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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2 My Way

그녀가 노래하면 가슴이 뛴다 2

by 깜쌤 2014. 12. 25.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그 아이가 5학년때의 일이다. 운동장에서 아주 쾌활하게 뛰어노는 여자아이의 얼굴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얼어붙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전체적으로는 아주 예쁘고 또렷한 얼굴 윤곽을 가진 아이였는데 한쪽 눈썹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가 얼굴 반쪽을 덮을 정도의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었기에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때 나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딸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가 받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팬텀 오브 더 오페라>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가면쓴 얼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우리라.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남자아이 얼굴이라도 그 정도로 큰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의 고통이 너무 커서 밖으로 나다닐 엄두를 못내고 살 텐데 그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밝고 환환 표정으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명랑하게 놀고 있었기에 나는 얼굴을 자세히 기억해두고 살았다. 그 해가 가고 3월이 되었다. 한 해 동안 가르칠 6학년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이 되어서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얼굴을 확인하다가 나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작년에 운동장에서 만났던 그 여자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 이름은 민정이었다. 이름이 예뻤다. 내가 그 아이를 가르쳐보면서 놀란 것은 아이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타고난 천성이 밝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써 밝은척 했던 것이거나...  하지만 내가 가르쳐보고 나서 느낀 것은 태생적으로 명랑하고 쾌활한 아이였다는 것이다. 얼굴 상처가 그렇게 심했어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할것 다해가며 열심히 살았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아주 활동적이고 외향적이어서 2학기때는 전교회장단 선거에 출마하여 전교부회장으로 거뜬히 당선되어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그런 성격을 지닌 아이였던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발표를 하는지 그 아이 때문에 모든 수업이 항상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그녀는 음악시간을 참 좋아했다. 목소리가 아주 청아하고 매끄러워서 음악시간에서는 그 아이가 소프라노 파트를 부르고 내가 테너 파트 소리를 내어서 같이 노래를 부르면 반 아이들 모두가 감동을 받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민정이가 가진 재주를 보고 반해버렸다.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 놀라운 재주를 그대로 묻어버리면 너무 큰 손실이라고 생각해서 민정이에게 제안을 했다.

 

"민정아, 내가 보기에 너는 타고난 목소리를 가진 아이란다. 앞으로 노래를 부르면 성공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다니는 교회에 오지 않을래? 교회라고 하는 곳은 음악활동이 많은 곳이니까 너를 지도해줄 수 있는 분들을 소개해줄 수도 있고 네가 필요하다면 작은 도움이지만 줄 수 있는 곳이란다. 네가 가진 재주가 너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아이의 부모님은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들었지만 장래를 생각해서 진심으로 권해보았는데 그게 통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제법 열심히 활동하는 것 같더니 중학교 1학년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선생을 하면서 제일 크게 느끼는 슬픔이 그런 것이었다.

 

공부를 엄청 잘하는 아이가 극심한 가난으로 인한 가정형편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게 될 때는 나 자신부터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이다. 아무리 주머니 속의 송곳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법(낭중지추 囊中之錐)이라지만 돈이 없고 형편이 안되면 타고난 재주를 묵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경우를 어디 한두번 보고 살았던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때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그녀가 포항예고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내가 그녀를 못만났던 그동안 그 아이는 경주YWCA 소년소녀합창단원으로 활동을 하며 타고난 재주를 마음껏 발휘를 했던 모양이다.

 

워낙 실력이 좋았기에 그녀가 다녔중학교에서도 많은 격려를 하고 지원을 했던 모양이다. 음악을 하시는 선생님과 합창단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모양이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과 성실한 노력을 통해 이루어놓은 실력을 바탕으로 하여 포항예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면서 학비에 대한 부담도 덜게 되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그녀에게 들은 얼굴상처에 관한 사연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6학년 때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으로 조심조심해가면서 슬며시 물어보았는데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여섯살 정도였을 때 다른 가족과 함께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고 있던 봉고 승합차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져 얼굴을 갈았어요."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얼마나 마음과 몸이 아팠으랴? 그동안 몇 번의 수술을 했는데 한창 몸이 자라는 성장과정에 들어있어서 확실하게 성형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소년기 내내 그녀가 겪었을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컸었던가?  

 

 

그녀는 그런 어려움을 참아내며 꿋꿋이 노력을 해서 마침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에 수석입학을 하는 놀라운 쾌거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그동안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많은 분들이 그녀를 이끌어주었다고 들었다.

 

시내버스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레슨비와 수술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중앙의 유수한 분들에게 레슨을 받는다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할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하나로 이루어낸 결과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콩쿠르에 나갔는데 워낙 출중한 실력을 갖고 있었기에 여러 대학교에서 탐을 내었다고 들었다.  

 

 

경주와 포항지역사회에서는 이 아이때문에 난리 아닌 난리가 났다. 그녀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여자중학교, 그리고 포항예고의 명예도 명예였지만 그녀가 지닌 사연 자체가 감동적인 뉴스가 되어 지역사회에 널리 보도가 되었고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그녀를 초청하여 약 40분간의 대담시간을 가지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때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다. 하늘이 도왔던 것일까? 서울의 어떤 교회 목사님께서 그녀의 형편을 알고 4년 동안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들었다. 여러 사람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도 그녀는 아름답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교사자격을 취득하여 경기도 용인에서 음악교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돈을 모아 독일로 음악유학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올해 봄에 잠시 귀국을 했었다. 다시 한번 더 성형수술을 할 시기가 되어 어렸을때부터 치료를 해준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수술을 하고 두 달 동안의 휴식기를 가졌다. 얼굴근육이 새로 자리를 잡을 동안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잠시 중단하고 쉬어야 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쉬고 나서 그녀가 8월말에 출국을 하기 전에, 나는 그녀를 위해 작은 음악회를 한번 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음악회를 기획했다. 포스터를 인쇄해서 교회 내에 붙이고 함께 활동하는 남성합창단 단원들에게 광고를 하기도 했다.    

 

 

그녀와 함께 출연한 또 다른 한분은 부산대학교 음대 기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플루티스트였다. 실력이 출중한 분들의 수준은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공연이 끝난 뒤 그 두 사람은 엄청난 사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음악회를 끝내고 이틀 뒤에 그녀는 독일로 출국을 했다.

 

 

"선생님, 제가 독일에 있을 동안 한번 꼭 찾아주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그녀가 남긴 말이다.

 

2014년 올해가 가기전에 나는 그녀에 관한 글을 하나 써두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현재까지의 삶만 해도 인간승리감이지만 더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돌아와서는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독일이 있는 유럽에서 성악가로 성공하면 더없이 기쁘고 좋겠지만 그쪽 세상이 워낙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영역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과 성실한 태도를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리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