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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고산을 수놓은 명소들을 훑어보다

by 깜쌤 2013. 5. 12.

 

수호전에는 인간적인 매력이 묻어나는 영웅호걸이 몇명 등장합니다. 그 중에 임충이나 무송, 노지심 같은 인물은 아무리봐도 매력적인 캐릭터인것 같습니다. 나는 행자(行者) 무송에 대해 인간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무송의 고향은 하북성(河北 허베이) 청하(清河 칭허)현입니다. 산동성 사람들은 무송이 자기들 고향사람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는 엄연히 하북성 출신입니다. 청하현의 위치가 하북성과 산동성의 경계지점이어서 얼핏보면 산동성 출신인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인들도 무송을 영웅으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 가운데 실존인물로 기록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송강이나 무송,노지심같은 사람들은 실존했다는 증거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무송의 형은 무대랑 무식(武植)입니다. 무씨 집안의 큰아들이니 무대랑(武大郎)이라 부르는 것이죠. 그런 식으로 부르면 무송은 무이랑(武二郎)이 됩니다. 무송의 형수, 그러니까 무대랑 무식의 부인이 반금련이라는 여자입니다. 중국 4대 기서(奇書)가운데 하나인 금병매에도 등장하는 요부죠. 반금련도 하북성 청하현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송의 이야기는 이 여행기와 다른 글속에서 한번씩 언급한 사실이 있으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합시다. 어쨌거나 간에 나는 무송이 항주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화화상 노지심(본명은 노달)도 항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중 항주에서 죽은 3명의 명단은 확실해졌습니다. 낭리백도 장순과 행자 무송, 화화상 노지심이 되는 것이죠.

 

  

이제 우리들은 고산으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고산은 서호 물속에 떠있는 섬가운데 하나이지만 워낙 호반과 가까워서 서령교라는 다리로 연결되어버렸습니다. 덕분에 고산까지는 차가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산은 백락천이 만든 백제와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송의 무덤을 남겨두고 서령교를 건너 고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산으로 연결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서령교 너머 고산섬 호반쪽으로도 플라타너스 나무를 심어 단장을 해두었습니다.

 

 

길 이름도 고산로입니다.

 

 

항주호반에는 나무들이 많이 자랍니다. 일부러 정성들여 가꾼것이 확실합니다.

 

 

연꽃이 필때 서호에 오면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고산 언저리 서령교부근에 여성 조각상이 보였습니다. 항주에서 한시간 거리인 소흥 시가지에서도 한번씩 마추쳤던 그녀! 바로 추근의 모습이었던 것이죠. 중국판 유관순열사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지 싶습니다. 2.7미터 높이의 대리석상 밑에 새겨진 글씨는 손문의 필적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살아생전에 자기가 불행하게 죽으면 고산과 항주의 서호 북쪽 호반을 연결하는 다리인 서령교 부근에 묻어달라고 했다는군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대항했던 여성혁명가로서 명성이 자자한 추근은 서른두살에 청군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고산으로 들어오는 시내버스는 Y10번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류장의 디자인이 아주 독특합니다. 호반으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별별 기념관들이 다 보이더군요.

 

 

고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도 예쁘게 단장해서 귀티가 나도록 꾸며두었습니다.

 

 

오토바이 한대도 규칙을 어겨가며 아무렇게나 세운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며 항주인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참으로 희한한 곳을 발견하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서령인사!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겠지만 한자로 쓰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한자를 모르는 분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지만......

 

 

중국인들의 도장문화는 역사가 유구하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지금은 흔히 사인(sign)이라고 해서 자기 이름이나 이름과 관련있는 글자를 쓰는 서명이 도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모두 도장을 찍었습니다. 도장을 만들려면 나무나 돌 혹은 상아같은 재료에다가 이름을 새겨넣어야했습니다.  서명이라는 의미로 영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sign이라는 말보다는 signature를 쓰는게 옳다고 봅니다.

 

 

어쨌거나간에 서령인사(西冷印社)에는 멋진 서예작품과 도장들이 즐비했습니다. 나는 처음에 여기를 금석학(金石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갖는 기념관정도이거나 아니면 전각이나 서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장소로 여겼습니다만 알고보니 도장문화와도 관련이 깊은 곳이더군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제가 바로 그런 꼴을 낸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국지연의같은 소설을 보면 장수나 관리가 전장터에 나갈때 관인(官印)을 허리춤에 차고 나가는 모습이 있습니다만 그런 장면을 이해하려면 중국인들의 도장문화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공무원 생활을 해본 분들은 직인(職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것입니다. 직인같은 것을 알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항주 부근에서 나는 계혈석(鷄血石)이라는 붉은 돌로 만든 도장이 이곳에서는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옛날 바빌로니아 문명을 만든 사람들도 도장 비슷한 것을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일본의 공영방송사인 NHK에서 제작한 <세계4대문명>이라는 다큐멘터리 속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사용한 도장의 모습이 자세히 나오더군요.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 박물관에서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인장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만(卍)자 모양이 새겨진 도장을 본 기억이 아직도 뚜렸합니다. 성경 속에도 인장을 사용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서령인사를 나와 동쪽으로 조금 내려갔더니 항주의 명물식당인 누외루(樓外樓)가 나타났습니다. 이 식당의 명성은 대단한 것 같더군요. 어지간한 여행안내서에는 모조리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초어요리와 닭요리같은 것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들어가보려다가 참았습니다. 1848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식당이니 역사 하나는 자랑할만 합니다.

 

 

나는 밖에서 차림표를 살펴보았습니다. 서호초어규화동계, 그리고 동파육요리가 이집을 대표하는 요리같습니다.

 

 

이 시설이 규화동계를 구워내는 장치인 모양입니다. 나중에 우리들은 항주의 청하방 먹자골목에서 이집의 규화동계와 흡사한 요리를 사먹었던 것이죠. 규화동계는 '거지의 닭'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돌판에다가 차림표를 새겨두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오랜 집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맞은 편 호수쪽에도 특별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배위에다가 만들어둔 식사장소인가 봅니다.

 

 

누외루 식당은 고풍스런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산외산(山外山), 루외루(樓外樓), 천외천(川外川). 이 세 식당이 항주를 대표하는 명물식당이라고 합니다만......  산외산(山外山), 루외루(樓外樓), 천외천(川外川)이라는 말은 항주를 가장 잘 묘사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출전(出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름 하나하나마다 운치가 가득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