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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자리 장사하는 장학사라니....

by 깜쌤 2013. 2. 16.

 

나는 승진만을 밝히는 선생들이 모이는 모임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모여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판에 박힌듯 똑같기 때문이다. 선생들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선생들은 모여앉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점수타령을 해댄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더 나은 인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임은 지금껏 잘 만나보지 못했다.  

 

교사들의 승진이나 전보는 철저하게 점수위주로 이루어진다. 누구나 관심을 갖는 승진문제와 전근에 관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점수제를 실시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일반인들 눈에는 생소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상당수 교사들은 현재 근무하는 학교의 등급조차도 다음에 있을 인사이동(전출)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근무하는 학교 선택에도 신경을 쓴다.

 

 

 

점수에 신경을 쓰지 않는 교사는 세상물정에 너무 어두워 조직 안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심하면 무능한 교사로 낙인찍힐 가능성도 높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점수에 신경을 써야하고, 사석에서는 승진을 위한 점수확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존재가 선생이라는 직업이다. 

 

그러니 시시콜콜하게(?) 점수를 따지고 점수에 목을 매고 산다. 대한민국에서 선생을 하며 점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교사는 별종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듣기좋은 매화타령도 한두번이지 자꾸 들으면 짜증이 나고 역정이 생기는 법이다. 모여앉을 때마다 점수타령을 해대면 나같은 사람에게는 생기던 입맛도 방향을 바꾸어 도망갈 지경이 되고 만다.

 

 

 

내가 그런 모임에 나가본지가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선생이 승진을 한다는  것은 교사에서 교감이 되는 것이다. 선생들 사회에서의 계급은 아주 단순해서 교사 아니면 교감이나 교장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세가지 뿐이다.

 

부장교사를 한다는 것은 보직의 문제다. 누구나 원하면 맡을 수 있는 자리다. 학교에 따라서는 부장교사 자리도 경쟁이 치열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은 수석교사라는 것이 생겨서 거기에 관심을 두고 군침을 가지는 교사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수석교사제 운영을 앞으로는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모르지만 현재는 교감 밑에 있는 자리임에 틀림없다.

 

 

 

예전에는 교감이 되어야만 장학사가 될 수 있었다. 장학사는 일단 교감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는 자리였으므로 1980년대만 해도 그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기만 했다. 내가 아는 어떤 장학사는 일선 학교에 장학지도를 와서는 교사가 공들여 작성해둔 학급경영록이라는 귀중한 자료를 마루바닥에 팽개치기도 했다. 내 눈으로 본 것이니 사실이다.

 

장학사가 얼마나 수업에 대해 일가견을 가진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교사가 진행하는 수업을 살펴보고는 무자비할 정도로 인신공격을 퍼부어대기도 했다. 초등장학사는 교사 시절에 전과목을 다 가르쳐보았을 것이므로 수업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과목별로 세분화 되어있는 중등학교에서는 자기 전공이 아닌 다른 과목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행동임이 틀림없다. 

 

 

 

중등교육의 경우에도 아이들을 다루는 요령이나 학급경영 기법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교수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체육교사 출신의 장학사가 영어수업을 보고나서 수업의 질에 관해 따질 경우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젊었던 날, 일부 장학사들은 교사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쳤는지 몰라도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많은 선생들은 장학사가 되고 싶어했다. 보직에 따라서는 인사담당 장학사가 될 경우 그가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은 막강한듯 했다. 그러니 어느 누가 장학사 자리를 마다할 수 있었으랴?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현장에서 아이들만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가 인정받고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잘 들어보지 못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어도 따라가기 힘든 세상에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바쳐가며 정열을 쏟는 교사는 어찌보면 무능한 존재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추구하는 교사가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 미치도록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충남에서 벌어진 장학사 시험문제 유출 사건으로 인해 나라안이 제법 소란스럽다. 장학사도 교육자들이건만 돈을 받고 시험문제를 사고 팔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도덕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런 사건은 결코 존재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지도하기도 하고 도우미 역할을 하는 양반(?)들이 그런 사건에 연루되어 수사기관에 불려다니는 것은 결코 바른 모습이 아니다. 

 

 

 

다른 도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경북에서는 교사 자격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장학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다. 함께 같은 학년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던 어떤 교사는 각고의 노력끝에 장학사 시험에 합격을 해서 장학사가 되어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그런 교사들을 볼 때마다 우리 교육의 앞날에 대해 적지않는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장학사 시험문제 유출사건의 경우를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할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사건이 터진다는 것은 교육관료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장학사도 처음에는 교사로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건이 터진다는 것은 교사들의 도덕성 문제가 심각할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직업인들과 달리 교사가 도덕성을 상실하면 그 순간부터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교사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존경을 받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다. 고리타분한 가치관일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명예를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직업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바르게 살아도 존경받기 어려운 요즘 세상에서 교사와 장학사들의 이야기가 연일 언론매체에 오르내리면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내 자신부터 심히 부끄럽기만 하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일부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이 글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