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건물은 샤워실이었다. 그들에게는 목욕실 정도였으리라.
목욕실 앞쪽에는 방부목으로 데크를 만들어두기도 했다. 현대화의 물결이 여기까지 밀려오는구나 싶었다. 이런 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면 곧 있다가 토루 자체가 헐려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전통과 역사가 사라지는 일은 한사코 없어야 한다.
입구부근에는 작은 찻집이 있었다. 찻집을 지키는 아줌마들은 친절했고 가벼운 미소를 띄며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어느 정도 주위를 살펴본 후 우리들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출입구 왼쪽에 모택동이지 싶은 인물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고개를 돌리자 아까 우리가 들어가보았던 진성루가 보였다.
연못을 자세히 바라보았더니 그제사 물위에 이파리를 띄운 수련이 보였다.
작은 텃밭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완두콩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확실히 여긴 남국이다. 아! 나는 이런 기후를 가진 곳에 가서 살고싶다.
추위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살겠다. 하지만 더러운 곳에 가서 실기는 싫다.
우리는 출구쪽으로 슬슬 걸었다.
해가 넘어갈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골짜기 안에있는 토루만도 수십개가 넘는다니 확실히 여기는 토루세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때 복건성에서 근무를 했단다. 그도 여기를 다녀간 적이 있는 모양이다.
담장이 넝쿨이 벽을 타고 자라오르는 작은 토루형 건물이 보였다.
누가봐도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무엇일까 싶어 궁금증이 일었다.
토루경구평안복무중심이라고 했으니 관광객을 위한 시설인지 직원을 위한 시설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어쩌면 관광객용 휴게실인지도 모른다.
뒤쪽으로도 토루가 보였다.
눈만 돌리면 그저 온 사방이 토루다.
사실이 그랬다. 관광객 수송용 전동차 한대가 구석에 숨어있었다.
부근에서 우리는 술단지가 곱게 쌓여있는 집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도자기 굽는 곳인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술 주(酒)라는 글씨가 단지마다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집이 술과 관련이 있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토루 이름은 옥성루다. 객잔과 반점이라는 글자를 써붙여둔 것으로 보아 음식점도 되며 여관도 겸한다는 말이렸다.
알고보니 옥성루는 술도가였다. 술도가라는 말을 지금 자라오르는 젊은이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우리라. 예전에는 마을마다 술을 만들어파는 집이 있었다. 한개 면이나 동에 한 군데 정도는 허가를 받아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곤 했는데 그런 집을 술도가라고 불렀다. 술을 만들어 도매하는 집이라고 여기면 틀림없다.
옥성루 앞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고 감나무 밑에는 작은 술병이 그득했다. 가만히 보니 이 골짜기 안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그렇다. 여기는 감의 주산지였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영정은 곶감의 특산지였다. 토루로만 유명한 동네가 아니었던 것이다.
출구로 나가는 길에 벽을 하얗게 칠한 천후궁을 만났다.
천후궁은 바다사람들의 수호신인 마조를 모시는 곳이다. 저번에 한번 이야기한대로 복건 사람들은 동남아시아로 다니면서 무역을 해서 돈을 모으기도 하고 직접 이주해가기도 했다. 그들이 해상무역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험한 바다에서 생활하려면 반드시 수호신이 있어야한다. 그들의 수호신이 마조다. 천후궁의 지붕곡선이 날렵한데다가 지붕위에 올려둔 장식까지 예뻤다.
천후궁 옆을 흐르는 개울 이름이 홍천인가보다. 이제 가만히 보니 저번 글에서 물레방아라고 표현했던 이 둥근 시설물이 무자위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레방아와 무자위는 엄격히 말하자면 다른 물건이다.
무자위는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퍼올리는 기구라고 보면 된다. 어떤 이는 수차(水車)의 순수한 우리말이 무자위라고도 한다. 한국민속대사전(민족문화사,1991)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천후궁 벽에 마조는 여신이라고 밝혀두었다. 어떤 이들은 마조가 이슬람과 관계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글쎄다......
우리는 홍천을 따라 난 길을 걸었다.
뒤로 천후궁을 남겨둔채로 말이다.
홍천의 물은 약간 탁했다. 오염때문이었을까?
출구로 향하는 길 밑으로 집들이 보였다.
검은 기와를 올린 집들이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출구가 나타났다. 처음에 우리들은 여기를 입구로 착각했었다.
출구 앞에 보이는 붉은 집에 우리가 묵고 있는 것이다. 하문으로 나가는 장거리 버스도 이 건물 앞에서 탈 수 있다.
우리는 패방을 보며 밖으로 나갔다.
사람이 앉아있는 저곳이 버스정류장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우리가 묵고있는 숙소를 지나서 조금 더 걸어서 올라가보았다. 그랬더니 마을이 나타났다. 사실은 연결된 마을인데 그 마을 이름이 육연촌이다. 비로소 우리들은 육연촌이라는 마을을 찾아낸 것이다. 배낭여행 안내서인 론리 플래닛에 육연촌이라는 말이 등장했기에 거기가 어딘지 한참을 찾았었다.
돼지 한마리가 마을 안길을 누비고 있었다.
내다 팔려고 했는데 녀석이 탈출을 감행했던 모양이다. 결국은 잡혀서 자동차위로 끌려 올라갔다.
육연촌에도 토루는 존재했다.
송죽루라는 건물이다.
그 앞에 떡버티고 선 이차는 기아차다. 차 번호판 제일 앞에 보이는 한자가 민이라는 글자로서 복건지방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차를 보니 좋긴하다.
우리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후줄근하다. 날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인지 학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이젠 저녁을 먹을 차례다.
토마토 계란탕과.....
채소요리......
부죽요리.......
부죽이라는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처음인것 같다. 식감은 고기요리를 먹을 때의 느낌과 아주 흡사했다. 재료가 무엇일까? 아는 분은 알고 있겠지만 부죽은 두부를 길다란 모습으로 말린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렇게 먹고나자 53원이 나왔다. 1인당 18원인 셈이다. 3,300원짜리 식사라고 보면 된다. 살다가 살다가 별별 요리를 다먹어본다. 요리는 맛있었다. 가만히 보니 온동네 사람이 다 이집에 오는 것 같다. 우리는 뭐든지 잘되는 팀이므로 요리사의 솜씨도 뛰어난 멋진 집을 선택한 모양이다. 잠은 70원짜리 방에 자면서 저녁은 53원씩을 썼으니 좀 우습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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