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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by 깜쌤 2014. 3. 8.

 

올해 2월 18일에 아이들을 졸업시켜 떠나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교편을 놓았다. 같은 학년 선생들과 점심식사를 한 후 헤어지는 것을 끝으로 집에 돌아온 것이다. 공무원 신분이야 2월 28일까지 유지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날이 마지막 출근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교사들에게도 이번에 물러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제자들에게도 그런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민폐를 끼칠까 싶어서 극도로 자제하고 조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제자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1977년 3월에 첫 발령을 받아가서 가르친 아이들에게서부터 연락이 오는 것을 시작으로 1982년에 가르친 아이들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1982년에 가르친 아이들은 평생에 처음으로 가르쳐본 4학년이어서 얼굴들을 하나씩 제법 기억하고 있었으나 연락이 오리라고는 상상을 하지못했다. 그래도 한번씩은 생각이 났다. 그때 가르쳐서 보낸 아이들 가운데 나중에 방송국 피디가 된 제자가 있는데 한번씩 고향에 내려올때마다 찾아와서 동기를 안부를 전해주길래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그때 가르쳤던 4학년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나서 동기회를 조직할때 한번 나와주십사하는 전화를 해온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간곡하게 거절했다. 처음 동기회를 조직할때는 6학년때 가르쳐주신 담임선생님을 모시는 것이 도리이니 그분을 우선적으로 모시라고 권하고는 수화기를 놓았다. 어리바리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같은 선생도, 그들이 기어이 모시고 싶다고 했지만 정중하게 사양을 했길래 얼굴 보는 것은 영원히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첫발령을 받아서 5학년을 가르쳤고 이듬해에는 6학년을 가르쳤다. 당시 부임했던 시골학교는 한학년에 두개의 학급이 있었길래 어떤 아이는 2년을 거푸 내리만나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일년동안만 가르치기도 했으며 어떤 아이는 한번도 가르치지 못하고 졸업을 시켰다. 사실상 그 아이들이 첫제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때 그 아이들이 연락을 해온 것이다. 명예퇴임을 축하하고 위로도 드릴 겸해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2월 22일 저녁에는 두 팀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시간을 조정해야만 했길래 오후 5시에 한팀을 만나고 두시간 뒤인 7시에 다시 다른 팀을 만나기로 했다. 4학년 아이들을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에 6학년때 가르친 아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글 속에서 아이들이라고 했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모두들 40대 중반의 중후한 신사숙녀가 되어 참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울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제자의 아이디어로 모두들 가슴에 명찰을 달고 맞이해주었다.

 

 

나는 마음이 짠해지며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사실 선생은 제자들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는 직업인이다. 다른 교사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살았다.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되면 아이들에게 언제라도 사과를 하며 정정했고 자주 안부를 묻기도 했다. 부담이 된다 싶으면 일부러는 전화하지 않았다.

 

 

4학년때 아이들이 뛰놀았던 운동장이다. 나는 한번씩 내가 근무했던 학교를 찾아가본다. 워낙 변해버려서 옛모습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귀에 들리는듯 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을 한번씩 만나기도 한다.  

 

 

처음으로 가르쳐서 졸업시킨 아이들은 이제 쉰나이를 바로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 가르쳤던 선생이나 배웠던 아이들이나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중이다. 내가 늙어가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제자들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항상 젊고 어렸으면 했지만 자연의 섭리가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떻게하랴?

 

제자의 형수되시는 분이 예전에 나와같은 학년을 한적이 있었는데 지난 설명절에 시동생을 만났을때 내가 명예퇴직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이 그날 만남의 빌미가 되었던것 같다. 형수되시는 분은 퇴직자 명단을 공문을 통해 보셨던 모양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못난 선생을 기억해주는 귀한 제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모는 자식 잘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지고, 선생은 제자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한없이 좋고 기쁜 법이다. 선한 인연의 끈이 언제까지라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하다.

 

 

내가 사는 경주에는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금까지 가르쳤던 모든 제자들의 앞날에 따뜻한 봄날의 훈풍같은 미래가 환하게 펼쳐지기를 거듭거듭 빌어본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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