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거기는 최근 몇년 동안 안가본 곳이었으므로 한번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시내버스를 타고가도 되지만 그렇게 하면 버스시간표에 모든 일정이 묶일 것 같아서 자전거로 가기로 했다.
저수지로 흘러드는 계곡에는 물이 넘쳤다. 가을이 지나면 곧 말라버릴지도 모를 것 같아서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서원앞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두개나 있다. 그러니 주차걱정은 안해도 된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왔으니 그런 시름은 없이 산다.
주차장에 서서 언덕 위를 보았을때 찻집 겸 음식점인 원두막은 왼편에 있고 서원은 오른쪽에 있다.
나는 오른편 돌계단을 따라 위로 걸어올랐다. 올라가면 바로 서원이 나타난다.
서원안쪽 계곡으로 면한 곳에 향정원이라는 곳이 있다. 차와 전통장류를 파는 곳이다. 오늘은 주인장을 만나볼 수 있으려나?
돌계단 바로 위에 보이는 건물이 오늘 오전 일정의 목표로 삼은 운곡서원이다. 이름부터 멋있다. 구름골짜기라니......
서원 앞에는 주사(廚舍)가 있다. 주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사는 집을 말한다.
나는 주사 혹은 고직사(庫直舍)라고도 이름하는 부속건물부터 먼저 살폈다.
예전에는 참 멋진 집이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이젠 쇠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문 오른쪽이 전사청이었다. 전사청에서는 서원에 제사를 지낼때 음식을 장만하기도 하고 만든 음식을 잠시 보관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부엌문이 외부로 달려있는 것이리라.
마당으로 들어섰다. 멀리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보이는 큰 개 한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삐딱하게 걸린 대청마루 문짝하나가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마당 한구석에 어울리지 않게 자리잡은 간이구조물은 무엇때문에 만들었던 것일까?
그래도 거주하는 분이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났다.
나중에 알고보니 민박용으로 쓰고 있었다. 좋은 일이다.
집에는 사람이 드나들어야 훈기가 생겨서 제대로 유지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살만큼 살아보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큰 개 뒤로 보이는 쪽문으로 나가면 원두막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중인 찻집겸 음식점으로 갈 수 있다.
고직사 맞은 편에 운곡서원이 있다. 운곡서원은 안동권씨의 시조인 권행이라는 어른과 다른 두분을 모시기 위해 서기 1784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정조 8년의 일이다.
안동권씨의 시조를 모시는 서원이 경주에도 숨어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운곡서원 문은 잠겨져 있었으니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 서원의 구조라는 것이 흔히 말하는대로 양식화된 것이 있긴 해도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짐작해서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래서 찾은 자료가 바로 아래에 있는 그림이다.
위 그림의 출처는 아래 주소에 있다. 왼쪽에 녹색으로 표시된 건물이 주사다.
운곡서원은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청수골에 자리잡고 있다. 골짜기 끝자락에 왕신저수지가 있다.
산으로 에워싸인 골 속에 자리잡았으니 주변의 경치도 좋고, 분위기조차 한적하면서도 조용하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전국에 흩어진 서원을 정리할때 여기도 철폐되었다가 나중에 다시 복구되었다.
비각 속에 검은 색 비석이 보였다.
안동권씨의 시조인 권행 선생의 일생을 기록해둔 것 같다.
주사와 서원 건물 사이에 커다란 대추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나는 담너머로 사진기를 올려 안을 찍어보았다.
대추나무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싶었다.
대추나무 밑에 발갛게 깔린 것이 궁금했다.
대추였다. 알이 굵고 실했다. 단맛이 강해서 그런지 가을 나비떼들이 소복하게 내려앉았다가 한꺼번에 날개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나는 모퉁이를 돌아 정문을 끼고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향정원과 유연정을 보기 위해서다. 거기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그루 대지에 큰발을 뻗고 산다.
담너머로 보니 운곡서원이라는 현판 글씨가 보였다.
그날 구경꾼은 나혼자였다.
그랬기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서원건물과 공간을 혼자 독차지한 날이었다.
어리
버리
'경주, 야생화, 맛 > 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천에서 느껴보는 추일서정 (0) | 2013.11.04 |
---|---|
향정원, 유연정 그리고 은행나무 (0) | 2013.11.01 |
그대가 원하면 하는 북두칠성이라도 따다 주는 곳 '원두막' (0) | 2013.10.30 |
신라소리축제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보았다 1 (0) | 2013.10.09 |
신경주역에서 (0) | 2013.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