자기 새끼나 알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접근하면 어미인 자기가 다친 것처럼 위장해서 사람들이 어미를 쫒아오도록 유인했다. 그런 몸짓에 속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하찮은 미물 하나하나에게도 생존본능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어린 시절에 자연을 벗삼아 놀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을 잡은 것이었던가?
나의 스승이자 놀이터였던 이곳이 이제 천천히 제모습을 감추며 사라져가는 것이다.
이곳으로 향하는 그리움과 애착을 누가 이해해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나는 해마다 한두번씩은 꼭꼭 찾아가 기록을 남겨두는 행동을 반복해왔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댐공사를 통해 물속에 묻으려는 것이다.
나는 마침내 댐이 있는 위치까지 도착하고야 말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기에 댐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준공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 댐을 철거해야한다느니 말아야한다는 같은 민감하면서도 어리석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서 걷기로 했다.
이번에는 기차역에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댐옆으로 지나가는 길을 따라가면 친구가 살았던 동네가 나온다. 댐밑에는 세개의 마을이 존재한다.
놋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미림마을과 납닥고개마을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동네앞 강변의 생태계는 많은 변화를 겪어야했다.
놋점동네에 살았던 내 친구는 중학교 3학년때 정신병으로 죽었다고 들었다. 생각할수록 아쉬운 친구다. 미림마을에 살았던 또 다른 친구도 역시 정신병으로 심한 고생을 했다는데 지금은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미완의 호수를 둘러싼 일주도로는 아직도 공사중이다. 도로도 미완성인 것이다.
나는 다시 터널 위까지 되돌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터널 위 산길에 잠시앉아 배낭속에 넣어두었던 사과를 꺼내먹었다. 철도 보수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이 터널들을 하루에도 몇번씩 드나들며 일을 하셨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심하게 다치셨고 그것때문에 집안은 완전히 망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누님들은 모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해야했고 내인생조차도 그저 처참하게 오그라들고 말았던 것이다. 공부하는데는 제법 능력을 발휘했던 나도 타고난 재능을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삼류인생을 살다가 끝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나는 터널부근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철길쪽으로 내려갔다.
터널 입구로 가보았다.
터널 속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빼내는 도랑에는 가재들이 많이 살았었다.
레일을 걷어낸 터널은 그냥 단순하게 커다란 맞뚫린 구멍에 지나지 않았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위해 한약을 달여 그릇에 담아 이 터널속으로 들어섰던 어머니는 기차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게 넉달전인데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세운 기관사가 어머니의 사연을 듣고 운전실에 태워 목적지 부근에 내려주셨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되돌아나왔다. 덩굴식물 한줄기가 터널 위쪽 하늘에 매달려있었다.
나는 터널로부터 돌아나와 걸었다. 기차역을 향해서.....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레일이 말끔하게 걷혀져 있었다. 수십년 세월동안 레일위를 달렸던 기차들이 오가면서 흘려야했던 기름에 절어버린 자갈들도 이제는 깨끗하게 제거되어 있었다.
기름에 절어버린 자갈들을 그냥 남겨두고 물을 채우면 물 자체가 오염되어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게 될것이다. 환경문제에 이렇게 신경을 쓴다는 것은 정말 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기만 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은근히 댐이 원망스러워졌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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