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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어머니와 학교

by 깜쌤 2014. 7. 3.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며칠전 어쩌다가 잠시 틈이 생겼다. 나는 답답해진 속을 풀어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울산쪽으로 달렸다. 경주-용장-봉계-두동까지 가보기로 했다. 원래는 울산 천전리 각석계곡까지 가려고 했지만 병원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싶어서 두동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봉계는 행정구역상으로 울산광역시가 된다. 울산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도로주변의 풍경 자체가 경주보다는 한결 정비가 잘 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봉계불고기 단지 입구부근의 풍경이다. 봉계와 언양은 소불고기를 잘하는 것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봉계 불고기단지의 성공을 보고 경주에도 화산불고기 단지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시들해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봉계의 명성은 아직도 쟁쟁하다.

 

 

불고기를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불고기단지는 자전거를 타고 그냥 지나쳐야 했다.

 

 

봉계를 지나 경주-언양간 4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가 매연과 소음에 질려 이내 포기를 하고 말았다. 대신 언양으로 가는 작은 지방도로를 찾아 달리기로 했다. 왕복2차선 도로지만 주변 경치가 훨씬 정감이 가고 사이클링을 할만한 기분이 드는 도로다.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나타나는 길이지만 달릴만 했다. 주변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병원 침대에 누워계시는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두동면사무소 못미쳐 나타나는 정감어린 마을 입구에서 자전거를 내려 잠시 쉬었다. 저런 포근한 마을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군위의 어떤 면사무소 부근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가면 나타나는 산골짜기에서 태어나셨다. 

 

 

자전거를 끌고 작은 고개를 넘은 뒤 내리막길을 달렸다. 이내 두동면사무소가 있는 면소재지 마을이나타났다.

 

 

두동면사무소 건물도 리모델링을 한듯하다. 2년전에 여길 왔을때 공사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월 중순의 풍경이다. 모내기를 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아직도 벼들의 키가 낮춤했다. 

 

 

면사무소로 가보았다. 앞쪽에 멋진 쉼터가 있기 때문이다. 사무소 건물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확실히 세련된 느낌이 든다.

 

 

면사무소 부근의 도로도 정비가 되어서 깔끔한 분위기로 변했다.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면사무소와 마주한 두동초등학교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012년 8월에 촬영한 학교모습과 비교하면 환골탈태를 한듯한 느낌이 든다.

 

 

그때는 왼쪽에 체육관 건물이 있었다.

 

 

그랬던 학교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다시 살펴보았다.

 

 

학교를 소개하는 명패를 보면 이 학교 학부모님들 가운데는 베트남과 중국에서 건너온 분들이 제법 많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범 사업으로 학교를 새로 지은듯 하다.

 

 

운동장에는 잔디가 무성했다. 처음에는 인조잔디로 착각을 하고 이파리를 살짝 뜯어봐가며 확인을 했다.

 

 

이런 학교에서 한번 근무를 해보았어야 하는데......

 

 

열악한 환경을 지닌 학교에서 평생을 보낸 내가 괜히 서글퍼졌다.

 

 

나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유치원일듯 싶은 건물에서는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돌봄교실에 참가한 아이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외관이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문득 우리 어머니께서도 이런 학교를 다니면서 멋진 교육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중반에 태어나신 어머니는 초등교육도 잘 받지 못하셨다고 들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시골에서 입하나 덜어보겠다고 대구 시내의 어떤 집에 식모로 잠시 보내지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걸 마음아파 하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이틀을 꼬박 걸어 대구까지 가셔서 어린 딸을 다시 찾아 오셨다고 한다. 그 어린 딸이 바로 내 어머니셨다. 그런  경험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사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이런 예쁜 학교조차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이 인간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모습은 살면서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길래 나는 아이들에게 "오직 교육만이 살길이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병실을 너무 오래 비워둘 수가 없어서 나는 경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속도를 내어 신나게 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몇년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갈비뼈 3개를 부러뜨린 경험이 그런 욕망을 자제하도록 만들었다.

 

 

다시 봉계를 지나 경주로 향하다가 길가 불고기집 정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힘이 빠진데다가고 너무 지쳐버려서 배낭에서 초콜렛을 하나 꺼내 먹었다.

 

 

결국 어머니는 그로부터 며칠 뒤에 돌아가셨다. 6월 18일 수요일 오후 4시 51분경에 돌아가셨으니 이제 겨우 2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인생길을 가는 데에는 교육이 정말 소중한 법이다. 내가 이 정도라도 살게 된 것은 부모님께서 교육에 투자해주신 덕분이라는 것을 어찌 잊어버리겠는가 말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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