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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행사를 위해 무조건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by 깜쌤 2013. 11. 7.

 

요즘은 일년동안의 수업계획을 워낙 치밀하게 세워두므로 어쩌다가 예기치 못한 행사때문에 수업결손이 생길경우 이를 보충하는데 큰 애를 먹게된다. 중소도시에서 6학년 담임을 거의 삼십년쯤 했으니 수업을 중심으로 한 학교 변천사는 거의 다 꿰찰 지경이 되었지만 요즘처럼 팍팍하게 수업을 강행군해야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영어교과나 음악, 체육과목등 특별한 기능을 요하는 과목의 수업은 교과전담교사가 수업을 대신해주므로 담임교사가 재량을 발휘하여 여타과목의 진도를 조절하거나 결손수업 보충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현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육관료들이 벌이는 전시행정을 대하고나면 교육에 대한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게 된다. 과학교육행사의 일환으로 10월 하순의 어느날 4,5,6학년 21개 학급의 담임교사 모두가 학생들을 인솔하여 행사에 참석하도록 상부교육기관으로부터 공문으로 지시가 내려온 모양이다. 회의결과 전달을 받고나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이런 일은 경우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년자체회의에서 그 부당함을 지적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행사장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으므로 아이들이 걸어가기에는 약간 부담스런 거리였다.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음인지 행사를 주관하는 쪽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아이들을 실어준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할말이 없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참가여부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참가를 지시하는 것은 도대체 어느 시대때의 이야기였던가? 그리고 버스대절요금은 어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돈이란 말인가?

 

 

교직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젊었던 날부터 회상해보건데 그동안 수없이 많은 행사에 학생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역 체육대회를 할때도 그랬고 각종 홍보성 행사 캠페인을 할때도 그랬다. 워낙 많이 강제동원이 되었기에 처음에는 의당 그렇게 하는줄 알았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고.....

 

심지어는 높은 사람이 지나간다고 아이들이 동원되어 도로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다리기도 했다. 시커먼 관용차를 타고 지나가는 특정인물들을 위해 고사리같은 어린 아이들 손에 국기를 잡고 추위에 벌벌떨며 차량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으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였던가?   

 

 

위만 쳐다보는 교육관료들의 충성경쟁때문에 어린 아이들과 힘없는 교사들이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분노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기분이 된다. 한동안 잠잠해진 것 같더니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이유와 그 동안 당한 이런 현실이 너무 옳지않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명예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물러날때 물러나더라도 부당함을 지적해두는 것이 후배교사들을 위해 작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여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아무리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면 무엇하는가? 교육기관에서부터 일선현장의 선생을 함부로 대하는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맥이 빠진다. 승진에 목을 맨 교사들은 그들대로 끝없는 경쟁을 벌여야 하고(그런 분들을 싸잡아 매도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시지 말기 바란다), 어렵다는 승진관문을 통과하여 관리자가 되면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가기위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는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그동안 평생을 바쳐 교직생활을 하며 내가 받은 느낌은 환멸과 실망뿐이었다.

 

아이들을 강제동원하는 것은 그렇다손치더라도 막상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더 한심한 장면들이 속출했다. 행사장 실외에 설치한 몇몇 부스들은 아직 공사가 덜끝나서 그때까지도 작업중이었던 것이다. 호기심을 끌기에 딱 좋은 차량에 아이들이 올라가보려고 하자 아직 준비가 덜되었다며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렇다면 이런 행사를 왜 하는 것인가? 우리 귀한 아이들이 일부 교육관료들의 들러리용인가?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이런 행사장에서 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주고 함께 공부하고 지도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수백 수천명의 아이들이 몰려드는 곳에서는 내반 아이들조차 마음대로 통제하기가 어렵다. 교사의 직분을 다하겠다고 우리 아이들만 데리고 실험공간을 독차지하여 체험활동을 하는 것은 눈치보이는 일이기에 어쩔 수없이 모둠을 편성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모둠별 활동을 하도록 시켜야만 했다. 

 

모둠별로 흩어져 활동을 하도록 아이들을 풀어두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는지를 확인해두는 것은 교사의 기본의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특정한 장소에 얼마나 많이 몰려있는지 교사인 나도 접근하기도 힘들고 빠져 나가기조차 어려웠다. 

 

 

행사장 공간의 상당부분은 의식행사를 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제사 행사현장이 왜 이리도 혼잡스럽고 복잡한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정식 개막식을 하지 않은 행사인데 오전에는 아이들이 체험을 하도록 하고 오후에는 관계자들을 모셔놓고 개회식을 한다는 것이리라.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의 과학에 대한 체험활동을 통한 관심유발이 우선인지 전시용 행사인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바깥에서 기념식을 하든지 아니면 규모가 있는 회의실 같은 것을 빌려 간략하게 하고 아이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체험공간을 더 마련해줄 수는 없었는지 묻고싶다.   

 

 

좁은 공간에 몰려든 아이들을 데리고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은 행동특성상 떠드는 것은 기본이고 앞뒤 생각없이 쉽게 행동하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특수집단이다. 지진이나 화재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부스와 부스사이 통로를 꽉 메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이며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내가 분노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동원된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이런 식이라면 이런 행사는 하나마나다. 교사는 공무원신분이기에 공문을 통한 지시로 동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쳐도 요즘 시대에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인지 묻고 싶다.  

 

 

체험활동을 하는 부스에 접근조차 하지도 못하고 밀려난 아이들은 이층 관람석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매만지거나, 가지고 온 음식을 먹기도 했고 통로사이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럴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당연히 담임교사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면 교사에게 아이들 지도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묻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면 애꿎은 학교 관리자들까지 곤욕을 당하게 된다. 상부기관에서는 끊임없이 지시 공문이 내려오고 현장조사나 감사가 벌어지고난뒤 결국은 교사가 문책당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어디 그런 경우를 한두번 보고 살아왔던가?

 

 

많은 예산을 들여 아이들에게 나누어준 팜플렛은 비닐 코팅이 되어 있어서 재활용하기조차 어렵게 되어 있었다. 그러고서도 자원절약과 환경보호를 외친단 말인가? 무신경을 넘어선 이율배반적인 행위가 아니고 과연 무엇이던가?  

 

요즘 자라나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은 물건 귀하고 아까운  줄을 잘 모른다. 그러니 들고다니다가도 귀찮다고 여겨지면 아무렇게나 마구 버린다. 그걸 아이들 탓으로만 돌려야할까? 아이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종이나 안내책자는 따로 조직적으로 회수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행사주최측에서는 그런 것은 학교 담임교사가 책임지고 지도할 일이지 어떻게 그런것까지 신경써야 하는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몇군데 부스를 통해 체험활동을 한 아이들에게 도장을 찍어주고, 도장이 찍힌 종이를 본부에 가져오면 기념품을 주는 식으로 처리를 했다면 아이들은 받은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념품 정도로 생각하여 절대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해낸 일에 대하여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된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담임교사가 나중에 학교에 돌아가서 상찬하고 대가를 지불하면 금상첨화다. 곳곳에 마구 버려진 기념품을 보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이들에게 체험활동에 참가하여 활동한 증거물을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증거물을 들고 왔는데 그 복잡한 가운데에도 열과 성을 다하여 활동을 하고 증거물을 가져온 아이들을 보자 콧날이 시큰해졌다. 다르게 생각하면 줄서기나 차례지키기는 아예 무시하고 남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기어이 무엇인가를 해온 아이들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내자신부터 너무 부끄러워지고 민망해서 아이들 얼굴 대하기가 어려웠다.

 

 

교육현장이 많이 정화되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런 식의 밀어붙이기 행사가 이루어진다면 교육발전은 그만큼 멀어지고 만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런 식의 행정이 또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제발 이제는 그만하기로 하자.

 

어차피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진행할 행사였다면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와서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체험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참가한 아이들에게 적당한 인센티브를 주도록 유도했더라면 더 멋진 행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이런 식의 동원행사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