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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한없이 모자라는 칠푼이 선생이었다

by 깜쌤 2013. 5. 15.

 

나는 최근 한 이십여 년간은 스승의 날을 애써 무시하며 보냈다. 5월만 되면 언론매체들이 모두 다 나서서 무슨 관행이나 되는 것처럼 선생 때리기에 나서는 꼴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생 살면서 철이 좀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 한송이를 굳이 마다하지 않은적도 있었지만 선물 같은 것은 일체 가져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스승의 날 기념식을 할 때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선생 스스로가 나서서 자축하는 모습이 낯 뜨겁고 간지러웠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내가 속한 교육청에서는 스승의 날에 전체 교직원들의 체육행사를 하는 것으로 넘어갈 모양이다. 선물때문에 문제가 될 것 같아서 하루 휴업을 한다면 이는 문제를 피해 가는 처사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승의 날에 휴업을 하거나 노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스승의 날에는 아침부터 준비를 단단히 해서 일찍 출근한 뒤 진정으로 아이들을 잘 대해가며 하루 만이라도 정말 멋지게 가르쳐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제는 그럴 기회도 거의 없지 싶다. 어쩌면 올해를 마지막으로 조기은퇴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너희들이 공식적인 마지막 제자들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동안 별꼴을 다 당하고 살아왔다. 특히 선생을 업신여긴 위정자들이 수두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부 위선적인 정치가와 행정가들을 생각하면 피가 끓어오를 정도였다.

 

 

나는 올해로 스물아홉번째 6학년 담임을 하고 있다. 최근 이십사 년 동안은 딱 한 번만 빼고 모두 6학년 담임을 맡아했다. 남들이 6학년 아이들 가르치기가 힘이 든다며 맡기 싫어해도 나는 굳이 자원해서 6학년 담임을 했다. 체력이 달려서 그런지 요즘은 거의 매일 몸이 아프다. 집에 오기만 하면 몸이 천근만근이나 된 듯이 무거워져 가라앉지만 학교에만 가면 없던 힘도 솟는 것 같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했다.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아이들이 칠판에 풍선을 달아놓고 스승의 날을 축하한다는 글을 써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작은 이벤트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들뜬 모습과 기대에 찬 표정이 더 없이 아름다웠지만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풍선을 떼게 하고 책상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도록 했다. 평소의 내 언행을 아는 아이들인지라 두말없이 조용하게 순종했다.

 

 

어쩌면 올해 스승의 날이 마지막 스승의 날이 될 것으로 짐작한 아이들이 내게 베풀어주려고 했던 최상의 잔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의 마음만 받기로 했다. 어제 화요일은 전담선생님들의 수업이 많은 날이었다. 나는 넷째 시간에야 가까스로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졸업생들이 교실에 나를 찾아오면서 가지고 온 초코파이 같은 과자를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음료수를 한잔씩 권했다.

 

처음에는 나를 무서워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곁에 스스럼없이 다가와 애정과 존경을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만 하다. 그동안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꾸준히 계속해서 가르쳐보며 아이들의 표정과 동작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위선인지 가식적인지 구별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도 쉽게 구별해내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스승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낸 단순한 월급쟁이 선생에 지나지 않았다. 능력도 실력도 학식도 자질도 부족한 어설픈 칠푼이 선생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그런 사실을 깨달은 스승의 날 아침,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