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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야생화와 분재사랑 Wildlife Flower

백일홍 꽃밭이 만들어준 추억

by 깜쌤 2013. 7. 8.

 

 

1.

 

산골 시골학교의 4학년생이었던 나는 아침마다 꽃밭에 나가 채송화 꽃송이를 헤아렸다. 오늘은 몇송이가 필까 싶어서 맞추어 보기 게임을 즐긴 셈이었는데 거의 다 맞추곤 했다. 아침에 자세히 보면 꽃망울이 열리는 녀석은 표가 났기 때문이다.

 

 

 

2.

 

내가 살았던 집은 다 뜯겨나가고 말았다. 이젠 집터도 구별하지 못할 지경이다. 하기사 동네 전체가 사라졌으니 추억 나부랭이조차 찾을 길이 없다. 구조가 똑같은 집이 남아있는 것을 우연히 찾을 수 있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3.

 

나는 철도관사에 살았다. 사연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은 곳이었다. 집 주위로 측백나무 담장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나는 측백나무 밑에 내가 직접 만든 화단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채송화도 심고 맨드라미도 심고 백일홍도 심었다. 

 

 

4.

 

나는 백일홍도 아주 좋아했다. 꽃색깔은 다양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얗기도 했다. 분홍색으로 피는 것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어서 그런지 꽃에 대한 기억은 오래 갔다. 

 

 

 

 

5.

 

2001년 8월 4일 토요일, 이란의 이스파한 도심부에 있는 압바스호텔 마당에서 백일홍 꽃밭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릴때 내가 가꾸었던 백일홍과 똑같은 것들이 지천에 깔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 일부러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 정원에 있는 아랍 스타일의 찻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6.

 

이란에서 백일홍 꽃밭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모든게 그립기만 하다. 이스파한에서 만났던 착한 은행원 알리 바하도리(Ali Bahadory)씨가 생각난다. 그는 친절했었다. 알리의 형은 이란과 이라크가 싸울때 전사했다고 했다. 당시, 전쟁을 일으킨 이라크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이었다.

 

 

 

7.

 

내가 가꾸었던 꽃밭은 두집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측백나무 밑에 있었다. 사진 속의 철도침목을 쌓아놓은 자리와 비슷한 장소였다고 기억한다. 여름방학 전 어느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내 꽃밭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누가 발로 마구 짓밟아서 엉망을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마음 아렸던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요즘도 꽃밭에 함부로 들어가는 인간들을 보면 꼴보기도 싫다.  

 

 

8.

 

나는 아직도 백일홍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아린 기운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간식으로 맛있게 먹은 토란 뿌리가 뱃속에서 만들어낸 그런 아림 말이다. 쓰림과 비슷한 아림이라는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9.

 

그게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 오래 산것도 아닌데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니 저절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리라. 2001년 8월 5일 일요일 낮에 우리는 대형 에어컨버스를 타고 쉬라즈로 이동했었다. 백일홍이 만발했던 이스파한을 벗어난다는 것이 마음 한편으로는 아리기도 했다. 쉬라즈 부근에 페르세폴리스가 있다.

 

 

 

 

10.

 

나는 아직도 백일홍을 사랑한다. 어떤 이들은 배롱나무를 보고 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념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내가 말하는 백일홍은 일년밖에 살지 못하는 풀꽃을 말한다. 홑꽃도 있고 겹꽃도 있는데 물론 겹꽃이 더 화려하고 예쁘게 보인다. 나는 홑꽃도 사랑한다. 단순하고 소박해보이기 때문이다.

 

 

11.

 

화단을 하나 가꾸고 싶다. 채송화와 백일홍과 맨드라미를 심어 즐기고 싶다. 더 세월이 흐르기 전에 말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