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대밭숲에서의 음이온 발생량은 다른 숲보다 훨등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시민들이 숲사이를 거닐기도 하고 쉬어가기도 했다.
울산만이 가지는 도심속의 대나무 숲길이리라.
그렇다. 공원이라고 하는 것이 이정도는 되어야한다. 단순히 보는 즐거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꾸어나가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공원이 미래형 공원이리라.
어느 정도 걷다가 다시 숲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오산 관어대를 찾아갔다. 오산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실은 작은 언덕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풍광이 좋아 시인묵객들이 많이 드나들었단다. 오(鰲)라는 글자는 자라를 의미한다. 물속에 사는 자라말이다.
우리는 정자를 위로 두고 강변의 희미한 숲길을 헤치고 나아갔다.
정자위로 흰구름 동동 뜬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쭈욱 뻗어 올라간 대나무줄기가 시원함을 더해주었고.....
놀랍게도 강가엔 사람 두어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바위가 솟아있었다.
언덕에서 강으로 뻗어내린 바위에 새겨진 자라 한마리..... 그리고 흰색 페인트 같은 것으로 휘갈려놓은 자랑스런(?) 이름 석자!
관어대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선조들은 이 바위 부근에 앉아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을 보았었겠다.
자라모양 흔적이 뚜렸하다. 백누구누구씨는 꼭 이런 곳에다가 이름 석자를 남겨야만 할 어떤 사연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고두고 욕을 얻어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이 낀 데이트족은 여기에서 포도주를 가져다놓고 멋진 만남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우리가 방해한 셈이 되었다. 미안했다.
태화강변에 이런 호젓한 곳이 숨어있을줄은 미쳐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모두들 행복하시기를 빈다. 우리는 다시 돌아나와 산책로로 올라갔다.
오산에 자리잡은 만회정 뒤로 난 길을 걸었다.
박취문(1617-1690)이라는 어른이 울산으로 낙향한 뒤에 건립한 정자라고 한다. 조선말기에 불타 없어진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했단다.
많은 시민들이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눈밝은 분이라면 정자마루에 앉아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으리라.
태화강변을 걷는 것이 이렇게 큰 즐거움을 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울산시에서는 태화강공원지역의 범죄예방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서 아직까지 큰 사건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상류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었다.
더 걷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길이었지만 한없이 걷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산책로를 벗어나야했다.
십리대밭숲을 벗어나서 우리는 버스가 기다리는 도로쪽을 향해 걸었다.
강변 공원에서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역구출신 국회의원이 주최한 행사같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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