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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일본-오사카, 교토 외(完)

교토로 간다 3

by 깜쌤 2014. 9. 15.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라는 장수가 있었단다. 한자로 하자면 판상전촌마려(坂上田村麻呂)로 쓴다. 서기 758년에 태어나서 811년에 죽은 인물이니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자면 신라중말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직함은 세이이다이쇼군이다. 쇼군은 장군을 의미하는 말이고 대장군은 다이쇼군이다. 세이이(征夷)라고 했으니 오랑캐를 정벌했다는 말이겠지. 8,9세기에 일본에서 오랑캐라고 하면 오늘날의 혼슈 동북지방과 홋카이도에 살았던 사람들을 의미한다. 동북지방을 정벌하러 갔던 최초의 장수가 사카노우에노라는 말이다.

 

 

일본말로 오랑케를 에미시라고 한단다. 에미시 원정은 서기 788년부터 802년까지 15년동안 이루어졌다는데 부장군으로 몇번씩이나 출정한 이가 바로 다무라마로다. 두번째 출병을 마치고 돌아왔을때 그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세이이다이쇼군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무라마로가 에미시 정벌의 공을 세운뒤 교토 동쪽 언덕인 히가시야마(東山)에 세운 절이 바로 지금 우리가 들어가려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라는 말이다.

 

 

사카노우에노는 도래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도래인이라면 백제인이었거나 가야인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는 아마도 도래인 후손이 아닐까 싶다.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가 아내의 산후조리를 위해 몸에 좋다는 사슴을 잡으러 갔다가 마음이 동해 기요미즈데라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일종의 사하촌(寺下村)기요미즈자카를 지나 청수사에 올라갔던 것이다. 

 

 

기요미즈데라의 정문에 해당하는 건물이 비금 우리들이 통과한 인왕문(仁王門)이다. 일본인들은 니오몬정도로 발음한단다.

 

 

절임에도 불구하고 신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회마(=에마)를 볼 수 있다. 예전에 일본인들은 말(馬)을 잡아서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말이라는게 얼마나 귀하고 비싼 동물인가? 요즘은 말그림이 그려진 나무판에다가 글을 써서 복을 비빈다. 그런 것을 회마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소원을 적은 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일본인들의 전통신앙에 불교가 혼합되어 있으니 뭐가 뭔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런 모습은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나타난다.

 

 

복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세상에서 공통으로 가지는 희망이며 소원인가 보다. 복을 받고 싶다면 복받을 짓을 먼저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런 노력도 없이 복을 받으려고 한다.

 

 

니오몬(=인왕문) 부근에 삼중탑이 나타난다. 우리 한국인들이 삼층탑이라고 이름을 붙일때 일본인들은 삼중탑이니 오중탑이니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우리가 갔을때 삼중탑은 수리중이었다.

 

 

삼중탑이 있는 장소 부근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 교토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삼중탑 부근의 입구쪽으로 갈어갔다. 삼중탑 중에서 청수사에 있는 삼중탑의 높이가 일본 안에서 제일 높다고 전해진다.

 

 

청수사 입장권은 계절마다 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설경을 배경으로 담고 있었다.

 

 

겨울이어도 붉은 동백꽃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피고 일찍 지는 것 같다.

 

 

창수사 본당건물은 전체가 국보로 정해져 있다.

 

 

본당건물 중에서 바깥으로 돌출한 부분을 부타이라고 부른다. 부타이는 무대를 이르는 말이다. 공연할때 사용하는 무대 말이다.

 

 

본당 앞에는 쇠로된 쇠지팡이와 쇠게다짝이 있다. 게다는 알다시피 일본인들이 신는 간편한 신발을 의미한다. 일본 전통의 나막신정도로 보면 될거다.

 

 

부타이가 보였다. 저기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부타이를 지지하고 있는 재목들을 보라. 그게 일품인 것이다.

 

 

비스듬한 산비탈에다가 139개의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절을 만들어올렸다는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법 높다는 느낌이 드는데 거기에서 뛰어내리는 인간들이 가끔씩 있는 모양이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할때는 일절 쇠못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쇠막대기와 게다를 보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구경거리다.

 

 

어떤 이들은 상당히 경건한 모습으로 살펴보기도 한다.

 

 

부타이의 넓이는 상당해서 가로가 약 18 미터, 세로가 10 미터 정도나 된단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다다미를 깔 경우 100여장 정도는 쉽게 들어간다니 놀라운 크기인 것이다.

 

 

지난 가을에 떨어뜨리지 못한 단풍잎이 아직도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부타이밑의 나무기둥들이 만들어내는 구조가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부타이에서 아래를 살펴보면 산비탈 쪽으로 오토와노타키 샘에서 떨어지는 세개의 물줄기가 보인다.

 

 

기요미즈데라를 상징하는 것이 부타이와 저 샘물이다. 본당보다 더 유명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세개의 물줄기가 상징하는 복이 다 따로 있단다.

 

 

내가 처음 교토를 갔을때는 봄이었다. 신록이 파릇하게 돋아나는 계절에 부타이에 서서 교토시내를 내려다는 보는 경험은 일품이었다.

 

 

교토를 상징하는 절이니만큼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이때 내 눈에 확 띄는 상큼한 짝이 있었다. 신혼부부였을까? 

 

 

귀엽다. 신선했다.

 

 

무엇을 기원하는 것일까? 그들은 향을 피웠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부타이의 크기를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젊은이 한쌍에게로 향하는 내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법당에서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발길들이 어어지고 있었다.

 

 

무엇을 비는 것일까? 차가운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을때는 그만큼의 간절함이 묻어있을터였다.

 

 

부타이를 돌아서면 지주신사가 나온다.

 

 

저기다. 절과 신사가 함께 붙어있는 형국이다.

 

 

내가 눈길을 뗄 수 없었던 젊은이 한쌍도 지주신사쪽을 향하고 있었다.

 

 

좋은 인연이 맺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꼭 들어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인연이라는게 뭘까? 주로 결혼을 위한 짝을 구하는게 아닐까 싶은데......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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