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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중국-복건성:화교의 고향(完)

졸지에 뗏목을 타러가게 되었다

by 깜쌤 2014. 2. 27.

무이산장은 이 부근에서 알아주는 고급 호텔이다. 배낭여행자들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론리플래닛에서도 최고급으로 쳐주는 숙박시설이니 우리같은 여행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얼마 안되어 곧 버스정류장이 나타났다. 문제는 무이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표를 파는 매표소가 어디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이산 풍경구 입장권을 산 사람들은 셔틀버스가 무료라는데 입장권을 사야 뭘 하든지 할 것 아닌가?

 

 

어쨌거나 우리는 무이산 풍경구를 누비고 다니는 셔틀버스들이 가득한 곳으로 왔다. 셔틀버스는 필요할때마다 돈내고 타는게 아니다. 표를 가진 사람들만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버스인데.....

 

 

무이산장 옆에 자리잡은 버스정류장 부근 여기가 무이궁인 것은 이제 확실해졌다. 무이궁의 위치가 안내판에 나와 있었다. 여기서 셔틀버스를 타면 무이구곡을 떠내려가는 뗏목 출발지인 죽벌마두까지 가는 모양이다. 대나무 뗏목을 죽벌이라고 한다. 중국인들 발음으로는 주파이 정도가 될 것이다. 마두는 부두라고 여기면 된다.  

 

 

버스정류장 뒤로 보이는 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더니 예쁜 옛거리가 하나 등장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가 송나라 시대의 거리를 본뜬 송가(宋街)란다. 젊은 사람들이 가득 몰려있길래 유심히 살펴보니 촬영중이었다.

 

 

드라마인지 영화인지는 모르지만 한창 촬영중이었고 촬영중인 장면을 찍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얼굴이 작은 제법 예쁜 아가씨가 길을 걷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스텝들이 제법 많았다. 우리들이야 일부러 구경할 일도 없다. 그들이야 찍든지 말든지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대왕암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산봉우리들의 모습이 기묘하다. 그리 높고 크진 않지만 제법 올망졸망한 것이 귀엽다. 그러면서도 웅장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흰색 담으로 둘러싸인 멋진 정원 끝에 기와집이 보였다. 안들어가볼 수가 없다.

 

 

정원이 제법 참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 부근 풍경만 해도 아무래도 속세가 아닌 것 같다.

 

 

기기묘묘한 산봉우리들과 고즈넉한 분위기, 그리고 어딘가 기품이 서린 묘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협소설 속에 등장하는 절대고수가 은거하는 곳이라고나 할까?

 

  

석패방이 보였다. 그런데 패방에 새겨진 문구가 멋지다. 점입가경이라..... 들어가면 갈수록 멋진 풍경이 나온다는 말인데 사실이 그랬다. 무이산을 한마디로 나타낸다면 '점입가경'이라 하겠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사실이 그렇다. 그냥 흔히 말하는 그런 산이 아닌 것이다. 천하명산 무이산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우리는 흰색 담장위에 붉은 기와를 올린 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유영기념관이다.

 

 

편백이 좌우로 늘어서있었고 건물로 이어지는 통로 한가운데는 일필휘지한 멋진 글자를 새긴 바위가 자리잡고 있었다.

 

 

누구의 글씨였던가? 붓흐름이 유려했다.

 

 

유영은 송나라 사람이다. 그는 ()의 달인이었다. '사'란 일종의 서정시라고 한다. 서정시되 노래로 부르기 위해 쓴 가사 정도가 될 것이다. 유영(柳永)은 사랑이나 이별, 그리움과 고독같은 것을 주제로 한 ()를 잘 지었다고 한다.

 

 

그랬다면 당연히 여자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새로 자세히 하기로 하자.

 

 

기념관 속에는 여인들의 그림이나 조각이 자주 등장했다.

 

 

나는 꼭 일년전인 작년 겨울에 절강성의 소흥에서 육유의 사연이 서린 정원을 보고 가슴 아팠던 추억이 있다.

 

 

유영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기념관 속에 배치된 조각들을 가지고 미루어보면 꽤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유영기념관을 자세히 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무이산 입구를 찾아 산에 오르든지 아니면 뗏목을 타야하는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답답한 노릇이다. 기념관을 나와 거닐다가 개울을 찾아냈다. 아까 본 그 강은 아니다. 이건 작은 물줄기인데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 모르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가 무이구곡 뗏목 유람의 마지막 종점이었던 것이다.

 

 

이런 비경이 무이궁 부근에 숨어있을줄은 미쳐 몰랐다. 물색깔이 옥색을 닮았다.

 

 

조금 아래쪽을 보니 물가에 멋진 계단시설을 해둔 것이 보였다. 수량도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그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이어져 있었다.

 

 

한번씩은 뒤돌아보았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숨은 비경 하나가 불쑥 나타날것 같은 분위기다.

 

 

야자를 닮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열대기후의 장점은 추위가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활하기 편하다.

 

 

우리들은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나왔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젊은이들은 뗏목 타는 곳을 찾아헤매고 있었는데 그들은 강 건너편의 숭양 시내에서 구입한 티켓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버스를 타고 갈때 함께 묻어 우리는 공짜로 셔틀버스를 타고 상류로 출발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답답했던지 셔틀버스를 관리하는 직원은 운전기사에게 뭐라고 당부해서 우리로 하여금 버스를 공짜로 타게해준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졸지에 뗏목을 타기 위해 출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셔틀버스를 타긴 탔지만 티켓이 없어서 약간의 불안함을 안고 있기는 했다.

 

 

버스는 산모퉁이를 이리저리 돌아 상류로 향했다. 중간중간에 버스 정류장을 지났는데 정류장마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도 했고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