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럽기만 하다 - 세월호 참사를 보며

by 깜쌤 2014. 4. 21.

 

선생으로 일생을 살면서 낯부끄러운 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는데 어찌 부끄러운 일이 없었으랴만 최근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보면 교사로서 -아니, 어른으로서- 너무 참담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싶은 심정이다.

 

학교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느낀 것인데 아이들이 커오르는 모습을 보면 너무도 대견스럽고 귀여워서 저 아이들이 바로 나라의 보배중의 보배로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하도 오랜 세월동안 같은 학년을 이어서 가르치다보니 아이들의 모습이나 행동, 혹은 반응을 보면 저 아이가 몇학년인지 어떤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는지는 대강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참변을 당한 아이들이 배를 타보았으면 얼마나 타보았으며 비행기를 타보았으면 얼마나 타보았으랴? 어른들과 선생을 믿고 배를 탔을터인데 긴급생황에서 어른들이 터무니없는 오판을 하여 수많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물 차오르는 배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며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처지를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원통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번 사고를 전하는 뉴스를 보는 순간순간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어른으로서 그리고 선생을 했던 사람으로서 아무런 도움조차 주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질책도 많이했다. 구출된 교감선생의 소식을 들으면서 저분은 평생 가슴에 대못이 박힌채로 살아가야할 터인데 그 무거운 짐을 어떻게 감당할것인가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단원고등학교 강민규 교감선생(52세)의 자살 소식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내가 교감이었어도 그 지경이었다면 죽음밖에 선택할 수가 없었으리라. 300여명의 꽃다운 제자들을 물이 차오르는 배속에 가두어놓고 살아나온들 앞으로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너무 아쉽고 원통한 일이다.

 

 

지금까지 전해진 소식을 보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조된 세월호의 조리장 최찬열(58세)씨의 증언(4월 19일자 중앙일보 42판기사)에 의하면 한명의 제자들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그들을 힘껏 밀어내놓고 탈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앉아있던  어떤 여선생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의 선생들은 틀림없이 한명의 제자들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며 아이들을 격려하고 다독였을 것이다. 침착하자고, 용기를 내자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겨내고 살아나가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의연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살아나온 선장의 처신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말을 잊을 지경이다. 물론 선장의 입장에서도 할말이 없을 수 없다. 텔레비전에 보도된 뉴스화면을 보았더니 "조류가 빠르고 물살이 센 곳이라 승객들에게 함부로 바다에 뛰어들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구조선이 오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나도 할말을 잊었다. 배에 구명보트는 왜 있단 말인가?

 

1912년 4월의 어느날 밤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처녀항해에 나섰다가 침몰하는 비극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타이타닉호의 비극'이다. 타이타닉호에는 승객과 승무원을 모두 합해서 2224명이 타고 있었는데 32%인 710명이 구조되었다고 전한다. 선장이었던 에드워드 존 스미스 배가 침몰하기 직전 바다에 뛰어든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한후 다시 배로 돌아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선원들에게 짧은 당부를 했다.

 

 

 

'Well boys, you've done your duty and done it well. I ask no more of you. I release you. You know the rule of the sea. It's every man for himself now, and God bless you."

 

제군들! 그대들은 임무를 잘 완수했다. 더 이상 요구할게 없다. 각기 살길을 찾아 하선하라. 제군들은 바다의 규칙을 잘 알것이다.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어떤 이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도 한다.

 

"Be British boys. Be British. 영국인답게 처신하라. 영국인답게......"

 

 

 

타이타닉호의 일등항해사 한사람은 안간힘을 다해 구명보트를 풀어서 내린후 자기 구명조끼조차 승객에게 양보한 후 배와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기관장이나 기관사들도 승객들을 탈출시킨후 모두들 배와 함께 수장됐다.  

 

월레스 하틀리의 일화도 한번쯤은 전해들었을 것이다. 타이타닉호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그는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7명의 악단원과 함께 끝까지 배에 남아 음악을 연주했다. 악단장이었던 하틀리와 악단원들의 의연함은 후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왜 세월호의 선장과 핵심간부들에게서는 그런 미담을 찾을 수 없었던가 말이다. 애꿎은 하급직원들만 목숨을 잃는다는게 말이 되는가?    

 

 

이래저래 가슴아픈 결말과 슬픈 사연들만 가득하다. 비록 지금은 기간제교사를 하는 신분이지만 나는 지난 며칠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사죄아닌 사죄를 하며 용서를 빌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젊디 젊은 청춘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나이먹은 사람으로서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열두서너살밖에 안되는 아이들이지만 선생이 그렇게 고개숙여 사죄를 하면 저희들이 도리어 미안해했다. 선생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어떻게 안고 살랴?

 

다시 오지 못할 먼곳으로 가버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내가슴 속에도 비가 내린다. 너무 슬픈 일이고 마음 아픈 일이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속에 묻는다'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저 많은 부모들의 심정을 내가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