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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세상헤매기: Walk around the world

이란(Iran)에 관한 짧은 풍광 몇가지 1

by 깜쌤 2013. 7. 17.

 

 2001년 7월 31일 화요일, 터키 수도인 앙카라 장거리버스 터미널에서 오후 7시에 출발하는 에르즈룸행 버스를 탔다. 오래전 일이지만 기록을 남겨두고 싶어 간략하게 메모하는 형식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앙카라 버스 터미널은 정말 거대하다. 공항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이란 비자는 앙카라의 이란대사관에서 받았다. 인터넷 정보로는 50달러를 요구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30달러로 14일간만 유효한 방문비자를 받았던 것이다.

 

 

터키 동부를 향해 달리는 장거리 버스는 저녁 7시 출발 예정이었다. 일기장 기록에 의하면 그날은 달이 밝았던 모양이다. 팔란되켄이라는 회사의 버스를 탔다. 요금은 1천6백만 터키리라였다. 그때만 해도 터키의 인플레이션은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에 억단위로 쓰고 살기도 했으니 내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벌놀음을 해본 셈이다.

 

 

에르친찬까지 경치가 좋았다. 버스에서 본 아침 풍경이다.

 

 

 

 

우리가 움직인 길을 지도위에 나타내보았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뜬다. 크게 해서 보는 것이 이해하기에 편할 것이다. 지도 제일 왼쪽의 옥색 점은 이스탄불의 위치를 나타낸다. 빨간점은 왼쪽부터 앙카라(터키의 수도)-에르주름(터키 동부의 대도시)-타브리스(이란 서부의 대도시)-테헤란(이란의 수도)의 위치를 나타낸다.  

 

 

아침 5시 50분에 잠을 깨서 창밖을 보았더니 버스는 아직도 산골짜기를 달리고 있었다. 나중에 지도를 가지고 알아보았더니 유프라테스강 상류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와서는 이런 모습이 나에게도 눈에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광활한 천연목장들이 펼쳐지는 이런 경치가 그때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초원을 처음 본것은 이란을 가기 바로전 해인 2000년 여름이었다. 중국의 내몽골에서 초원을 처음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말이다.

 

 

아침 8시 30분경에 에르주름에 도착했다. 13시간 반이나 버스를 탄 셈이다. 에르주름에서 도우베야짓으로 가는 미니버스 표를 새로 구했다. 9시에 출발하는 차였다.  

 

 

우리를 실은 미니버스는 서쪽으로 한없이 달려나갔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들은 당시에 찍은 필름을 파일로 변환시킨 것들이다. 요즘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과 비교하면 선명도가 많이 떨어지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장면들이다.

 

 

물결치듯이 이어진 언덕의 밀밭에서 건초더미를 가지고 오는가 보다.

 

 

그러다가 우리는 마침내 아라랏산을 찾아냈던 것이다.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라랏산 말이다.

 

 

도우베야짓 시내에 도착한 우리들은 터키와 이란을 구별하는 국경을 넘기로 했다.

 

 

우리는 국경으로 가는 돌무시(미니버스)를 탔다.

 

 

이란으로 넘어가기전 터키 쪽에서 아라랏산을 본 모습이다.

 

 

국경통과는 아주 간단했다. 우리는 터키쪽에서 출국수속을 밟고 이란 쪽에서는 입국수속을 거쳤던 것이다. 키가 멀대처럼 커다란 백인친구는 오토바이를 가지고 국경을 넘었다.

 

 

드디어 이란쪽에 들어섰다. 이란 쪽에서 보면 언덕 위에 국경검문소와 세관시설이 있는 셈이다. 언덕 아래가 바자르간이라는 국경 마을이다. 우리는 마을까지 걸어가서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바자르간에서 타브리즈로 가는 교통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굳이 택시를 잡아타면 모를까? 당시 우리들은 이란에 관한 정보를 거의 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넘었으니 간이 크기도 했다.

 

 

우리는 마쿠라는 작은 마을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서부 영화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골짜기 속의 마을이었다. 동양인 관광객을 맞이한 음식점의 아이는 요금에 대해 이리저리 말을 바꾸었다. 거기에서 택시를 교섭하여 타브리즈까지 달렸다. 말은 쉽게 해도 타브리즈에 도착하니 이미 새벽1시가 넘었다. 택시를 탄 시간만 해도 너댓시간은 되었으리라.

 

 

조금 과장을 하자면 서울 부산간 거리를 택시로 달린 셈이다. 그때 지나쳤던 작은 도시들의 밤 풍광이 꿈결속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고급 호텔 프론트의 도움으로 다른 호텔을 구한 뒤 새벽 두시에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타브리즈 시내를 구경했다.

 

 

모스크를 보고 무작정 돌아다녔다.

 

 

거리에 영어는 거의 없었고 아랍글자만 가득한데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알고보니 타브리즈 사람들은 거의가 쿠르드 민족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란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페르시아 민족이 아니고 쿠르드 민족이라고 밝혔다.

 

 

한없이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쿠르드 민족이 처한 현실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학생의 도움으로 타브리즈 기차역에 가서 표를 구했다. 테헤란까지 가는 야간열차 기차표를 구한 것이다.

 

 

1등칸 쿠셰였다. 가격은 32,000리알이었는데 약 4달러 정도 되는 돈이다.  

 

 

침대가 아래위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런대로 깨끗했다. 에어컨 가동이 완벽해서 잠을 자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저녁 5시 50분에 출발한 기차는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어서야 테헤란 기차역에 도착했던 것이다. 13시간 정도 기차를 탄 셈이다. 

 

  

우리가 가보려고 힜던 곳은 이스파한쉬라즈였다. 특히 쉬라즈에는 페르세폴리스가 있기 때문에 꼭 가보고 싶었다. 기차역 2층에 올라가서 확인해본 결과 이스파한행 기차표는 모두 매진되고 없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으니 이슬람 율법에서 주말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두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결국 우리는 테헤란 시내 남부버스터미널에 가서 밤 9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구했다. 그리고 짐을 맡겨놓고 이발소 청년이 추천해준 테헤란의 명소 텔레케빈에 갔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텔레토비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 주위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택시 요금이 워낙 싼 동네여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텔레케빈으로 오르는 입구까지 갔다. 텔레 캐빈은 테헤란을 둘러싼 3962미터짜리 토찰산 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말한다.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가 있었지만 나는 안타고 걸어서 올라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은게 아니어서 정상까지 가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G2지점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아래로 보이는 도시가 테헤란이다. 나무 한그루 발견하기가 그리 어려운 산인데 중간 중간에 거기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구역이 있는 모양이다.

 

 

이란인들은 우리같은 동양인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자주 말을 붙여왔다. 이 무더운 여름철에도 여자들은 머리수건을 써야만 했다. 여성들은 반팔차림을 꿈도 꾸지 못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란인들은 아랍인이 아니다. 이란 사람들의 주축은 페르시아인들이다. 그들은 아리안족으로 불리는 백인계열의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모두들 이목구비가 아주 또렸했다.

 

 

제일 왼쪽의 젊은이는 조금 짓궂은 포즈를 취했다. 젊은 피는 절대로 못속인다. 대학생들이었는데 아주 친절했다. 사기꾼들을 조심하라고 당부를 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서 내려왔다. 나무 그늘이 있는곳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일가족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이라크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란 사람이란다. 사람들이 아주 착했다.

 

 

산밑으로 내려온 우리들은 택시를 타고 제법 부유한 동네까지 가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자리를잡았다. 그리고는 라이스를 시켜 먹었다. 제법 깔끔한 동네에 자리잡은 가게였기에 들어가 본 것인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고는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거리를 달려서 혁명광장까지 갔던 것이다. 환전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테헤란에는 서울거리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니까 승객들이 가르쳐준 것이다. 지금 버스가 달리는 이 거리가 서울 거리라고......  혁명광장 부근의 사설 환전소에 찾아갔는데 얼굴이 노랗게 뜬 환전상은 야비했다. 또다른 한 사람이 들어왔는데 이들 모두는 바가지를 씌우려고 작정을 한 인간들 같았다. 두말없이 돌아섰다. 단 한푼이라도 이득을 보게 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