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4 중국-복건성:화교의 고향(完)

토루왕자 진성루 1

by 깜쌤 2014. 5. 9.

 

 지금 우리가 구경하고 다니는 곳은 복건성 용암시 영정현 호갱진의 영정토루민속마을이다. 정식으로는 영정토루민속문화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동네에 존재하는 토루 모두를 뭉뚱그려 홍갱토루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토루군()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토루가 한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이 그랬다. 이 민속문화촌 안에는 토루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그 중 최고로 치는 토루는 진성루다. 진성루를 두고 토루왕자라고 부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토루왕자라는 별명을 지닌 진성루를 찾아가는 길이다.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가판대들이 길가에 즐비했다.

 

 

 이제 저녁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가판대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같은 토루를 향해 걷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의 공간안에 함께 사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아이들의 차림새는 중국이나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다.

 

 

 객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바나나 숲이라고 해야하나? 꽃이 지려는가보다. 아직도 바나나가 달려있었다.  

 

 

 객가인들은 글자그대로 나그네란 말이다. 다른 곳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를 가졌다면 객가인들은 분명 어디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다. 어디에서 온 사람들일까?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음모론 혹은 맨인블랙(Man in Black)같은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나 외계문명설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런데서 힌트를 찾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터무니없는 데서 근원을 찾는 황당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걷어치우기로 하자.

 

 

 객가인들은 대부분이 한족이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중국남방에 자리잡고 살았던 민월사람들과는 피를 달리한다는 말이다. 복건성을 단 한글자로 압축해서 나타내라고 하면 중국인들은 이라는 글자를 떠올린다. 남방에 사는 오랑캐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중국인들은 오랑캐도 거주지에 따라 구별할 줄 알았다. 북쪽에 사는 오랑캐는 북적, 남쪽에 사는 오랑캐는 남만, 서쪽에 사는 오랑캐는 융, 동쪽에 사는 오랑캐는 동이라고 불렀다.  

 

 

 중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 민족도 오랑캐의 한 종류다. 동이라는 이름을 붙인 오랑캐!

 

 

양자강 남동쪽에 사는 미개한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문명화시키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 한인(漢人)들이란다. 민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엄연한 침략자들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쳐들어간 코쟁이 백인들만 침략자가 아닌 것이다. 

 

동이족이 만들어낸 기아차가 토루 앞에 버티고 서있었다. 뭐지? 이 아이러니한 현실은?

 

 

여기서 말하는 남쪽의 기준은 무엇일까?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원전후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한나라 시대나 그 이전의 통일왕국이었던 진나라 시대를 기준으로 하자면 양자강(=장강) 정도가 되겠다. 양자강 남쪽이니까 강남이라고 했다.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중국 역사의 대부분은 황하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사건이 전개되었다. 양자강(=장강) 북쪽에서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진시황 (政)이 등장하여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들어내는데 그 나라 이름이 나라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진시황 정은 역사에 길이 남을 폭정을 펼쳤다. 중국 역사 최초로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월나라 사람들이 진의 세력에 밀려 남쪽으로 쫒겨가야했다. 뒤를 이은 한나라시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진이 멸망하고 전한과 후한이 교체되는 시기와 후한 말기는 전란이 연속되는 때였다. 물론 잠시 동안의 평화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 많은 한족들이 전란과 학정을 피해 남쪽으로 탈출하게 되는데 그게 객가의 시작이다. 양자강 남쪽 절강성과 복건성에는 한족이 아닌 사람들이 미리 터를 잡고 살았다. 우리가 아는 이라는 나라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 거주지로 밀려드는 새로운 인종 즉 한족들은 객가인이 되는 것이다.  

 

 

한족에게 밀린 월족 사람들은 한족과 동화되어 살아야했고 그게 싫으면 더 남쪽으로 쫒겨내려가야했다. 우리가 월남이라고 할때의 월은 만족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고 지명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한족들이 해남도까지 차지하고 나자 월이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홍하 남쪽을 의미하게 되었다.

 

홍하(紅河)는 황하가 아니다. 황하와는 완전히 다른 강이다. 중국과 월남의 국경부근을 흐르는 강이라고 보면 된다. 흔히 송코이 강으로 알려진 강인데 한자로는 그렇게 쓴다. 월남을 영어로 Viet Nam이라고 하지 않던가? 비엣(Viet)은 '월'을 나타내는 말이다.

 

 

중국 역사에서 양자강 남쪽으로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진 또 하나의 시대는 송나라 때의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송은 물론 남송을 말한다. 남송은 만주족이 세운 금나라와 투쟁을 하다가 나중에는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와 투쟁하게 된다.

 

 

아까 우리가 건너편에서 이 시설물을 보면서 우물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건너와서 살펴보니 우물이 아니라 제단이었다. 동네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작은 사당이라고 해도 되겠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자. 원나라는 한족들을 가혹하게 탄압한다. 특히 북방 중국에 대한 약탈과 수탈이 심했다. 한족들은 더나은 삶을 찾아 남쪽으로 몰려들었고 양자강 남쪽 복건성과 광동성에 터를 잡고 살았던 일부 한족들은 본토를 탈출하여 동남아시아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게 화교의 시작이다.

 

 

몽골족이 세웠던 원나라가 망하고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가 등장하자 가렴주구를 견디지 못한 북방인들이 다시 또 남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중국 남쪽으로 몰려든 북방사람들을 두고 남쪽에 먼저와서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은 객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주원장! 그는 무식한 빈농출신이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과 함께 빈농이나 하급관리 출신으로 역성혁명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이다. 무식했던 그는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관리들을 숙청했다. 그의 폭정을 피해 남방의 많은 상인들이 중국을 탈출하기 시작하자 명나라 정부에서는 해금(海禁)정책을 실시했다. 바다로 나가지도 말고 외부상품이나 인력이 아예 중국으로는 들어오지도 말라는 이야기였다.  

 

 

원래 중국인들은 돈을 밝힌다. 돈을 밝혀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수탈을 당하면서 살아온 댓가로 돈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햇다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이리라. 양자강 북쪽에 터를 잡고 살았던 북방인들은 부를 탐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한는다고 한다.

 

 

하지만 남방인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부를 탐한다고 한다. 중국 남방의 복건성과 절강성, 광동성 출신들이 압도적인 화교들은 병적으로 돈을 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귀소본능이 유달리 강해서 돈을 번 뒤에는 반드시 고향에다가 투자한다는 철칙아닌 철칙을 가지고 산다.

 

 

오늘날 중국이 이룬 놀라운 번영은 화교들이 보유한 막대한 자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골든 트라이 앵글(태국, 라오스, 미얀마 세나라의 국경이 모이는 지점)에서 재배한 아편을 팔아 번 돈도 한몫 단단히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상하이와 복건 절강 광동 출신인들로 구성된 상공인들이 홍콩을 중심으로 사업을 해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도 크게 한 역할했다는 것은 세계인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여행하는 복건성은 화교들의 본산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화교들이 해외에서 번돈을 어디에다 투자를 했을 것 같은가? 화교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의 일부는 고향에 투자된 것이 사실이다. 객가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는 타향에 스며든 나그네였을지 몰라도 그들 객가인들도 삶의 본성에 충실하여 화교로 변신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토루는 객가인들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생존본능에 충실한 끈질긴 삶의 산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 우리들은 진성루 부근까지 왔다.

 

 

바로 저 건물이다.

 

 

진성루! 중국인들에겐 토루왕자로 잘 알려진 거대한 원형 건물이다.  

 

 

막상 현장에서 보니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진성루 앞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4 중국-복건성:화교의 고향(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루마을 육연촌 이모저모   (0) 2014.05.13
토루왕자 진성루 2  (0) 2014.05.12
이것이 토루다 4  (0) 2014.05.07
이것이 토루다 3  (0) 2014.05.07
이것이 토루다 2  (0) 201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