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차역을 벗어났다. 이 구간의 철로토대는 모래였던 모양이다. 처음 중앙선 철길을 낼때에는 내성천에 모래가 얼마나 흔했으랴 싶다.
사진 속에 보이는 소나무는 원래 철길부근에 자라고 있었다. 소나무 밑둥을 보면 깎아낸 토대의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철길 밑으로 지나가던 도로에 섰다. 이 길로 시내버스가 다녔는데 철길이 사라자면서 높이가 비슷해져버렸다.
중앙선 철길이 개통되기 전부터 여기에 사셨던 어른이 보신다면 이곳 자연의 변화상을 훤하게 알 수 있지싶다. 한때는 강가를 막아 둑을 쌓고 기차가 지나가게 하더니 이번엔 그 철길을 걷어낸다는 식의 변화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이렇게 도로바닥에 서 볼 수 있는 날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것같다.
강변 도로에 자라는 마구 엉겨자라는 식물의 이파리를 보면 박같은데 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철길의 흙을 파내는 공사장을 드나드는 차들이 만들어내는 흙먼지를 잡기 위해 물을 뿌려대는 살수차가 물을 담고 있었다. 원래 여기는 논이었다. 지금 도로로 쓰는 길은 작은 밭들이 이어져 있었고....
철길 토대를 이루었던 흙을 가득 담은 트럭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금광마을로 가는 다리위에 섰다. 저 마을에 살았던 여학생 가운데 한명은 몇해전에 위암으로 죽었다고 했다.
물길 좌우편이 모조리 잡초로 덮혀있었다. 생태계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원래는 모두 모래밭이었었다. 햇살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모래천지였는데..... 저 먼산에는 송이와 싸리 버섯이 지천으로 자랐다. 초등학교시절, 동네 형들을 따라 버섯을 따러 갔던 기억이 새롭다.
이쪽 산허리로는 다리가 걸릴 모양이다. 어디로 연결하는 다리일지 그게 궁금해졌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내 놀이터였던 모래밭이 다 사라지고 이제는 모두 풀로 덮혀있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트럭들이 드나들며 한없이 모래를 퍼갔던 곳이다.
물이 흐르는 물길 옆으로만 모래가 아주 조금 남아있었다.
사람이 사라지고, 집이 사라지고, 기차역이 사라지고, 학교가 없어지고, 철길이 걷혀지고......
물에 잠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안동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안동호밑에 하회마을같은 마을이 여러군데 잠겼다더니 그게 무슨뜻인지 이제 알것 같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기도 하회마을처럼 내성천 맑은 물이 몇바퀴나 감아흘렀다. S자 모양으로 감아흐르는 곳이 연속되던 곳이다.
파란색 점으로 연결된 물흐름이 내성천의 최상류에 해당한다. 붉은색 점은 무섬마을을 나타낸다.
빨간색 선이 그어진 곳에 댐이 건설되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빨간색 점 밑에 보이는 강을 가로지른 다리위다. 그림 지도 속에 다리가 선명하게 나타나있지 않은가? 빨산색 점이 철거되고 있는 기차역의 위치를 나타낸다.
이런 식으로 강물의 흐름이 이어지던 곳이다. 위에 올린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하여 볼 수 있다.
이왕지사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완공후의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야겠다.
참 많은 시간들이 물처럼 흘러가버렸다.
나도 이렇게까지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내가 어렸을때만해도 예순까지 사는 것은 엄청 큰 복을 받은 것이라고 해서 환갑잔치를 하가면서까지 축하를 하고 그러지 않았던가?
이제는 돌아서야 한다.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마음만 아프다. 시계를 보니 안동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옹천행 버스가 올 시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옹천까지 가면 안동행 시내버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너머까지 서둘러가야했다.
발걸음을 빨리 했다.
내가 발걸음을 독촉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세월이 흐른듯 하다.
나는 고개길을 올라갔다.
정류소에 왔더니 옹천행 버스는 이미 가버린듯했다. 혹시나 싶어서 10여분을 기다렸지만 시내버스는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영주로 가기 위해 콜 택시를 불렀다. 영주까지는 만오천원이면 갈 수 있단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학교앞 강변에 잠시 가보았다.
거기도 엉망이었다. 그 아름답던 모래밭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예전에는 이랬었다. 아래에 올리는 몇장의 사진들은 2006년에 찍어둔 사진들이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곳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흉물이 되었다.
정들었던 고향을 떠날 수 없었던 이들은 높은 곳으로 옮겨간듯 하다.
이런 높은 지대로 옮겨갈 수 있었던 주민들은 그나마 나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왼쪽에 보이는 큰 나무가 있는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꿈이었던게 틀림없다.
천상병 시인의 말대로 나는 하늘에서 이 별로 소풍을 왔던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야한다.
지금은 영주로 돌아가지만 나중에는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택시를 타고 영주역으로 돌아왔다.
5시경에는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가 올 것이다.
나는 차창가에 앉았다. 앞에 보이는 작은 산자락 숲 너머 자리잡은 마을이 무섬마을이다.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물돌이동 마을이다. 이 부근에는 하회같은 마을이 서너개나 되었지만 그 중 하나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자연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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