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시간이 났다. 9월 20일 토요일에는 경주신문사와 경주제일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영어말하기 예선대회의 진행을 맡아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형편에 의해 예선 대회가 취소되어 하루라는 귀한 시간이 만들어지게된 것이다.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금성산에 갈까 싶어 경주역 매표구에 가서 기차표를 알아보았는데 좌석이 없단다. 나는 졸지에 시간을 죽여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자전거를 타고 왕복 32킬로미터 정도 의 거리에 있는 불국사나 다녀와야겠다 싶어서 7번 국도를 따라 슬금슬금 달리다가 잠시 짬을 내어 휴대전화의 문자를 확인했더니 중요한 연락이 와 있었다.
대구에 사는 친구 두명이 자전거로 출발할테니 영천 중앙시장에서 만나 밥이나 한그릇 먹자는 것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방향을 틀었다. 영천으로 가려면 방향을 반대로 잡아야했다. 벌써 40분가량 자전거를 탔는데 반대방향으로 달려야하니 난감했다.
경주시내로 들어가서 영천으로 향하자면 더 힘이 들것같아 최대한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찾아야했다. 평소에 항상 자전거로 나들이를 하는 처지이니 가장 짧게 시간이 소요되는 길을 찾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다. 아래지도를 보면 된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되어 뜬다. 확대된 지도를 보는게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나는 경주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옛날도로를 사용하기로 했다. 4차선으로 확장된 새길과 한번씩 겹치기는 하지만 옛도로로 달리는게 안전하기도 하고 편하다. 하지만 일부구간은 이면도로를 써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효현마을에서부터는 이면도로를 따라 갔다. 4번 국도보다는 이면도로가 훨씬 조용하고 안전하다. 이제는 확실히 가을냄새가 사방에 진하게 배여있었다,
벼들도 제법 고개를 숙였다. 익어간다는 말이리라.
영천까지는 세시간이면 갈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라이더라면 한두시간 이내로 주파하리라. 오르막 내리막이 크게 없는 길이니 라이딩하기엔 그저그만이다.
고속철도역에서 경주시내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를 건넜다. 그런 뒤에도 계속해서 나는 산밑으로 난 이면도로를 달렸다.
그렇게 해서 건천까지 달렸다. 농로를 달릴때는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한 50분 정도는 달렸다가 10분 정도 쉬는 정도로 슬슬 달려본다. 건천에서부터는 국도로 올라가야했다.
건천읍에서부터는 옛날 4번 국도를 따라 달렸다. 새로운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기고 나서는 확실히 교통량이 줄어들었다.
드디어 아화를 지났다. 오른쪽으로 농공단지가 보였다.
라이딩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나는 배낭을 매고 있어서 그런지 등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기차에서만 보던 풍경을 자전거를 타고가며 살피는 경치여서 그런지 한결 정감이 있었다.
무궁화호 열차가 옆으로 지나갔다.
새로 만든 도로가 옛도로와 함께 나란하게 같이 뻗어있다.
이 부근에 만불사라는 절이 있다. 5공화국의 실세였던 어떤 분의 소유라는 소문이 한동안 떠돌기도 했었는데 명확한 증거는 없다.
영천에는 골벌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삼국시대 초기의 일이다.
영천시가지와 신령, 고경같은 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부족국가가운데 하나였으리라.
임포까지 오자 이정표가 나타났다. 영천까지 12킬로미터 남았단다.
이제 한시간 못미쳐서 도착할 것이다. 급할 것이 없으니 천천히 가기로 했다.
사진을 찍느라고 잠시 멈추어서자 비쩍 마른 개 한마리가 도로를 횡단해서 나들이길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가면서도 녀석은 자기의 세력권임을 도처에 표시하고 있었다.
짐승들이 그럴진데 하물며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동안 자기 구역을 얼마나 챙기고 살았을까 싶기도 하다.
영천은 대구와 포항, 그리고 경주를 이어주는 중간에 자리잡은 곳이어서 그런지 수많은 도로들이 이리저리 교차해서 지나가는 지방이 되었다.
경산과 함께 포도를 생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군부대가 있어서 그런지 군사도시로서의 기능도 강한 편이다. 나는 4차선 도로로 올라섰다. 갓길이 확보되어 있어서 그런대로 달릴 수는 있지만 위험하다.
바쁘게 쌩쌩 내빼는 차량에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뼈도 못추릴게 뻔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옛날 도로로 내려설 수 있게 되었다.
작산마을이라.... 마을 앞을 지키는 노거수 한그루가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리저리 비틀어진 몸부림의 흔적이 어딘가 처절한 느낌을 주는 나무다.
나무 허리 가운데는 강아지풀같은 잡초가 묻어서 자라고 있었다.
조금 더 달리자 도로 가에 그럴듯한 기와집이 나타났다.
도로를 확장하면서 부지 일부가 편입된 것같은데 그 이후로는 별로 관리를 못한듯 하다.
괜히 내가 마음이 아파왔다.
사진을 찍기위해 도로 가장자리 인도에서 내려서자 마당 한켠에 묶여져 있던 개가 짖기 시작했다.
정원에는 배롱나무도 커다랗게 자라있었다.
아무리 봐도 멋진 집인데......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이런 멋진 한옥 바로 앞으로 도로가 지나가다니.....
나는 마침내 영천시가지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영천의 산하는 풍요로워보인다.
들이 넓어서 그런가보다.
골벌국(=골화국)이라는 부족국가가 터잡을만도 했다.
3사관학교를 나온 분이나 영천에서 군생활을 했던 분들은 영천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리라. 그 인상이 좋았던 싫었든간에 영천은 제법 풍요로운 동네임이 틀림없다.
영천 기차역에 도착하니 낮 12시 반이 되었다. 경주에서 3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사람들은 이제 반야월에서 출발했단다. 영천에는 오후 2시경에 도착할 예정이니 그리 알고 푹 쉬란다.
맥이 탁 풀렸다. 오후 3시에는 경주로 출발해야 할터인데 두시에 만나면 어쩌란 말인가싶다.
친구 좋다는게 무엇인가? 나는 군말없이 기다려주기로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 있으면 헛것이다 싶어서 영천중앙시장 구경이나마 미리 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내 천성이 가만있으면 좀이 쑤셔서 못견디는 사람이니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영천역 광장에 마련해둔 인공폭포와 실개울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인공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만들어내는 시원함 속에 따가운 가을 햇살속에 녹아든 작은 더위를 날려버리리라 다짐하며 시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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