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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기어이 마지막으로 출근해서 끝마무리를 했다

by 깜쌤 2014. 8. 25.

 

나는 지난 3월초부터 8월 24일까지 한학기만 가르치기로 계약을 맺고 기간제 교사로 근무를 했다. 내가 학교와 맺은 계약기간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 자정까지였다. 7월 24일, 방학을 하던날 직원모임을 가질때 선생님들께도 인사를 드렸고 아이들과는 일단 공식적인 작별인사를 해놓은 상태였다. 

 

 

계약만료 일주일을 앞두고 교실에 가보았다. 방학중에 창문 공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교실상태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학교공사는 방학중에 이루어진다. 올해 여름에는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낡은 구식 창틀과 창문, 출입문을 떼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끼우는 공사를 했다.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책걸상을 한곳에 모아두어야 했기에 교실에 가보니 모든 것이 헝클어져있었다. 교실내 비품들이 마구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방학하던날 아이들과 함께 비품들을 단정하게 교실 한복판에 모아두었다. 21일 목요일 오후 2시에는 복직을 하게될 원래 담임교사와 약속을 해서 교실에서 만나뵈었다. 올해 초에 이 학교로 전근을 온 젊은 여선생님이 원래 담임교사였기에 확실한 인수인계가 필요할 것 같아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안만나봐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도 없으며 내가 굳이 나서서 교실 정리를 안해두어도 흠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처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맡은 날까지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교실 관리를 해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23일 토요일에 아이들을 교실로 불렀다. 아이들이 모이는 카페가 따로 있으므로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아이들을 소집했던 것이다.

 

 

아침 8시 40분에 아이들을 만나 17분 동안 교실을 정리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물건도 다 정리할 수 있고 청소도 끝낼 수 있으며 책걸상을 원래자리로 되될려두는 것도 가능하다. 워낙 훈련이 잘된 아이들이어서 순식간에 정리를 완료했다.

 

 

그런 뒤 아이들에게 내가 25일부터는 다른 학교에 근무를 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아이들 표정을 보니 아쉬움 반, 시원함 반이 섞인것 같았다. 내가 워낙 아이들을 치밀하게(?) 다루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온갖 활동을 다 시키는 독하디 독한(?) 선생이다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은근히 내가 2학기에 출근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보면 누가 옳았는지 어떤 선생님이 훌륭한 분이었는지 저절로 알게 될것이므로 크게 개의치 않고 살았다. 육아휴직을 하여 그동안 학교를 쉬었던 젊은 여선생님이 새로 복직하여 교실에 들어가는 첫날 첫시간부터 수업이 가능하도록 교실을 청소하고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한두군데 미흡한 곳도 있지만 그건 새선생님이 알아서 처리할 부분이다. 아이들을 돌려보내고나서 나는 잠시 멍한 상태로 정신줄을 놓고 교실안에 서있었다. 방금 집에 돌려보낸 이 아이들은 서른번째(30번째)로 가르친 6학년 아이들이다. 37년동안의 정식 교직생활과 반년간의 기간제교사생활동안 6학년 아이들만은 서른번을 가르쳤는데 방금 헤어진 이 아이들이 서른번째였던 것이다.

 

 

기간제 교사신분으로 반년동안만 가르치고 헤어지게 되었으니 나로서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졸업까지 시켜서 내보냈으면 좋았으련만 형편이 여의치 못했으니 더 아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나처럼 나이든 선생은 이제 젊은 교사들에게 아낌없이 양보하고 물러서는게 옳은 일이다.

 

  

아직도 공사가 덜끝난 복도를 보며 잠시 서있으려니 그동안 흘러보낸 세월과 인생길의 험난했던 여파때문인지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나와 잠시동안 인연을 맺었던 아이들이 훨씬 더 좋은 선생님밑에서 행복하게 자유롭게 더 편안하게 열심히 공부하기를 빌며 말이다.

 

 

내 자전거 위에 챙겨둔 실내화를 다시 훑어보았다. 참 이녀석을 오래도 신고다녔다. 몇학교를 거치는 동안 신고다녔던 물건이니 정이 들대로 들었다.

 

 

나도 이제 이렇게 낡은 인간이 되었다. 세월이 이렇게도 많이 흐른만큼 이제는 물러서 주는게 도리다. 당분간은 푹 쉬면서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지난 며칠 내내 어떤 학교에서 꾸준히 전화가 걸려왔다. 4학년 아이들 영어과목을맡아달라는 부탁을 간곡하게 몇번씩 당부해왔으니 거절하면 욕을 먹을 처지가 되었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