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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그는 명나라 시대의 3대 재주꾼이었다고 한다

by 깜쌤 2013. 4. 18.

 

청등서원은 명나라 말기에 활동했던 예술가의 집입니다. 그러니 1,500년대 후반기에 활동한 인물이라고 보면 틀림없는 어떤 사람의 거처라는 말이죠. 우리나라 역사에서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전쟁이 벌어진 해가 1592년의 일이니 그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라고 짐작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았던 인물은 서위라는 사람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중국에 오기전까지 서위라는 분에 관해서는 잘모르고 있었습니다. 소흥 출신의 왕희지노신은 그런대로 이름이나 들어보고 무엇을 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분은 여기와서 처음으로 알게된 인물이었던 것이죠.

 

 

할 수없이 중국 인터넷 바이두에 접속해서 이 분에 대한 기본 정보를 훑어보았습니다. 바이두 백과사전에서는 대강 이 정도로 평가를 하고 있더군요.

 

明代嘉靖年间诗人,画家书法家军事家戏曲家,民间文学家 ,美食家,酒徒,狂禅居士、青藤道士、旅行家,历史学家。与解缙杨慎并称“明代三大才子”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 시대에 살았던 시인으로서 화가, 서예가, 군사가, 희곡가, 민간문학가요 미식가였으며 술을 즐겼고 역사가, 여행가로서 해진(解縉), 양신(楊愼)과 더불어 명나라 시대의 3대 재사로 유명한 인물이라는 것이었죠. 그리고보니 정말로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엄청난 재주꾼임이 드러난 셈입니다.

 

그런 인물이 살았던 집에 온것이니 그냥 보고 넘어갈 수는 없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의 재주가 맹탕이니 잘 감상하기가 정말 힘들게 생겼습니다.

 

 

함께 여행을 갔던 박사 친구는 서예에 일가견이 있는 양반이라 아주 세밀하게 보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서 감탄도 하고 말입니다.

 

 

徐渭,明朝人,于正德十六年(1521年)出生于浙江绍兴府山阴城大云坊的官僚世家,父徐鏓 ,母为侍女小妾,少年时天才超逸,入徐氏私塾读书,“六岁受《大学》,日诵千余言”“书一授数百字,不再目,立诵师听

 

 

서위의 호는 여러개가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청등입니다. 아버지는 서총이라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그 집안의 하녀출신으로서 나중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시절부터 천재로 소문이 났으나  집안이 몰락하면서부터 아주 곤궁하게 자랐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일생을 가만히 살펴보면 네덜란드의 호가였던 반 고흐와 닮은 인생을 산듯 합니다. 고흐는 그림그리기에 뛰어난 재능을 불사른 화가였지만 서위라는 분은 다방면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서위는 스스로 평가하기를 자기 글씨가 첫째이고 시가 두번째며 문장이 세번째이고 그림이 제일 못하다고 했지만 후세의 평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청등서옥은 자그만한 집이었습니다. 실내는 어둡고 침침한데다가 공간마져 작으니 명성에 비해 약간은 소홀하게 대접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그가 살았던 곳이라고 전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중국 춘란 화분을 칠십여개 이상 가지고 있으면서 재배해본 경험이 있으니 난초를 보는 순간 눈이 확 떠졌습니다. 자시히 살펴보니 춘란은 확실한 것 같은데 품종은 도저히 알길이 없었습니다.  

 

 

그의 유품을 자세히 살펴본들 아는게 별로 없는지라 깊은 감흥을 받지는 못했지만 글씨 하나는 유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광기(狂氣)에 사로잡혀 부인을 죽이기까지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첫번째 부인은 그가 아주 젊었을때  병으로 사별했습니다.  벽에 박힌 박힌 대못을 가지고 자기 머리를 찔러 자살하려고 시도를 한 적도 있고 귀를 자르기도 했다니 반 고흐와 비교하게 된 것이죠.

 

 

이 그림이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듯 합니다. 나중에 중국 바이두에 가서 검색해보니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먹과 붓 하나만 가지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군요.

 

 

 

 

         徐渭《墨葡萄》 轴 纸本 纵166.3厘米 横64.5厘米 北京故宫博物院藏

 

그의 대표작인 <묵포도>입니다. 북경고궁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는군요. 사진의 출처는 중국 바이두입니다.

 

 

그의 유품인가 봅니다.

 

 

문방사우 가운데 세가지는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친구는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친구의 인품과 학식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씨 속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이 나타난다는 주장에 한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서위의 방 앞에는 작은 물구덩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연을 길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거기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마당으로 나가봅니다.

 

 

저 앞에 마주보이는 문이 청등서옥의 입구이니 서위는 아주 작은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포도그림에도 아주 능통했습니다. 한쪽에는 포도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그림중에 파초를 그린 것이 있더군요. 그래서인지 그의 정원 한쪽에는 파초 줄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사방이 높은 담으로 둘러 있어서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했지 싶습니다.

 

 

 

 

 

서위의 파초매화도 <徐渭 芭蕉梅花图>

 

                                             사진출처- 중국 바이두

 

 

 

 

대나무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 작은 둥근 문 안에 작은 못이 있습니다.

 

 

입구부근에는 매표소가 있습니다. 입장권 수입으로 이 귀한 서옥을 관리하는데 잘 쓰였으면 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을 마당과 작은 정원을 되돌아보고 나왔습니다.

 

 

골목에는 고요한 정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골목 끝에 큰 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등서옥, 이 방향으로 나아가시오"

 

 

청등서옥을 나온 우리들은 여관을 행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깨끗한 시장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죠.

 

 

 

 

 

어리

버리