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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그렇게 교단을 떠났다 2

by 깜쌤 2014. 2. 26.

 

 나는 조용히 물러나기를 원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평소의 생활신조 가운데 하나였기에 특급호텔같은 곳을 빌려 해주는 화려하고 거창한 퇴임식은 처음부터 꿈도 꾸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녀석이 16일 주일 저녁에 내려왔다. 딸아이는 음력설에 내려와서는 일부러 2주일간을 친정에서 머무르면서 애비의 퇴임식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2월 16일 저녁에 자녀들과 집에서 간단한 가정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함께 했다. 아들과 딸은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길 원했지만 거절했다.  

 

 

나는 자녀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었다. 작은 퇴임식조차 하지 않을 것이며 29번째로 6학년을 담임하며 가르치는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날도 보통때처럼 출근했다가, 나도 직장 졸업을 하고 평소처럼 그냥 집에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교내 친목회가 주관하는 저녁모임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을 것임을 학교경영자들과 친목회 담당 선생님들께 미리 분명하게 밝혀두었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게 아니었다. 다른 분들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업식날 출근을 하며 아내에게 같은 학년을 하며 일년내내 수고해주신 동학년 선생님들께 점심대접을 해드리고 집에 돌아오겠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출근해서 장소를 예약하기 전에 동학년 선생님들께 간단하게나마 점심을 대접하고 퇴근하고싶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분들이 먼저 장소를 예약해두고 준비를 다해두었단다.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내가 먼저 예약을 해두고 준비를 해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짧았고 준비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강당에서 졸업식을 끝내고는 교실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들려보낸 후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예약장소로 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퇴임식을 보았다. 남의 돈을 긁어모아 퇴임식을 하면서도 베풀 줄 모르는 교장을 보기도 했고 심지어는 코묻은 아이들 돈까지 훑어가는 경영자를 보기도 했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교육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퇴임식을 보기도 했다. 자녀들이 물러나는 아버지의 선후배선생님들을 초청하여 성의를 다해 대접하며 감사를 표하는 퇴임식을 보기도 했고 멋진 음악회를 열어 본인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분을 만나보기도 했다.     

 

 

 나는 동료 선생님들께 우리집 자녀들이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대접하는 것이 예의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서 정말 송구스럽다고 인사를 드렸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언제 준비를 하셨는지 기념품과 꽃다발까지 건네주셨다. 나가는 날까지 다른 분들께 폐를 끼친다 싶어 괜히 송구스럽고 미안해졌다.   

 

 

나는 참으로 부족한 선생이었다. 실력도 많이 모자라고 어리석었으며 능력도 너무 부족했다. 배운게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머리에 든게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냥 하는데까지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올해 경주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경주에 터를 잡고 37년을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내인생도 휜눈처럼 깨끗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환경이 너무 오염되어 그런지 요즘은 흰눈이 내려도 알고보면 산성눈이라고 한다. 내가 평생 걸어온 길도 겉은 깨끗한 척하지만 오염물질로 가득찬 성분을 지닌 눈이 가득한 세상을 살았다고 하는게 맞지 싶다.  

 

 

(사진속에 등장하는 일부 장면들은 글 속의 특정한 내용과 전혀 관계없음을 밝혀드립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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