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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부산 겉핥기 2

by 깜쌤 2014. 9. 12.

 

어쩌면 말이다, 부산은 금순이의 도시고 로테의 도시인지도 모른다. 금순이와 로테는 둘다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금순이는 6.25전쟁으로 유명해졌고 로테는 괴테에 의해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일본과 한국에서는 신격호라는 인물에 의해 더 유명해졌다.

 

 

38선 돌파와 북진으로 인한 통일을 눈앞에 두고있던 1951년 12월 하순, 느닷없는 중공군(=오늘날의 중국군)의 출현으로 인해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해야했는데 그 와중에 있었던 유명한 사건이 흥남철수작전이다.

 

 

북한에서 공산주의의 쓴맛을 톡톡히 경험했던 많은 북한 주민들은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할때 함께 남쪽으로 피난하기를 결심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흥남으로 몰려든 것이다.  

 

 

남으로 떠나는 군함이나 배를 간신히 얻어탄 사람들은 그나마 엄청난 행운을 잡은 사람들이었다. 피난민들은 만약 헤어질 경우에는 반드시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기를 약속했다고 전해진다.

 

 

부모와 형제, 자매와 남매 그리고 일가친척을 잃어버린 피난민들의 한이 맺혀 있는 다리가 부산과 영도를 이어주는 영도다리다. 그러길래 1950년대에 <굳세어라 금순아>같은 대중가요가 유행했던 것이리라.

 

 

       

               굳세어라 금순아

 

                                                   작사 작곡 / 박 시춘  

                                   현인 노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 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 달만 외로이떴다.

 

철의장막 모진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그렇게 금순이는 유명해졌고 피난민 여성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그 영도다리에 와있다.

 

 

영도다리가 준공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인 1934년의 일이라고 전한다. 육지쪽 다리 일부가 하늘로 들려올라있는 동안 배들이 통행가능하도록 했는데 그게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1960년까지만해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그게 자랑거리였고 구경거리였다.

 

 

그랬던 영도다리가 세월이 흐르면서 활용도가 떨어져 상판을 들고 내리는 움직임없이 고정되었다가 작년부터 다시 낮 12시가 되면 한차례씩 들려지게 된 것이다. 도개교였던 다리를 복원하면서 옛모습을 되찾았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영도다리 위로 전차가 다니기도 했다.

 

 

옛 영도다리와 새로만든 다리 부근에는 롯데백화점이 있다. 롯데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회사 이름이다. 이제는 롯데라는 이름의 유래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많을 것이라고 보는데...... 그렇더라도 사족을 달아보자.

 

 

롯데라는 회사를 만든 사람은 울산출신의 신격호씨다. 일본에서 재일교포가 설립한 회사가 롯데인 것이다. 신라면으로 유명한 농심회사는 신격호씨의 동생인 신춘호씨가 회장으로 있다. 두 형제간의 사이가 안좋은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그집안 이야기를 하려면 끝도 없이 이어져야 하니까 이쯤에서 접자. 그래도 한가지는 언급하고 가야겠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마시는 물 광고가 홍수를 이룬다. 백두산 이름이 들어가는 물싸움인데 이것도 신씨 형제가 벌이는 싸움판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 정도는 알아두자. 점입가경의 형태를 띄고 있으므로 귀추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괴테가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베르테르가 흠모하는 여인 샤를로테 부프가 등장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젊었던 날의 신격호씨가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데 나중에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때 샤를로테라는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회사이름을 롯데로 정했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영도다리 위로 올라갔다. 다리가 들리는 부분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와같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았던게 문제다.

 

 

 도개교 구실을 하는 영도다리를 보기 위해 빗방울이 뿌리는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조금전까지도 나는 저 무리들 속의 하나였다.

 

 

저쪽이 부산쪽이다. 나는 섬쪽에서 육지쪽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오른쪽 옆 건물이 롯데백화점이다.

 

 

신씨 형제들은 한국에서 대재벌이 되었다. 부산이든 서울이든 롯데가 없는 곳이 있던가? 일본에서도 롯데는 유명하다.  

 

 

저 건물은 호텔일까?

 

 

영도다리 인도에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었다.

 

 

차량통행이 재한된 틈을 타서 사람들이 차도를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도로 한가운데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오토바이도 서고 자전거도 섰다.

 

 

하늘로 솟구쳤던 다리가 서서히 내려왔다. 사람들은 출발준비를 했다. 차에서 내렸던 사람들도 부산하게 자기들이 타고온 차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상황정리가 되자 통행이 재개되었다.

 

 

그렇게 한바탕의 소동이 끝났다.

 

 

모든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리를 다 건너자 바닷가 경관이 살짝 달라진듯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면 영도의 태종대와 용두산 공원에는 거의 예외없이 들렀었다.  그게 언제적 이야기던가?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자갈치시장으로 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자갈치시장에 갔다면 누가 뭐래도 회를 먹어봐야한다. 부산까지 와서 회를 안먹고 가면 앙꼬없는 찐빵을 먹은 것과 같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이내 회가 나오기 시작했다. 푸짐해서 좋다.

 

 

곁다리로 딸려나오는 음식들까지 푸짐하면서도 다양하다.

 

 

이 정도까지 다 먹으려면 틀림없이 배가 부를 것이다.

 

 

오징어무침까지 나왔다.

 

 

네명이서 먹었던 상차림이다. 혼자 먹으려면 다 못먹을게 틀림없다.

 

 

회가 슬슬 떨어져갈때쯤이면 매운탕이 등장한다.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다음 목표는 국제시장과 용두산 공원일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