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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중국-복건성:화교의 고향(完)

주자학의 태동지 - 무이정사 2

by 깜쌤 2014. 3. 17.

 

솔직하게 말씀드리지만 나는 성리학의 핵심 요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주자학이 이런 것입네 혹은 성리학이 이런 것이네 하는 식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주희가 여기서 강론을 하고 학문을 연구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의 서원을 조금 돌아다녀보았기에 서원의 구조가 대강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는 약간의 눈을 떴다. 여기와서 서원의 원형을 찾아보게 되었으니 감개가 무량했다.  

 

 

무이정사의 구조와 역사를 설명한 그림과 글을 보고 대강 이해를 하게 되었다.

 

 

현판의 글씨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제일 첫번째로 소개한 글씨 학달성천은 청나라 강희제의 글씨라고 한다.

 

 

이는 신도비였던가?

 

 

제일 뒤에 있는 건물의 현판은 이학정종이라는 말이다. 그 안에는 만세종사라는 글씨가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주희라는 존재의 역사적 의미를 말해주는 것 같다. 길이 세상에 빛난 스승이라는 의미일것이다.

 

 

책걸상이 보였다. 대학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의자에 한번 앉아보려다가 참았다.

 

 

우리는 다시 돌아섰다. 중청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냥 나오려다가 오른쪽 회랑을 따라 살펴보며 나오기로 했다.

 

 

회랑 속 전시실에는 놀라운 유물들로 가득했다.

 

 

방금 우리들이 들렀던 후청의 모습이다.

 

 

벽에는 새로 손을 보기 전에 건립되었던 청나라 시대 서원의 벽 흔적이 보존되어 있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최근들어 손을 본 것이라는 말이 된다.

 

 

전시실 유리관 속에는 제법 귀한 자료들이 수집되어 진열되고 있었다.

 

 

책제목을 들어보았어도 읽어본 적은 없는 책들이다.

 

 

주자가 동양삼국에 미친 여러가지 영향도 분석을 해두었다.

 

 

중청에 달린 현판의 글씨는 정중기상이다.

 

 

글자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전시실에서나는 도산서원의 모습과 퇴계선생의 초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위대한 한사람의 사상가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멋진 사례가 여기 무이정사에 남아있다.

 

 

그의 친필이었을까? 친필인지 아닌지를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조선의 유학자들 가운데는 성리학을 연구한 분들이 많았다. 그런 흐름을 대표하는 학자는 기대승, 이이, 이황같은 분들이 아닐까?

 

 

최인호의 소설 <유림>을 본것이 최근의 일인데 기억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주희의 고향은 이 부근이다.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 그의 고향은 오부진이라는 마을이다.

 

 

주희의 사상이 영향을 미친 나라로 조선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드러나있었다.

 

 

그 많은 글을 시간과 정성들여 읽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에 우리들은 밖으로 나왔다.

 

 

전청(前廳)을 나오면 곧 석패방이 보인다. 

 

 

우리는 아까 똑바로 보이는 앞쪽 방향에서 걸어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오른쪽으로 걸어가야한다.

 

 

그래야 천유봉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향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무이정사의 모습을 뇌리에 새겨두었다.

 

 

뒷산 중턱에 보이는 하얀색 건물은 또 무엇일까?

 

 

돌아나오면서 나는 비로소 무이정사에 관한 설명문이 있음을 알아챘다. 무이정사 뒤편 봉우리의 이름이 은병봉인 모양이다.

 

 

나도 참 바보다. 들어가면서 진작 읽어보았어야 할 안내문을 나오면서 보았으니 말이다.

 

 

계단을 내려와서 다시 골짜기 안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