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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중국-복건성:화교의 고향(完)

무이산을 떠나다

by 깜쌤 2014. 4. 25.

국수가 입맛에 딱 맞았다. 고명으로 올린 고기도 실했고 면발이 쫄깃하면서도 야들야들했다. 확실히 탱글탱글했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맛있는 국수를 먹었다.

 

 

허름한 음식점이긴 해도 적어도 나에게는 맛이 좋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이런 음식점을 만나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빈둥빈둥 노는 분위기인데 이런 가게의 주인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남보기에도 좋다. 고기 고명을 올린 국수는 한그릇에 8원이었다.

 

 

사진의 오른쪽  끝집이다.

 

 

점심까지 먹었는데도 택시 대기시간이 남았다. 그렇다고 하릴없이 빈둥거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시내로 돌아나가기로 했다.

 

 

개울을 가로질러 골목을 따라 걷기로 했다.

 

 

골목에는 한겨울의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한때는 부촌이었지만 이제는 쇠락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곳!

 

 

그곳이 하매촌이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다른 마을처럼 아름답게 변했으면 좋겠다.

 

 

골목을 지나다가 풍구를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풍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것과 모습이 거의 똑같다. 우리가 중국에게서 배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농기구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는게 참 신기하다. 풍구는 탈곡후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데 쓴다. 위쪽으로 탈곡한 곡식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바람이 생겨 쭉정이는 날아가고 실한 알곡은 앞쪽으로 흘러내리는 그런 도구다.  

 

 

우리는 처음 도착했던 곳으로 나왔다. 너른 공터에는 승용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서양마을 같으면 여기는 광장에 해당된다. 공터 한구석 벽면에는 커다란 광고판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또 한쪽에는 기념비같은 것이 서 있었는데 진상만리다로기점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진상들이 여기에서 차를 구입하여 중국 북쪽으로 운반하던 기점이라는 말이리라.

 

 

중국대륙을 종단하여 몽골을 지나 시베리아 남쪽까지 뻗어나간 길이니 만리라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니다.

 

 

글을 자세히보면 현재의 몽골 수도인 울란바타르 넘어서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동이나 태원같은 도시들은 중국 북부의 산서성에 있는 도시이름들이 아니던가?

 

 

남쪽에서 차를 구입하여 참 멀리까지도 갔다. 하매촌 수표처의 모습이다. 입장권 판매소라는 말이다.

 

 

공터를 향하고 있는 가장 큰 건물은 파출소나 동사무소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나왔다. 아침에 택시기사가 말한대로 자기집에 가는 줄 알고 따라 갔는데 사실은  자기 집이 아니었다. 위치는 무이산 대홍포입구 강건너 맞은편 동네라고 보면 된다.

 

 

3층건물이 들어선 한적한 곳이었는데 부근에 비슷한 건물이 많았다. 알고보니 한때 차를 덖어서 팔던 그런 곳이었다.

 

 

기사는 기본적인 제다(製茶) 도구를 보여주었다. 차잎을 덖고 말리고 담는 그런 기본적인 소도구들.....  

 

 

한때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용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

 

 

기본적인 도구들은 아래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잡동사니들을 보여준 후 그는 우리들을 2층으로 안내했다.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꼈다.

 

 

2층 응접실은 그런대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느 순간 운전기사는 사라지고 젊은 아가씨가 등장했다. 그녀는 그런대로 약간의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나는 기사의 여동생인 것으로 착각했지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이 집이 기사의 집인지를 물었다. 그녀는 비교적 솔직했다.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 순간 나는 택시기사가 손님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고 판매액을 일부를 돌려받는 뚜쟁이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럴땐 적당하게 일어서야 한다. 하지만 아가씨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많이들 해본 솜씨다. 그녀의 말을 끊고 중간에 내가 치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는 대홍포차에 대한 설명을 했다. 철관음 이야기도 나왔다. 우리는 시음을 했다. 그러다가 틈을 봐서 내가 한자로 써서 물어보았다.

 

"면비(免費 공짜)?"

"지금 시음하는 것은 공짜나 파는 차는 공짜가 아니오."

 

그녀가 한자로 써서 내게 보여준 내용은 대강 그런 것이었다. 그녀가 소개하는 홍차 가운데 어떤 것은 500그램에 230원짜리도 있었다.

 

 

우리는 눈짓을 하고 적당한 순간에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더 오래 있으면 원하지 않은 제품을 강매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하는 짓거리가 괘씸했지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측은해지기도 했다. 처음 택시를 탔던 곳까지 돌아온 나는 속마음을 감추고 점잖게 인사를 하고 그와 헤어졌다.

 

  

그러보니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무이궁에 가보기로 했다. 혹시 빈틈이 있다면 대왕봉에라도 슬쩍 올라가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불순한 의도를 안고 갔다는 말이 된다.

 

 

산에 한번 올라가는데 몇만원씩 내고 싶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무이궁은 조용했다.

 

 

우리는 여기저기 쏘다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이 참에 부근을 다 뒤질 생각이었다.

 

 

기념관에 들어갔더니 한족이 월나라 사람들과 이라는 남쪽 지방의 야만족(?)을 교화시켜 나가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니 한족이 남쪽 야만인들을 가르쳐나갔다는 말이 아니던가?

 

 

그건 한족들 입장에서본 시각이고 사람들 입장에서는 침략을 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선진문물을 앞세운 한족들이 민 땅에 들어오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전시장 한곳에는 위대한 인물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왼쪽은 척계광이다.

 

 

이 사람은 서하객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유명한 지리학자며 배낭여행자로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명나라때의 사람이다.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 우리는  출구를 찾았다.

 

 

건물 지붕위로 잡초가 가득했다.

 

 

기념관을 나와서 못보았던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무이궁 부근에서 무이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다. 하루 입장요금이 140원이니 싼게 아니다.

 

 

무이산으로 슬며시 돌아 들어가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다른 현지인 동네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시 개울가로 내려갔다.

 

 

뗏목을 타고 떠내려오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개울가 바위위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상류에서부터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부지런히 떠내려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구경하는데도 진력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한가한 것도 큰일이다.

 

 

우리들은 다시 호텔이 있는 시내로 걸어갔다.

 

 

배낭을 찾아서 시내버스를 타고 무이산기차역으로 향했다. 한번 와본 길이니 익숙하다. 우리는 역이 보이는 사거리를 지나서 내렸다. 부근에 커다란 수퍼마켓이 있었기에 들어가서 간식거리를 조금 샀다. 야간기차를 타고 이동해야하니 뭐라도 먹을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과자들이 많이 보였다. 현지화 전략에 의해서인지 초코파이같은 것도 모두 중국식으로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뒤에는 송양강에 걸린 다리를 건너 기차역으로 향했다.

 

 

무이산구경을 위해 다시 여기에 올 일이 없을것 같다.

 

 

사람일이라는게 한치 앞을 모르니 함부로 단정할 것은 아니지만 너른 중국땅에서 다른 곳을 갔으면 갔지 또 올 일이 있으랴싶기는 하다.

 

 

무이산 기차역이 앞에 보였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저녁을 먹고가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음식점이 보였기에 찾아들어갔다.

 

 

반찬을 손으로 가리키면 종업원이 담아주는 그런 음식점이었다. 나는 반찬 세가지를 골랐다. 밥은 개인이 알아서 퍼가기였다. 이 정도만 먹어도 푸짐하다. 이른 저녁을 일인당 16원 정도로 해결하고나서 우리는 기차역으로 다시 향했다.

 

 

무이산역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가다가 장평이라는 곳에서 내릴 예정이다. 우리는 대합실로 들어갔다.

 

 

차표는 며칠 전에 사두었으니 새로 표를 구할 일이 없었다. 대합실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휑했다. 그런데 어찌 많이 춥다. 슬슬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이도 닦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시간이 되어가자 대합실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춥긴 마찬가지였다.

 

 

임기응변이 뛰어난 ㄱ사장이 물병을 찾을때도 나는 왜그러는지를 몰랐다. ㄱ사장은 물병에다가 뜨거운 물을 받아가지고 왔다. 그렇다. 뜨거운 물이 든 병을 만지거나 안고 있으니 추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기차역이니 기차안에는 항상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시설이 되어 있다. 차를 즐겨 마시는 민족이기 때문이리라. 뜨거운 물을 사용해서 추위를 녹일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왜 못했는지 모른다. 머리가 희미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내가 꼭 그렇다.  

 

 

그렇게 추위를 녹이고 있다가 개찰을 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나는 이번에 하포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 편하다. K8745열차의 무이산역 출발 시각은 밤 7시 42분이었다. 장평역에는 새벽 5시경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자면 된다. 푹 자두어야 내일 새벽에 일어날 수 있다. 장평에서 내려서 이동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나는 일이었지만 일단은 자두어야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