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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중국-복건성:화교의 고향(完)

절벽은 만길이나 위로 치솟아 서고....

by 깜쌤 2014. 3. 27.

 

사방이 기암 봉우리 둘러싸인 멋진 공간이 나타났던 것이다. 중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신선들이 사는 곳이나 다름없는 장소가 되겠다.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드는 터였다.

 

 

산길을 벗어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거대한 노인이 앉아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분은 누가봐도 도교의 창시자인 노자라는 느낌이 든다.

 

 

산밑에는 세채의 거대한 기와집이 들어앉아있었고 그 앞의 제법 큰 인공호수에는 물이 차있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꽃피는 계절에 오면 완전히 느낌이 다르리라. 바위 하나를 통째로 깎아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자상 앞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벌써 제비꽃이 피어있었다. 

 

 

제비꽃은 대륙에도 피는구나싶었다. 우리보다 두세달정도 미리 피는가보다. 아열대 기후인데다가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이 차단되는 아늑한 곳이니만큼 다른 장소보다 꽃이 일찍 필 수밖에 없겠다.

 

 

계단밑에는 쇠로 만든것처럼 여겨지는 향로가 두개보였다.

 

 

향로는 향로로되 몇층이나 되는 큰 녀석이다. 제법 짜임새있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향로에는 도원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만들어둔지가 꽤나 오래된 모양이다. 발갛게 녹이 슬어가고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서 여기는 도관(道館)이다. 틀림없이 절은 아닐 것이다. 건물쪽으로 가보려다가 참았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지간히 농사만 잘 지으면 웬만한 것은 모두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몇몇 사람들이 사람들이 건물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굳이 다가가보지 않았다. 이제 어지간히 건물구경에는 이력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향냄새가 맑은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향은 왜 그리도 크며 냄새또한 독한지 모르겠다. 향나무를 태우는 그런 은은한 향이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그런 냄새가 싫었다. 중국인들 코에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리 향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걸음을 치며 출구를 찾았다.

 

 

출입구는 참으로 묘한 곳에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오면 들어올 수 있겠지만 입구는 감춰진 곳이나 다름없었다.

 

  

입구는 요새 비슷하다. 옛날 요새를 이루었던 관()처럼 생겼다. 삼국지연의같은 소설에 등장하는 관 말이다. 함곡관이니 옥관이니 하는 말은 한번씩 들어보았으리라.

 

 

두개의 바위틈사이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길을 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안쪽에 너른 분지가 나타난다는게 어찌 신기하지 않으랴?

 

 

우리는 요새처럼 생긴 문을 나와서 산밑을 향해 걸었다.

 

 

그러자 육곡부근이 되었다. 저 아래쪽으로 쇄포암이 보였다. 어떤 이는 벌떡 일어선듯이 보이는 저 절벽을 선장암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로는 저기가 구곡계 최고의 명소다.

 

 

앞쪽 모래와 자갈이 있는 곳이 노아탄이다. 우리는 절벽위에 보이는 정자쪽으로 올라갔다가 이 골짜기 전체를 돌아 내려온 것이다.

 

 

이만하면 멋진 길 아니던가? 안걸어보면 손해가 되는 길이다.

 

 

고개를 돌려 상류를 보면 굽이굽이 구곡계가 이어져내렸다. 조금뒤에 우리는 이 길을 따라 걷게된다.

 

 

우리는 하류쪽, 다시 말해 절벽을 향해 걸었다. 절벽밑에 자리잡은 집들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기어이 가보고 싶었다.

 

 

상류쪽은 고요한 침묵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돌로 포장된 길은 계곡가로 이어져 있었다.

 

 

뗏목에서 보았을때 커다란 바위에 길게 수술자국처럼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던 곳이다.

 

 

도원동에서 내려와 선장암쪽으로 걷는 길도 반드시 가볼만하다.

 

 

바위와 대나무숲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냈다.

 

 

계곡에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자갈밭을 뒤지고 있었다. 수석을 찾는 것일까?

 

 

길 왼쪽은 차밭이다. 대나무로 개바자를 들러놓았다. 개바자는 사실 갯버들 가지로 만든다. 대나무로 만들었으니 대바자라고 해야하는가?

 

 

청춘남녀는 비경속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드디어 앞에 몇채의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록색 차나무잎과 옥빛 물색이 조화를 이루었다.

 

 

이런 경치를 선경이라고 하지 않을까?

 

무이산 골짜기의 바위 부스러기터에 자리잡고 큰 차나무 잎을 말린 것을 무이암차라고 한단다. 품종이 다양한데 수선도 알아주는 명품이라고 한다. 

 

 

 

무이암차의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대홍포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우리는 대홍포를 찾아 멋진 트래킹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마침내 절벽밑의 건물에 이르렀다. 알고보니 그 건물들은 찻집이었다.

 

 

차마시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일정이 급했다.

 

 

그래서 절벽 구경을 먼저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 무이산차를 한잔 정도는 마시고 오는 건데.....

 

 

인생살이에 한번씩은 여유도 부려야하건만 그러질 못했다. 배낭여행자 특유의 쫌생이짓을 하다가 멋을 놓친 경우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하늘로 치고오른 절벽 쇄포암 밑에는 벽립만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만길로 솟이오른 벽이라는 뜻이 아닐까? 칼날 인자 옆에 사람 인(人)자가 붙은 글자는 길(어른키의 한 길이)를 나타내는 글자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라고 할때의 길을 의미한다. 

 

 

절벽에 거대한 천을 널어놓은것 같다.

 

 

비가오면 파인 골마다 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한번은 보아야 하는데.....

 

 

참 대단한 모습이다.

 

 

한쪽에는 찻집......

 

 

만길 절벽 밑에는 차밭.....

 

 

나는 그만 할말을 잃었다.

 

 

"승진원화지동", "승진원화동천"이라....  도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는 문구란다.

 

 

나야 솔직히 말해서 도교의 가르침쪽으로는 많이 어둡다.

 

 

그러니 지금은 경치만 보는 것이다.

 

 

바위마다 글귀요, 암석마다 글자다.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다가 나는 그만 정신조차 아득해지고 말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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