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정류장 부근에서 택시를 교섭하기 위해 기사를 찾다가 부근에 심어둔 분재에 눈이 갔다.
무슨 나무일까? 분재가 크기도 크다.
대륙의 분재인들이 생각하는 분재는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개념이 조금 다른듯 하다. 하기사 사람이 다르고 풍토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택시는 있는데 기사가 보이지않아서 찾았더니 식당에 있다가 쫓아나왔다. 하매촌 왕복에다가 3시간을 대기하는 조건으로 100원을 불렀다. 아까 여유국에서 대강의 정보를 수집해두었으므로 그가격으로 두말없이 가기로 했다.
택시는 마을을 빠져나와서 넓게 잘 닦여진 도로를 달렸다. 장평으로 가는 철길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갔다.
택시는 고속도로와 철길밑을 지나서 골짜기를 따라 달렸다.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하매촌의 위치는 3번이다. 1번 무이산 기차역이고 2번이 우리가 머물렀던 곳이며 4번은 무이9곡을 떠내려가는 뗏목 출발지다. 이 글을 앞에서부터 읽어온 분들이라면 대강의 지형을 짐작할 것이다.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지도를 클릭해보라. 지도가 크게 뜰 것이다.
좁은 입구를 벗어나니 안에는 제법 너른 분지가 나타났다.
이런 시골에 무슨 아파트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건물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매촌, 중국역사문화명촌>이라는 제목의 환영문이 나타났다.
기사는 마을 입구부근의 너른 공터에 차를 댔다. 부근에 입장권을 파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가 타고간 택시는 알고보니 기아차였다. 운전기사는 하매촌으로 오는 길에 자기집에 가서 차를 한잔 마시지 않겠는냐는 제안을 해왔기에 그러마하고 약속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문제가 있는 제안이었다.
표를 끊어서 마을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인이 따라왔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잘해서 돌려보냈다. 실컷 안내를 해주고 나서 보상을 요구하면 곤란하므로 처음부터 트러블 발생을 예방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마을은 사방이 개방되어 있으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입장권을 사지 않고도 얼마든지 들어가볼 수 있다.
여기 하매촌에 오니까 시골냄새가 풀풀 났다.
우리는 마을 옆을 지나는 도로를 따라 잠시 걸었다.
100미터도 못가서 오른편으로 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옛날 마을이다.
개울을 중심으로 좌우에 한눈에 봐도 꽤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마을 중앙을 흐르고 있는 것은 매계(梅溪)라는 물줄기의 일부분일 것이다. 구글 위성지도와 중국 바이두지도에서 검색을 해보니 상류에 상매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러니 이 마을의 이름은 하매촌(下梅村)인 것이다. 마을 홈페이지도 존재했다. 주소는 아래와 같다.
마을 가운데로 물을 끌어들인 것은 아주 잘한 아이디어다. 어느 마을이고 동네든 풍부한 물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아무리 살기 좋은 동네라고 해도 마실 물이 없다면 헛것이다.
놀라운 것은 개울로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놓았다는 사실이다. 수도가 일반화되기 전에 사람들은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살았다. 그러니 개울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었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물길을 끌어넣고 삶의 터전을 조성할 줄 알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시설을 하려면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것은 이 마을이 한때는 그만큼 부유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이 그랬다. 여기 하매촌은 청나라때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물길을 따라 건물을 만들고 물길쪽으로 난간을 설치한 것을 보면 계획적으로 마을을 조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집들도 이층이 많았다.
도대체 이 마을 사람들은 무슨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을까? 뱀술을 팔아서? 작은 구멍가게를 경영하며 돈을 벌었을까?
이 사람들은 차사업으로 돈을 벌어 거부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인들은 좋은 차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한창때는 이 물길 위로 차를 실은 배들이 왕래했다고 한다.
나무로 지은 집들이지만 규모가 꽤 컸으리라.
물길 가운데는 양쪽을 오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쉽게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한때는 번성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후줄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전체에 나태함이 흐르고 있었다고나 할까?
돼지고기를 파는 장사치도 고기를 길바닥에 깔아놓고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로 살짝 덮어두면 좋으련만......
제일 바꾸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의식이리라.
작년에 가보았던 절강성 온주 부근의 암두촌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여기가 더 남쪽이어서 그런지 나무로 된 집이 많았다는 차이라고나 할까?
자동차에다 온갖 생필품을 싣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 현대판 방물장수가 진을 치고 있기도 했다.
주로 식품을 파는듯 했다.
다리 난간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리 위에도 물길 가에도 낮잠을 즐기는 개들이 제법 많았다. 녀석들은 순하기만 했다.
물길가로 다양한 가게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 가게는 이발소이리라.
이 마을이 번성했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예전에는 거상들의 집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아래층은 통로로 쓰고 위층은 개인의 살림공간인 집이 많았다.
나는 이 마을에서 아련한 향수를 느꼈다.
골동품가게도 보였다.
다양한 도자기들도 보였다.
나는 골동품에 대한 안목이 부족하니 그냥 눈요기감으로만 삼고 지나쳤다.
물길가로 석축을 쌓아올린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듯 하다.
여기에도 문명의 바람이 밀어닥쳐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어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즐기기도 했고.....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이 마을에서 세월이 정지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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