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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목월생가를 찾았다가 절망하고 돌아왔다! - 1

by 깜쌤 2014. 8. 23.

건들장마의 여파로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마지막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목월생가를 찾아나섰다.

 

 

경주를 대표하는 문인이라면 누가 뭐래도 김동리박목월이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잠깐! 혹시 김범부라는 분의 성함을 들어보았는가? 이분을 안다면 문학적인 지식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분임이 틀림없다. 그는 김동리선생의 큰형이다. 

 

 

김범부선생도 제법 유명한 분이니 경주를 대표하는 문인 형제라면 아무래도 김범부 선생 형제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시인 최하림선생이 지은 책 <시인을 찾아서>(프레스21. 1999년)의 77쪽을 보면 '꽃잎처럼 떨어진 신라 김범부'라는 소제목 아래 김범부 선생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김범부 선생의 이야기는 나중에 새로 하기로 하자.

 

 

김동리선생의 생가는 경주 읍성밖에 있었다. 읍성밖이라고 해도 지금은 경주시 중심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길은 경주 외곽지 농로다. 나는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농로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박목월 선생은 경주시가지에서 한 이십여리 떨어진 모량이라는 시골에서 자랐다. 동리 선생이 경주읍성밖 사람이라면 목월선생은 모량 시골동네 사람인 것이다. 나는 지금 경주 시가지를 벗어나 모량 촌동네를 찾아가는 길이다.

 

 

모량은 앞에 보이는 저 산자락 끝머리를 더 지나서 터잡고 있는 동네다. 선생이 태어난 동네에서 중앙선 모량역을 보면 보이겠지만 지금은 폐역이 되어 무궁화호 열차도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볕아래에서 땀을 빠작빠작 흘리며 달린 보람이 있어서 마침내 신경주고속철도역에서 경주 시내로 연결되는 큰 도로까지 왔다. 땀이 마구 쏟아졌다. 온몸이 땀으로 다 젖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 머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경주 남산이다. 그러니 나는 저끝에서부터 달려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갈증이 심했다. 산기슭을 보니 산딸기가 익어가는게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몇개를 땄다.

 

 

입에 탁 털어넣고 오물거리자 금새 어금니뒤쪽 턱부근이 아파왔다. 입을 다물고 한시간쯤 달리고 난 뒤에 갑자기 음식이 들어간 후유증인지도 모른다.

 

 

나는 모량천에 걸린 다리위에서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머뭇거렸다. 모량의 목월 생가로 바로 들어갈 것인지 이만큼 자전거를 타고 온 김에 건천까지 내달려볼 것인지를 결정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는 오봉산을 떠올렸다. 그래, 여기까지 온 김에 오봉산을 한번 오르고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고생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오봉산은 건천에 있는 산이다. 김유신장군의 설화가 얽혀있는 단석산 건너 옆에 있는 산이라고 여기면 된다.

 

 

고속도로 진입로를 지나 오봉산 진입로를 찾아갔는데 길이 비포장이라는 사실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산악용이 아닌 도로용이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악을 다해가며 땡볕에서 타고갈 것인지를 결정해야했다.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오늘 못 오를 일이라면 다음에 오르면 된다. 지금 이 불볕 더위아래 개고생을 할 일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봉산 산자락 아래나 한바퀴 돌아 다시 모량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산아래 마을이 어찌 이리 정갈한지 모르겠다. 마을의 위치나 환경은 다 좋은데 멀리 동네 앞을 지나가는 고속국도에서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들의 엔진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는 것이 약점이었다.

 

 

이런 마을은 한번 살아봐도 되겠다. 봇도랑을 살폈더니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돌고는 다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국도쪽으로 따라갔다.

 

 

건천운동장이 나타났다. 이 부근까지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 위해 한번 찾아온 기억이 있다.

 

 

요즘은 어지간한 동네마다 운동장 정도는 다 갖추어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복지 시설이 잘 된 나라도 드물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읍민체육대회정도는 거뜬히 치룰 수 있는 운동장이었다.

 

 

나는 운동장 한모퉁이다가 자전거를 세웠다. 잠시 쉬어서 갈 생각이었다.

 

 

건천이라고 할때 건자는 마를 건자를 쓴다. 내(=개울)가 말랐다는 말은 예로부터 이 고장은 물이 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평소에도 물이 귀한듯 하긴 하지만 고통을 받고 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산이 오봉산이다. 사진 속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오봉산의 좌측이 단석산인 것이다. 오봉산을 오른 이야기는 여근곡에 관한 글을 쓸 때 간단하게 소개할 생각이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모량으로 향하는데 기어이 하늘이 흐려지면서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마구 따루기 시작했다. 나는 허겁지겁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바로 인근에 기와집이 있었다. 나는 일단 처마밑으로 몸을 피했다. 얼마만에 내리는 비인지 모른다.

 

 

아스팔트를 때리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입맞춤을 하고 싶을 정도로 귀한 비다. 그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8월 장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줄기차면서도 겁나게 많이 내리긴 했지만 그날 그 당시에는 어쨌든 반가웠다.

 

 

한 십여분을 줄기차게 따루더니 비가 그쳤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끌고나와 안장에 올랐다. 이제 모량을 향해 달릴 차례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