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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중국-복건성:화교의 고향(完)

절경 천유봉을 오르다 2

by 깜쌤 2014. 3. 21.

 

벌써부터 대단하다는 소리가 나오면 안되는데도 감탄사가 마구 쏟아지니 이게 문제다.

 

 

다동 절벽 위에서부터 밑으로 빛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무이산차는 중국 안에서도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있다고 한다. 나중에 대홍포를 가게 되는데 대홍포야말로 무이산차를 대표하는 진정한 명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해서 다른 지방의 차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큰곳이다보니 명품으로 꼽히는 차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방금 위에서 소개한 다동에서부터 절벽으로 난 길을 따라 이 정도까지 올라온 것이다. 중간에 사람이 쉴만한 공간이 있어서 한번씩은 정신줄을 놓고 경치를 감상해도 된다.

 

 

하지만 완전히 정신줄을 놓으면 대형 추락사고로 이어지니 스스로 조심할 일이다.

 

 

아래를 보면 사방 어디나 까마득한 절벽이니 알아서 주의해야한다. 

 

 

우리는 다시 난간에 의지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바위를 깎아 만든 돌계단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한번씩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신을 안빼앗길 도리가 없다.

 

 

노아탄쪽으로부터 주파이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어찌 이런 경치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수직암벽 위에 삶의 터전을 잡고 모진 목숨 이어가는 나무들도 신기하거니와 계곡을 메우며 흘러가는 옥빛 물색의 아름다움도 그 어떤 다른 아름다움과 견줄 길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다시 위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작을 반복해야만 했다.

 

 

한걸음씩 올라설때마다 조금씩 경치가 변하니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건너편 절벽으로 매달리듯이 난 길로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기어오르고 있었다. 저런 곳으로 길을 낼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던가?

 

 

저쪽이 천유봉이다. 오른쪽으로 바위 색깔이 다른 곳은 비가 많이 올 경우 폭포가 형성되어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계단길이 나있는 모습을 잘 보면 길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 대강 짐작될 것이다. 왼쪽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가 된다.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한번씩은 아래를 내려다본다. 보면 볼수록 장관이다.

 

 

마란주 앞쪽으로는 제법 너른 차나무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중에 우리는 계곡의 오른쪽을 따라 상류로 걸어가보게 된다.

 

 

이제 제법 높이 올라왔다.

 

 

서하객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명나라때 사람이다. 본명은 서굉조! 그는 여행가였다.

 

 

1586년생이라고하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년전에 태어난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그가 남긴 발자취가 여기에도 이르렀던 모양이다.

 

 

그가 살았던 명나라시대에는 여기에 어떤 방법으로 올라왔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도 바위를 쪼아서 만든 길이 있었던 것일까? 이런 절경을 걸출한 여행객이었던 서하객도 보았던 것일까?

 

 

높이 오르면 오를 수록 인간의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은 훌륭해지기 시작한다. 그게 그 경치 같아도 조금씩 달라짐을 느꼈다.

 

 

이제 제법 많이 올라왔다.

 

 

이길은 거의 일방통행이나 마찬가지다. 워낙 좁은 길이기에 돌아서서 내려가면 개미떼처럼 바위에 달라붙어 오르는 인간군상들 때문에 원성을 듣기 딱 알맞다. 

 

 

건너편 절벽으로 옮겨붙으면 거의 다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다시 한번 돌아다보았다.

 

 

이 기막힌 장관을 눈에 깊이깊이 넣어두고 뇌리에 새겨두기 위해서.....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